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토지대장에 나타난 농지개혁의 실상(1945~70)― 전북『익산군춘포면토지대장』의 분석 ― = The Reality of Land Reform in Iksan County, 1945-70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4005065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thesis sheds light on the reality of Korean land reform from the view-point of regional society. Iksan County, a typical region in northern Cholla Province, where the colonial landlord system was highly developed, was the heart of land reform efforts by the post-liberation New Korea Corporation, whose Chonbuk branch office was located in the county. The sale of land in Iksan County signaled the beginning of land reform in Korea. In terms of scale, the sale of government-vested lands in 1948 was more than double that sold during the land reformation of 1950. Still, when we consider the method of distribution of land during the reforms of 1948 and 1950, we find considerable consistencies between the two projects. For example, aggressive repossession accompanied the dismantling and eradication of the colonial landlord system. In particular, from 1948 through the first half of 1950, one hectare or less gradually became the standard for dividing up land. Consequently, the number of land-owner farmers increased on a large scale as the inequity in land ownership drastically diminished. However, when we take into consideration the long-term distribution process in Iksan County, rather than think that land reform was an undertaking of 1950 or of any other specific time period, we should regard the reformation as a long-term process that began with the redistribution of land in 1948 and culminated with the exchange and registration of land titles in the mid 1960s. The break-up of large-scale government-vested lands in Iksan County marked the final phase of land reformation in Korea.
      번역하기

      This thesis sheds light on the reality of Korean land reform from the view-point of regional society. Iksan County, a typical region in northern Cholla Province, where the colonial landlord system was highly developed, was the heart of land reform eff...

      This thesis sheds light on the reality of Korean land reform from the view-point of regional society. Iksan County, a typical region in northern Cholla Province, where the colonial landlord system was highly developed, was the heart of land reform efforts by the post-liberation New Korea Corporation, whose Chonbuk branch office was located in the county. The sale of land in Iksan County signaled the beginning of land reform in Korea. In terms of scale, the sale of government-vested lands in 1948 was more than double that sold during the land reformation of 1950. Still, when we consider the method of distribution of land during the reforms of 1948 and 1950, we find considerable consistencies between the two projects. For example, aggressive repossession accompanied the dismantling and eradication of the colonial landlord system. In particular, from 1948 through the first half of 1950, one hectare or less gradually became the standard for dividing up land. Consequently, the number of land-owner farmers increased on a large scale as the inequity in land ownership drastically diminished. However, when we take into consideration the long-term distribution process in Iksan County, rather than think that land reform was an undertaking of 1950 or of any other specific time period, we should regard the reformation as a long-term process that began with the redistribution of land in 1948 and culminated with the exchange and registration of land titles in the mid 1960s. The break-up of large-scale government-vested lands in Iksan County marked the final phase of land reformation in Korea.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은 지역사회의 관점에서 농지개혁의 구체적 실상을 구명해보려는 것이다. 사례 지역인 익산군은 식민지기 지주제가 고도로 발달했고, 해방 이후에는 신한공사의 전북지점이 소재하던 농지개혁의 중심지였다. 익산에서 귀속농지의 매각은 곧 농지개혁의 서막을 의미했다. 규모 면에서 본다면 1948년 매각된 귀속농지는 농지개혁시 불하된 분배농지를 2배 이상 상회하고 있었다. 1950년 농지개혁의 분배방식을 고려할 때 양자의 사업은 상당한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식민지지주제의 해체·소멸 국면은 격렬한 소유분해를 수반하였다. 특히, 1948년부터 1950년대 전반에 걸쳐 1정보 미만층을 중심축으로 하는 전층적인 하강분해가 연출되었다. 균질적인 자작농이 다량으로 양산되면서 토지소유의 불균등도는 크게 완화되었다. 그러나 익산에서의 장기간의 상환과정을 감안할 때 농지개혁은 1950년이라는 어느 특정한 시점의 사업이었다기 보다는, 1948년 농지 분배 이래 1960년대 중반의 지가상환·이전등기 완료에 이르는 장기간의 과정이었다. 익산에서는 다량의 귀속농지가 해체되는 시점이 농지개혁의 최종적 국면이었다.
      번역하기

      이 글은 지역사회의 관점에서 농지개혁의 구체적 실상을 구명해보려는 것이다. 사례 지역인 익산군은 식민지기 지주제가 고도로 발달했고, 해방 이후에는 신한공사의 전북지점이 소재하던 ...

      이 글은 지역사회의 관점에서 농지개혁의 구체적 실상을 구명해보려는 것이다. 사례 지역인 익산군은 식민지기 지주제가 고도로 발달했고, 해방 이후에는 신한공사의 전북지점이 소재하던 농지개혁의 중심지였다. 익산에서 귀속농지의 매각은 곧 농지개혁의 서막을 의미했다. 규모 면에서 본다면 1948년 매각된 귀속농지는 농지개혁시 불하된 분배농지를 2배 이상 상회하고 있었다. 1950년 농지개혁의 분배방식을 고려할 때 양자의 사업은 상당한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식민지지주제의 해체·소멸 국면은 격렬한 소유분해를 수반하였다. 특히, 1948년부터 1950년대 전반에 걸쳐 1정보 미만층을 중심축으로 하는 전층적인 하강분해가 연출되었다. 균질적인 자작농이 다량으로 양산되면서 토지소유의 불균등도는 크게 완화되었다. 그러나 익산에서의 장기간의 상환과정을 감안할 때 농지개혁은 1950년이라는 어느 특정한 시점의 사업이었다기 보다는, 1948년 농지 분배 이래 1960년대 중반의 지가상환·이전등기 완료에 이르는 장기간의 과정이었다. 익산에서는 다량의 귀속농지가 해체되는 시점이 농지개혁의 최종적 국면이었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현행소작제도의 성격에 관한 연구" 돌베개 1984

      2 "해방후 농지개혁의 전개과정과 성격" 한길사 1 : 1980

      3 "한국현대사의 현황과 과제-1945~60년간의 한국경제를 중심으로-" 2 : 1990

      4 "한국자본주의와 농업구조" 한길사 1994

      5 "한국의 농지문제와 농지정책에 관한 연구" 1994

      6 "한국농업의 구상" 한길사 1981

      7 "한국근대의 농업변동" 일조각 1997

      8 "한국 농지개혁의 재검토" 65 : 2003

      9 "하천유역일대 간석지상의 간척취락 유형에 관한 연구-萬頃江, 東津江流域을 사례지역으로-" 1990

      10 "지주제 해체와 자작농체제 성립의 역사적 의의" 한국경제학회,경제사학회 1995

      1 "현행소작제도의 성격에 관한 연구" 돌베개 1984

      2 "해방후 농지개혁의 전개과정과 성격" 한길사 1 : 1980

      3 "한국현대사의 현황과 과제-1945~60년간의 한국경제를 중심으로-" 2 : 1990

      4 "한국자본주의와 농업구조" 한길사 1994

      5 "한국의 농지문제와 농지정책에 관한 연구" 1994

      6 "한국농업의 구상" 한길사 1981

      7 "한국근대의 농업변동" 일조각 1997

      8 "한국 농지개혁의 재검토" 65 : 2003

      9 "하천유역일대 간석지상의 간척취락 유형에 관한 연구-萬頃江, 東津江流域을 사례지역으로-" 1990

      10 "지주제 해체와 자작농체제 성립의 역사적 의의" 한국경제학회,경제사학회 1995

      11 "전후 한국농지개혁에 관한 일고찰" 서울대 경제연구소 6 (6): 1967

      12 "일제하 대지주의 존재형태에 관한 연구" 1989

      13 "일제 식민지시대와 본원적 축적" 한울아카데미 1993

      14 "영주에서 식민지대지주로- 일본 귀족 호소가와(細川)가의 한국에서의 토지집적 -" 73 : 2005

      15 "식민지지주제의 동향(1914~45)-전북『益山郡春浦面土地臺帳』의 분석-" 12 : 2004

      16 "만경강유역의 개간과정과 취락형성발달에 관한 연구" 3 (3): 1997

      17 "농지개혁의 평가와 반성" 돌베개 1981

      18 "농지개혁에 관한 실증적 연구(上,下)" 1984

      19 "농지개혁사연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9

      20 "농지개혁과 식민지지주제의 해체" 11 : 1987

      21 "농지개혁 연구" 연세대학교출판부 2001

      22 "농업경제학서설" 고려대출판부 1967

      23 "근대 지역농업사 연구" 서울대출판부 1996

      24 "現代韓國農業構造の變動" 御茶の水書房 1994

      25 "植民地朝鮮における農業用水開發と水利秩序の改編-萬頃江流域を對象として-" 41 : 2003

      26 "朝鮮農業經營地帶の硏究" 農業總合硏究刊行會 1946

      27 "增補)日本帝國主義と舊植民地地主制" 龍溪書舍 1989

      28 "1950년대 농가경제 분석" 16 : 1992

      29 "1950년대 ‘농민보수화 테제’에 대한 고찰" 1998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8 0.58 0.7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1 0.81 1.23 0.15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