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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거세 세력 등장 이전의 사로 육촌 = Saro Six Villages Before the Appearance of Hyeokkeose Fo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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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154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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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Silla people(新羅人) remembered that six villages people is Foundational group of founding countries and southbounded refugees since the fall of Gojoseon. Therefore they set up the first Gapjjanyeon(甲子年) after the fall of Chosun as foundational year. Samguksagi(三國史記) and Samgukyusa(三國遺事) said Yukchonjang(六村長) is Cheongangja(天降者) and people who chose Hyeokkeose(赫居世). That means considered related Articles about six villages ,six villages is understood to have arrived at home before a Hyeokkeose group.
      According to archaeological circles Saroguk(斯盧國) founding is related to kyeongju inflow of the Hyeokkeose group experinced WimanJoseon's(衛滿朝鮮) Cultural competence. six villages that were entered before the Park group could be understand as Gojoseon refugees Who had Bipahyeongdonggeom(琵琶形銅劍) and Ihyeongdongi(異形銅器) after Yeon's eastern domination or who had Sehyeongdonggeom(細形銅劍) and Jujocheolbu(鑄造鐵斧) setteld on Gyeongju(慶州) when Junwang(準王) move south moment. six villages people of advanced culture at the time was settled in gyeonju and take the initiative through combination with jiseokmyo(支石墓) groups.
      The fact that the six villages headman had their son in the meeting reflects the social character of six villages. villages headman had the religious authority of the cheongangja's direct descendants and was in control of the villages generations. That means six villages is kindred who enshrined communal Ancestral god and unity of the church and state community. Furthermore when six villages people move south moment Gojoseon was ruled by a man of Priest King(司祭王)'s character. Naturally six village's headman had same character. Therefore they are the people who serve the ghost in Silla, respect memorial service(事鬼神 尙祭祀) and be respected by people in the country as a traditional jonjangja(尊長者) Jachoong(慈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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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la people(新羅人) remembered that six villages people is Foundational group of founding countries and southbounded refugees since the fall of Gojoseon. Therefore they set up the first Gapjjanyeon(甲子年) after the fall of Chosun as foundation...

      Silla people(新羅人) remembered that six villages people is Foundational group of founding countries and southbounded refugees since the fall of Gojoseon. Therefore they set up the first Gapjjanyeon(甲子年) after the fall of Chosun as foundational year. Samguksagi(三國史記) and Samgukyusa(三國遺事) said Yukchonjang(六村長) is Cheongangja(天降者) and people who chose Hyeokkeose(赫居世). That means considered related Articles about six villages ,six villages is understood to have arrived at home before a Hyeokkeose group.
      According to archaeological circles Saroguk(斯盧國) founding is related to kyeongju inflow of the Hyeokkeose group experinced WimanJoseon's(衛滿朝鮮) Cultural competence. six villages that were entered before the Park group could be understand as Gojoseon refugees Who had Bipahyeongdonggeom(琵琶形銅劍) and Ihyeongdongi(異形銅器) after Yeon's eastern domination or who had Sehyeongdonggeom(細形銅劍) and Jujocheolbu(鑄造鐵斧) setteld on Gyeongju(慶州) when Junwang(準王) move south moment. six villages people of advanced culture at the time was settled in gyeonju and take the initiative through combination with jiseokmyo(支石墓) groups.
      The fact that the six villages headman had their son in the meeting reflects the social character of six villages. villages headman had the religious authority of the cheongangja's direct descendants and was in control of the villages generations. That means six villages is kindred who enshrined communal Ancestral god and unity of the church and state community. Furthermore when six villages people move south moment Gojoseon was ruled by a man of Priest King(司祭王)'s character. Naturally six village's headman had same character. Therefore they are the people who serve the ghost in Silla, respect memorial service(事鬼神 尙祭祀) and be respected by people in the country as a traditional jonjangja(尊長者) Jachoong(慈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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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신라인들은 건국의 기층집단인 육촌민들이 고조선 멸망 이후 남하한 유민임을 기억했다. 그래서 고조선 멸망 이후 최초의 갑자년인 BC 57년을 건국 기년으로 설정하였던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육촌장이 천강자이고 혁거세를 추대한 인물들로 소개되어 있다. 곧 육촌 관련 기사들을 고려하면 육촌은 혁거세집단보다 경주에 먼저 정착했던 조선 유민으로 이해된다.
      고고학계에 따르면 사로국 건국은 위만조선의 문화역량을 경험한 혁거세 집단의 경주 유입과 연결시킨다. 박씨 집단보다 먼저 유입된 육촌은 연의 동방 경략 이후 비파형동검과 이형동기를 지닌 고조선 유민과 준왕의 남하시기에 경주에 정착한 세형동검과 주조철부를 지닌 고조선 유민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선진문화를 지닌 육촌민은 경주에 정착하며 기존 지석묘집단과 결합하여 주도권을 장악하였던 것이다.
      육촌장이 촌장회의에 자제들을 동석시켰음은 육촌의 사회성격을 반영한다. 촌장은 시조 천강자의 직계 후손이라는 종교적 권위를 지니고 대대로 촌락 지배권을 소유했다. 곧 육촌은 공동의 조상신을 모시는 혈연으로 연결된 씨족사회이자 제정일치적 성격이 강한 사회였다. 더욱이 육촌민의 남하시기 고조선은 사제왕의 성격을 가진 유력자가 다스리고 있었다. 당연히 육촌장도 이와 동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신라에서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여 세상 사람으로부터 오랫동안 존경받은 전통적 존장자 자충이 바로 이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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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인들은 건국의 기층집단인 육촌민들이 고조선 멸망 이후 남하한 유민임을 기억했다. 그래서 고조선 멸망 이후 최초의 갑자년인 BC 57년을 건국 기년으로 설정하였던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인들은 건국의 기층집단인 육촌민들이 고조선 멸망 이후 남하한 유민임을 기억했다. 그래서 고조선 멸망 이후 최초의 갑자년인 BC 57년을 건국 기년으로 설정하였던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육촌장이 천강자이고 혁거세를 추대한 인물들로 소개되어 있다. 곧 육촌 관련 기사들을 고려하면 육촌은 혁거세집단보다 경주에 먼저 정착했던 조선 유민으로 이해된다.
      고고학계에 따르면 사로국 건국은 위만조선의 문화역량을 경험한 혁거세 집단의 경주 유입과 연결시킨다. 박씨 집단보다 먼저 유입된 육촌은 연의 동방 경략 이후 비파형동검과 이형동기를 지닌 고조선 유민과 준왕의 남하시기에 경주에 정착한 세형동검과 주조철부를 지닌 고조선 유민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선진문화를 지닌 육촌민은 경주에 정착하며 기존 지석묘집단과 결합하여 주도권을 장악하였던 것이다.
      육촌장이 촌장회의에 자제들을 동석시켰음은 육촌의 사회성격을 반영한다. 촌장은 시조 천강자의 직계 후손이라는 종교적 권위를 지니고 대대로 촌락 지배권을 소유했다. 곧 육촌은 공동의 조상신을 모시는 혈연으로 연결된 씨족사회이자 제정일치적 성격이 강한 사회였다. 더욱이 육촌민의 남하시기 고조선은 사제왕의 성격을 가진 유력자가 다스리고 있었다. 당연히 육촌장도 이와 동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신라에서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여 세상 사람으로부터 오랫동안 존경받은 전통적 존장자 자충이 바로 이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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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李淸圭, "嶺南地方靑銅器文化의 전개" 21 : 1997

      2 曺永鉉, "金陵松竹里遺蹟發掘調査" 1993

      3 이형우, "진・변한사연구"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02

      4 리순진, "우리나라 서북지방의 나무곽무덤에 대한 연구" 8 : 1983

      5 朴淳發, "우리나라 初期鐵器文化의 展開過程에 대한 약간의 考察" 4 : 1994

      6 김용성, "영남지방 목관묘와 사로국" 한국고대사학회 (82) : 7-44, 2016

      7 김병곤, "신라의 왕경 오악과 (소)금강산" 신라문화연구소 43 (43): 365-396, 2014

      8 김재홍, "신라[사로국]의 형성과 발전" 21 : 1996

      9 李炯佑, "사로국의 발전과 국읍의 변모, In 國邑에서 都城으로-新羅王京을 중심으로-" 26 : 2005

      10 최종규, "무덤에서 본 三韓社會의 構造및 特徵" 2 : 1991

      1 李淸圭, "嶺南地方靑銅器文化의 전개" 21 : 1997

      2 曺永鉉, "金陵松竹里遺蹟發掘調査" 1993

      3 이형우, "진・변한사연구"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02

      4 리순진, "우리나라 서북지방의 나무곽무덤에 대한 연구" 8 : 1983

      5 朴淳發, "우리나라 初期鐵器文化의 展開過程에 대한 약간의 考察" 4 : 1994

      6 김용성, "영남지방 목관묘와 사로국" 한국고대사학회 (82) : 7-44, 2016

      7 김병곤, "신라의 왕경 오악과 (소)금강산" 신라문화연구소 43 (43): 365-396, 2014

      8 김재홍, "신라[사로국]의 형성과 발전" 21 : 1996

      9 李炯佑, "사로국의 발전과 국읍의 변모, In 國邑에서 都城으로-新羅王京을 중심으로-" 26 : 2005

      10 최종규, "무덤에서 본 三韓社會의 構造및 特徵" 2 : 1991

      11 三品彰英, "骨品制社會" 學生社 7 : 1963

      12 金元龍, "韓國考古學硏究" 一志社 1987

      13 朱甫暾, "韓國社會發展史論" 一潮閣 1992

      14 李鍾旭, "韓國古代의 國家와 社會" 一潮閣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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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池健吉, "長水南陽里出土靑銅器・鐵器一括遺物" 2 : 1990

      18 榧本杜人, "金海貝塚甕棺箱式石棺-金海貝塚再檢討(承前)" 43 (4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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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沈奉謹, "慶南地方靑銅遺物의 新例" 4 :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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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藤田亮策, "大正11年度古蹟調査報告 2" 1992

      53 金龍星, "土器에 의한 大邱・慶山地域古代墳墓의 編年" 35 : 1996

      54 李健茂, "唐津素素里遺蹟出土一括遺物" 3 : 1991

      55 津田左右吉, "古事記及び日本書紀の硏究" 1924

      56 朝鮮總督府, "博物館陳列圖鑑 12" 1943

      57 李榮文, "全南地方支石墓社會의 領域圈과 構造에 대한 檢討" 5 :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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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崔夢龍, "全南先史考古學의 再照明" 12 :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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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李賢惠, "三韓의 ‘國邑’과 그 成長에 대하여" 69 : 1976

      62 孫秉憲, "三佛金元龍敎授停年退任紀念論叢"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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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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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8 1.18 1.0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6 0.97 2.484 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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