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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철학에서 '理到'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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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논문은 퇴계철학의 성격을 ‘理의 능동성’에 맞춰 해석하는 연구 방향에 의문을 제기하고, ‘理의 능동성’ 테제에 강력한 근거로 제시된 ‘理到’설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한 연구이다.
      ‘理到’는 원래 ‘物格’을 朱子가 ‘衆理之極處, 無不到’로 주석한 것과 관련하여 퇴계가 ‘衆理之極處’를 ‘到’의 주체로 볼 것인가, 대상으로 볼 것인가를 논하면서 제기한 용어이다. 퇴계는 ‘理’가 ‘到’의 주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理는 死物이 아니다’, ‘理에는 至神의 用이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조선의 학계에 논란을 일으켰다. 沙溪 이후 尤庵 등 栗谷 후학들은 퇴계의 이 주장을 ‘理活物’설로 규정하여 비판하였다.
      그런데 현대 연구자들은 ‘理活物’설을 퇴계철학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이론으로 재평가하였다. 율곡 후학은 理가 氣의 매개 없이 시공간을 이동한다는 것이 성리학의 이론체계에서는 성립할 수 없다고 비판하였는데 현대 연구자들은 이것을 주자철학을 뛰어넘은 이론으로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퇴계의, ‘理는 死物이 아니다’라는 퇴계의 말이 理가 氣의 매개 없이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이 논의를 촉발시킨 대학장구의 원문 ‘衆理之極處, 無不到’에서 ‘到’자는 ‘(窮究한 정도가) 지극하다’이고, 이 문장 전체의 의미는 “物理의 極處들이 모두 지극하게 궁구되다”로 해석된다. 高峰 이후 晩悔 權得己, 浦渚 趙翼 등이 이와 비슷하게 설명하였고 우암 이래 율곡 후학들이 대체로 이런 해석을 받아들였다. 퇴계 후학인 葛菴 李玄逸도 이에 동조하였다. 이것이 조선 학계의 대표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해석이 ‘物格’을 ‘理가 지극해지다[到]’로 풀이한다는 점 때문에 똑같이 ‘理到’설이라고 부른다. 이 논문에서는 조선 성리학계에서 치열하게 논의된 ‘物格’설을 포괄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인식론 분야에서 조선 성리학이 이룬 성과를 가늠해볼 수 있도록 하였다.
      퇴계의 ‘理到’설은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퇴계는 ‘到’를 ‘어디로부터 이르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며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매우 심오한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펼쳤다. 퇴계에 의하면 형이하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현상은 理의 顯行이다. 理가 형이상의 원리로만 존재하던 상태로부터 형이하의 현상으로 ‘이른다’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인식론에 적용시켜보면 인식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외부 사물에 내재한 理가 인식 주체인 내 마음 속에 하나의 현상으로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외부 사물에 내재한 理가 실제로 시공을 이동하여 내 마음 속으로 이르는 것은 아니다. 心과 理의 존재론적 전제에 따르면 외부 사물에 내재한 理는 사실 나의 心에 모두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어느 외부 사물의 理를 연구하여 인식하게 되면 그 사물의 理가 내 心 속으로 이르는 것이 아니라 내 心 속에 있던 그 사물과 관련한 理가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理의 體는 개별 사물에 내재하지만 인식이 이루어질 때 理의 用은 아무 장애 없이 소통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퇴계의 ‘理到’설은 理의 능동성을 주장하는 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논문에서는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인식 과정에 대한 퇴계의 설명을 재조명하였다. 퇴계는 '理는 死物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지만 그것은 '天道가 流行하여 만물을 발육한다'라는 주자의 존재론적 설명방식을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다. 현대 연구자들 중에는 퇴계가 말한 '理의 능동성'이란 시공간의 능동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 능동성 내지 형이상학적 능동성을 지칭한다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의미도 매우 모호하다. 주자철학에서 '天道流行'과 같은 서술은 理의 실재성을 강조한 표현이지 理가 특정한 의지를 가지고 형이상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動靜의 理가 動靜의 현상에 先在한다는 말인데, 이때 動靜의 理는 動靜의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일 뿐이지 물리 세계의 동정에 대해 '원인'으로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초월적 능동성이나 형이상학적 능동성이라는 말도 주자나 퇴계의 理 개념을 설명하기에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理의 능동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통해 주자 철학과 퇴계 철학 사이에 애써 간극을 만들려고 하는 현대 연구자들의 시도는 유효하지도 않을 뿐더러 퇴계 전체 철학이 그것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지도 않다는 점에서 철학적인 의미도 큰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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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퇴계철학의 성격을 ‘理의 능동성’에 맞춰 해석하는 연구 방향에 의문을 제기하고, ‘理의 능동성’ 테제에 강력한 근거로 제시된 ‘理到’설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한 연구이...

      본 논문은 퇴계철학의 성격을 ‘理의 능동성’에 맞춰 해석하는 연구 방향에 의문을 제기하고, ‘理의 능동성’ 테제에 강력한 근거로 제시된 ‘理到’설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한 연구이다.
      ‘理到’는 원래 ‘物格’을 朱子가 ‘衆理之極處, 無不到’로 주석한 것과 관련하여 퇴계가 ‘衆理之極處’를 ‘到’의 주체로 볼 것인가, 대상으로 볼 것인가를 논하면서 제기한 용어이다. 퇴계는 ‘理’가 ‘到’의 주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理는 死物이 아니다’, ‘理에는 至神의 用이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조선의 학계에 논란을 일으켰다. 沙溪 이후 尤庵 등 栗谷 후학들은 퇴계의 이 주장을 ‘理活物’설로 규정하여 비판하였다.
      그런데 현대 연구자들은 ‘理活物’설을 퇴계철학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이론으로 재평가하였다. 율곡 후학은 理가 氣의 매개 없이 시공간을 이동한다는 것이 성리학의 이론체계에서는 성립할 수 없다고 비판하였는데 현대 연구자들은 이것을 주자철학을 뛰어넘은 이론으로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퇴계의, ‘理는 死物이 아니다’라는 퇴계의 말이 理가 氣의 매개 없이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이 논의를 촉발시킨 대학장구의 원문 ‘衆理之極處, 無不到’에서 ‘到’자는 ‘(窮究한 정도가) 지극하다’이고, 이 문장 전체의 의미는 “物理의 極處들이 모두 지극하게 궁구되다”로 해석된다. 高峰 이후 晩悔 權得己, 浦渚 趙翼 등이 이와 비슷하게 설명하였고 우암 이래 율곡 후학들이 대체로 이런 해석을 받아들였다. 퇴계 후학인 葛菴 李玄逸도 이에 동조하였다. 이것이 조선 학계의 대표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해석이 ‘物格’을 ‘理가 지극해지다[到]’로 풀이한다는 점 때문에 똑같이 ‘理到’설이라고 부른다. 이 논문에서는 조선 성리학계에서 치열하게 논의된 ‘物格’설을 포괄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인식론 분야에서 조선 성리학이 이룬 성과를 가늠해볼 수 있도록 하였다.
      퇴계의 ‘理到’설은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퇴계는 ‘到’를 ‘어디로부터 이르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며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매우 심오한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펼쳤다. 퇴계에 의하면 형이하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현상은 理의 顯行이다. 理가 형이상의 원리로만 존재하던 상태로부터 형이하의 현상으로 ‘이른다’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인식론에 적용시켜보면 인식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외부 사물에 내재한 理가 인식 주체인 내 마음 속에 하나의 현상으로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외부 사물에 내재한 理가 실제로 시공을 이동하여 내 마음 속으로 이르는 것은 아니다. 心과 理의 존재론적 전제에 따르면 외부 사물에 내재한 理는 사실 나의 心에 모두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어느 외부 사물의 理를 연구하여 인식하게 되면 그 사물의 理가 내 心 속으로 이르는 것이 아니라 내 心 속에 있던 그 사물과 관련한 理가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理의 體는 개별 사물에 내재하지만 인식이 이루어질 때 理의 用은 아무 장애 없이 소통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퇴계의 ‘理到’설은 理의 능동성을 주장하는 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논문에서는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인식 과정에 대한 퇴계의 설명을 재조명하였다. 퇴계는 '理는 死物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지만 그것은 '天道가 流行하여 만물을 발육한다'라는 주자의 존재론적 설명방식을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다. 현대 연구자들 중에는 퇴계가 말한 '理의 능동성'이란 시공간의 능동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 능동성 내지 형이상학적 능동성을 지칭한다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의미도 매우 모호하다. 주자철학에서 '天道流行'과 같은 서술은 理의 실재성을 강조한 표현이지 理가 특정한 의지를 가지고 형이상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動靜의 理가 動靜의 현상에 先在한다는 말인데, 이때 動靜의 理는 動靜의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일 뿐이지 물리 세계의 동정에 대해 '원인'으로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초월적 능동성이나 형이상학적 능동성이라는 말도 주자나 퇴계의 理 개념을 설명하기에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理의 능동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통해 주자 철학과 퇴계 철학 사이에 애써 간극을 만들려고 하는 현대 연구자들의 시도는 유효하지도 않을 뿐더러 퇴계 전체 철학이 그것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지도 않다는 점에서 철학적인 의미도 큰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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