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빵떼옹의 정치사적, 예술사적 분석을 지향하는 본 논문은 직접적으로 1981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사회당 후보 미테랑이 대통령 취임을 위한 정치 이벤트의 무대로 빵떼옹을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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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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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빵떼옹의 정치사적, 예술사적 분석을 지향하는 본 논문은 직접적으로 1981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사회당 후보 미테랑이 대통령 취임을 위한 정치 이벤트의 무대로 빵떼옹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았다. 프랑스 현대 정치사를 돌아볼 때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정치적 승리를 알리는 공식 무대로 빵떼옹을 선택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들은 대통령궁 근처나 콩코드 광장과 같은 장소를 택해 태통령 취임을 알리는 행사를 거행했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데 필자는 그로부터 정치 의례의 공간으로서 빵떼옹의 정치적, 미학적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가톨릭 교회라는 종교적 시원을 갖는 빵떼옹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혁명의 묘지라는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정치적 기능의 변화과정은 빵떼옹의 건축 미학상의 변화 역시 이끌어낸다. 이후 제국, 왕정복고, 공화국, 제국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격변들은 빵떼옹의 정치적 성격과 미학적 내용을 계속 변화시키는데 프랑스 정체가 공화정으로 완결되는 19세기 후반 제 3공화국에 이르러 빵떼옹은 궁극적으로 공화국과 국민의 묘지, 즉 국립묘지라는 의미체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1981년 미테랑의 정치적 의례 행위는 빵떼옹의 이러한 역사와 밀접한 결합관계를 이해할 때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