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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조선 후기 태안이씨 의관 연구 - 사맹공파를 중심으로 = A study on medical bureaucrat of Taean Lee Clan in late Joseon Focused Samaeng-gong’s ance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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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84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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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태안이씨 사맹공파는 조선 후기 기술직 관료를 구성하는 주요한 가계의 하나이다. 조사된 가계 내의 의관은 총 65명이었다. 선행연구에서 조사된 57명에 새로 8명이 추가로 발굴되었다. 본 연...

      태안이씨 사맹공파는 조선 후기 기술직 관료를 구성하는 주요한 가계의 하나이다. 조사된 가계 내의 의관은 총 65명이었다. 선행연구에서 조사된 57명에 새로 8명이 추가로 발굴되었다. 본 연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냈다.
      첫째, 의관 가계로서 17세기 후반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18세기 중후반 전성기를 누렸고, 19세기에도 일정한 지위를 유지하였다. 가계 내 의관은 1672년 의과에 급제한 인물이 처음이었다. 18세기 중반, 내의를 3명이나 배출하면서 의관 가계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18세기 중후반은 활동한 가계 내 인물이 의관이 19명에 달한다. 19세기는 점차 고위직에 오른 의관이 줄었지만 배출 의관의 수는 비슷하였다.
      둘째, 사조 분석을 통해보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가계 내 세전 양상이 잘 나타난다. 사조 중에 의관이 없는 경우는 5례로 전체의 7.81%에 불과하다. 생년에 따른 활동 시기를 감안하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가계 내 세전 양상이 두드러진다.
      셋째, 가장 많이 종사한 의학 관청은 전의감이었다. 해당 의관 중에 전의감이 최종 관력인 이는 42명으로 65.6%에 달한다. 『해혹변의』를 저술하게 된 배경도 이와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다. 의관 가계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가계 내 후진의 의과 대비에 더욱 노력했을 가능성이 있다.
      넷째, 영조와 순조 때 의과의 급제 연령은 다른 의관 가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았다. 즉 세전 양상이 두드러진 시기에 급제 연령이 낮게 나타났다. 사맹공파 내에서 영정조기에 비하여 순조 대에 급제 연령이 높아졌다가 고종대에 다시 감소하는 추이도 세전과 급제 연령의 연소화와 관련시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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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Samaeng(司猛)-gong(公)’s ancestry of Taean Lee clan is one of the major clans that make up medical bureaucrats of the late Joseon Dynasty. There were 65 medical bureaucrats in the household surveyed. In addition to the 57 people investigated in t...

      Samaeng(司猛)-gong(公)’s ancestry of Taean Lee clan is one of the major clans that make up medical bureaucrats of the late Joseon Dynasty. There were 65 medical bureaucrats in the household surveyed. In addition to the 57 people investigated in the previous study, 8 additionally were discovered. Through this study,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drawn.
      1) As a medical bureaucratic family, it began to be formed in the late 17th century, enjoyed its heyday in the mid to late 18th century, and It maintained a certain position even in the 19th century. The first medical bureaucrat in the household was the first to enter Medical state examination in 1672. In the middle of the 18th century, it produced three royal doctors and established a solid position as a medical bureaucrat. In the mid to late 18th century, there were 19 medical bureaucrats who were active in the household. In the 19th century, while the number of medical officials who had risen to high positions gradually decreased, the number of medical officials discharged was similar.
      2) Through the analysis of father, grandfather, great-grandfather, and maternal grandfather, from the late 18th century to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the pattern of inheritance within households is well seen. Among the four ancestors, there were no medical officials in 5 cases, accounting for only 7.81% of the total. Considering the period of activity according to the year of birth, the pattern of pre-tax in households is prominent in the late 18th and early 19th centuries.
      3) The most engaged medical office was Jeoneuigam. Among the officers, the Jeonui-gam was the final official, accounting for 65.6% of the 42 people. The background that led to the writing of HaeHokByeonUi can be thought of in connection with this. As one of the means to maintain the status of the medical family, it is possible that they made more efforts to prepare for Medical state examination of the junior in the household.
      4) At the time of King Yeongjo and Soonjo, the passing age of Medical state examination was relatively low compared to other periods. In other words, when the hereditary pattern was prominent, the age of passing grades was 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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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두종, "한국의학사" 탐구당 1981

      2 황정하, "조선후기 산원집안의 연구 – 태안이씨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 66 : 47-73, 1989

      3 장인진, "조선후기 譯官族譜의 考察 - 『金山李氏世譜』를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원 (94) : 121-172, 2016

      4 오영숙, "조선후기 算學의 一面: 崔錫鼎의 算 ‘읽기’" 한국실학학회 (24) : 329-366, 2012

      5 이성무, "조선시대 잡과 합격자 총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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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박훈평, "조선시대 의관총목록" 한국한의학연구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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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김두헌, "조선시대 기술직 중인 신분 연구" 경인문화사 2013

      10 나영훈, "조선 후기 의과 입격자의 친족 네트워크와 결속" 대동문화연구원 (110) : 231-27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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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황정하, "조선후기 산원집안의 연구 – 태안이씨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 66 : 47-73,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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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박훈평, "조선시대 의학교과서 연구" 한국의사학회 29 (29): 1-16, 2016

      7 박훈평, "조선시대 의관총목록" 한국한의학연구원 2018

      8 김진, "조선시대 의관선발 - 영 정조 시대 의과방목 분석을 중심으로" 104 : 1-93, 1999

      9 김두헌, "조선시대 기술직 중인 신분 연구" 경인문화사 2013

      10 나영훈, "조선 후기 의과 입격자의 친족 네트워크와 결속" 대동문화연구원 (110) : 231-270, 2020

      11 김양수, "조선 후기 역관 집안의 연구 – 현덕윤 현채 등 천녕현씨가계를 중심으로" 19 : 9-45, 1999

      12 강위빙, "역주 혜국지" 퍼플 2015

      13 내의원, "역주 내의원식례" 퍼플 2015

      14 서울역사박물관 조사연구과, "서울특별시 문화유적 자료조사 종합보고서 2" 서울역사박물관 2005

      15 "辛亥五月初二日圖畫署一會時各處有司"

      16 "象院科榜"

      17 "泰安李氏世譜 戊戌譜"

      18 "氏族原流"

      19 박훈평, "李炳夏의 『解惑辨疑』 연구" 대한한의학원전학회 34 (34): 1-25, 2021

      20 "朝鮮王朝實錄"

      21 "承政院日記"

      22 박훈평, "19세기 후반 典醫監 醫學生徒에 대한 고찰 -『前銜生徒案』을 중심으로 -" 한국의사학회 26 (26): 1-7, 2013

      23 김두헌, "19세기 운학 완천 합격자와 그들의 가계" 전북사학회 (33) : 143-183, 2008

      24 이기복, "18세기 의관 이수기(李壽祺)의 자기인식: 기술직 중인의 전문가의식을 중심으로" 대한의사학회 22 (22): 483-528, 2013

      25 박경남, "16․17세기 庶孼 許通 上疏文 연구" 한국한문학회 (52) : 47-9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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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6-10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전남사학 -> 역사학연구 KCI등재
      2006-03-21 학회명변경 한글명 : 전남사학회 -> 호남사학회
      영문명 : Chonnam Historical Association -> Honam Historical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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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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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8 0.68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3 0.6 1.183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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