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19세기 말 조선에 강제된 영사재판 제도의 기원과 법적 근거, 그리고 운용의 실체를 분석하였다. 조·중·일 3국의 영사재판과 비교한 결과, <미청톈진조약&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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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19세기 말 조선에 강제된 영사재판 제도의 기원과 법적 근거, 그리고 운용의 실체를 분석하였다. 조·중·일 3국의 영사재판과 비교한 결과, <미청톈진조약&g...
본 연구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19세기 말 조선에 강제된 영사재판 제도의 기원과 법적 근거, 그리고 운용의 실체를 분석하였다. 조·중·일 3국의 영사재판과 비교한 결과, <미청톈진조약>이 가장 공세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일본과는 포괄적이고 모호한 규정이 주를 이루었다. 조선의 경우 규정상으로는 중간적 위치에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국력의 격차와 국제법 지식의 결여로 인해 취약하였다.
<주조선미국영사재판규칙>의 제정 경위와 내용을 분석한 결과, 미국공사가 입법·경찰·사법·재판권을 모두 행사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해당 규칙은 ‘조선 거주 미국인’이라는 대상에 맞게 만들어진 법으로 형사사건보다는 민사사건, 개항장 거류민, 상업 및 해상 직업 종사자들에게서 발생하는 사안들을 다루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재판의 기준법으로 캘리포니아주의 성문법과 함께 판례법, 형평법, 해사법, 조미조약, 미국연방법을 적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플래네건 사건’ 분석을 통해 영사의 사법 지식 부족, 본국 정치·여론의 개입, 항소 제약, 권한 집중과 부패 가능성 등 구조적 한계를 확인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고자 미 국무부는 상하이에 ‘미국 특별법원’을 설치하고 조선의 중대 사건을 이관하였다. 결론적으로, 영사재판은 소위 ‘문명국’의 법치와 인권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상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재판에서조차 심각한 제도적 모순과 구조적 한계를 노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