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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초 對日賓禮의 정비와 ‘受隣國書幣儀’ = The Establishment of the Rites of a Courtesy Call from Japan in early Chosun Dynasty and ‘Suringukseopye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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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aimed to consider changes in the perception of Japan in early Chosun dynasty within the framework of the rites and the consequential establishment of the Rites of a Courtesy Call(賓禮) from Japan with special reference to ‘Suringukseopyeui’(‘受隣國書幣儀’). At the beginning of the dynasty, Chosun sought the rites for Japanese envoy in regard to invasion by Japanese pirates that had lasted since the end of Goryeo dynasty. And the Chosun was not ready yet how the own diplomatic courtesy should be enforced. So that Japanese envoy could not be honored. However Japanese envoy had been located on 3th officers position from the early Sejong period, which was quiet a upgraded treatment compared to earlier one. ‘A Procedure to Bow of the Japanese Envoy’(‘倭使肅拜節次’) established in 1425 was made concrete a procedure of rites that Japanese envoy appears. But this procedure was pretty similar to the Court Rites’(朝會) one that all the Chosun’s officers bow to a king at the same time and it means that ‘A Procedure to Bow of the Japanese Envoys’ was actually not a special treatment. This feature would be more stood out alongside the establishment of Congratulatory Rites(嘉禮) in the late of Sejong period. ‘A Rite to Bow of the Japanese Envoys’(‘日本國使肅拜儀’) established in 1448 have the same structure from executives and participant’s locations as compared with Congratulatory Rites which is based on the sovereign and subject relationship. The rites establishment for Sejong period was formulated by including ‘Suringukseopyeui’ in Sejong Annals’(『世宗實錄』) Orye(「五禮」) and Gukjooryeui(『國朝五禮儀』). ‘Suringukseopyeui’ has accepted ‘Subunguksapyogeuppye’(‘受蕃國使表及幣’)’ in Daedangkaewonrye (『大唐開元禮』). It means that Chosun was aiming to Chosun-centric diplomatic order. This aim is to show the reason why ‘Suringukseopyeui’ in Gukjooryeui was modified in a way that shares the procedure of Court Rites. Therefore a descriptive part of the Rites of a Courtesy Call has been omitted like a Japanese envoy’s location, so that it should look at the Court Rites. Also its location was upgraded to 2th after Sejong Annals’ Orye was because the establishment of Court Rites. China dynasty has been separated more than 3th or less in the procedure of Court Rites, and Foreign envoy was located on 3th which is end of the boundary. Similarly, Chosun also considered the status of Japanese envoys in response to Chosun’ own Court Rites separating more than 2th or less. And to conclude, the establishment of ‘Suringukseopyeui’ shows that Chosun was seeking Chosun-centric diplomatic order through the rites procedure to enforce the king of Chosun and his sub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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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aimed to consider changes in the perception of Japan in early Chosun dynasty within the framework of the rites and the consequential establishment of the Rites of a Courtesy Call(賓禮) from Japan with special reference to ‘Suringukseopy...

      This study aimed to consider changes in the perception of Japan in early Chosun dynasty within the framework of the rites and the consequential establishment of the Rites of a Courtesy Call(賓禮) from Japan with special reference to ‘Suringukseopyeui’(‘受隣國書幣儀’). At the beginning of the dynasty, Chosun sought the rites for Japanese envoy in regard to invasion by Japanese pirates that had lasted since the end of Goryeo dynasty. And the Chosun was not ready yet how the own diplomatic courtesy should be enforced. So that Japanese envoy could not be honored. However Japanese envoy had been located on 3th officers position from the early Sejong period, which was quiet a upgraded treatment compared to earlier one. ‘A Procedure to Bow of the Japanese Envoy’(‘倭使肅拜節次’) established in 1425 was made concrete a procedure of rites that Japanese envoy appears. But this procedure was pretty similar to the Court Rites’(朝會) one that all the Chosun’s officers bow to a king at the same time and it means that ‘A Procedure to Bow of the Japanese Envoys’ was actually not a special treatment. This feature would be more stood out alongside the establishment of Congratulatory Rites(嘉禮) in the late of Sejong period. ‘A Rite to Bow of the Japanese Envoys’(‘日本國使肅拜儀’) established in 1448 have the same structure from executives and participant’s locations as compared with Congratulatory Rites which is based on the sovereign and subject relationship. The rites establishment for Sejong period was formulated by including ‘Suringukseopyeui’ in Sejong Annals’(『世宗實錄』) Orye(「五禮」) and Gukjooryeui(『國朝五禮儀』). ‘Suringukseopyeui’ has accepted ‘Subunguksapyogeuppye’(‘受蕃國使表及幣’)’ in Daedangkaewonrye (『大唐開元禮』). It means that Chosun was aiming to Chosun-centric diplomatic order. This aim is to show the reason why ‘Suringukseopyeui’ in Gukjooryeui was modified in a way that shares the procedure of Court Rites. Therefore a descriptive part of the Rites of a Courtesy Call has been omitted like a Japanese envoy’s location, so that it should look at the Court Rites. Also its location was upgraded to 2th after Sejong Annals’ Orye was because the establishment of Court Rites. China dynasty has been separated more than 3th or less in the procedure of Court Rites, and Foreign envoy was located on 3th which is end of the boundary. Similarly, Chosun also considered the status of Japanese envoys in response to Chosun’ own Court Rites separating more than 2th or less. And to conclude, the establishment of ‘Suringukseopyeui’ shows that Chosun was seeking Chosun-centric diplomatic order through the rites procedure to enforce the king of Chosun and his sub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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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儀禮라는 틀을 통해 조선초 對日認識의 변화를 살피고, 그에 따른 對日賓禮의 정비과정 및 의미를 ‘受隣國書幣儀’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조선 건국초 대일빈례는 고려말부터 계속된 왜구문제와 관련하여 모색되었고, 또 나름의 외교의례를 갖추기엔 아직 조선 내의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본국왕사는 예우의 대상이 아니었다. 일본국왕사를 다소 낮게 평가했던 건국초의 분위기는 세종대에 들어와 이들의 위차가 이전의 4~5품에서 3품으로 격상되며 변화를 보였다. 그리고 1425년(세종 7)에는 처음으로 일본국왕사가 등장하는 의례절차를 구체화한 ‘倭使肅拜節次’가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의식구조는 일상적인 조회의식과 다를 바 없이 오로지 세종에 대한 일본국왕사의 숙배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가례의식의 정비와 더불어 세종대 후반 더욱 두드러져, 1448년(세종 30) 상정된 ‘日本國使肅拜儀’의 집사관 및 자리설정은 군신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가례의식의 구조와 동일한 모습을 보였다. 세종대에 보인 대일 의례수준은 ‘수린국서폐의’라는 의주명으로 『세종실록』 「오례」와 『국조오례의』의 빈례항목에 편제되어 공식화되었다. ‘수린국서폐의’의 빈례 편제는 『大唐開元禮』 빈례의 ‘受蕃國使表及幣’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조선이 적어도 철저히 조선의 입장에서, 조선을 나름의 중심으로 설정한 외교질서를 지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조선의 목표는, 『국조오례의』가 그 준비부터 참여자의 입․퇴장 그리고 사배-행례-사배라는 원칙까지 철저히 조하의식의 절차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수정된 것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빈례의식에 끼친 가례의 영향은 그 의식구조가 동일하다는 전제 아래 그 설명 일부를 생략한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일본국왕사의 위차이다. ‘수린국서폐의’에서 이를 생략한 것은 그 의식구조가 조하의식과 동일함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 「오례」 이후 종2품으로 격상된 이들의 위차 변화 이유 또한 조하의식의 정비과정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조선은, 중국왕조가 3품 이상 관원의 이동 및 자리를 구분하는 의식절차 내에서 국외사신이 그 구분선의 끝인 3품에 자리한 것과 유사하게, 2품 이상의 관원을 구분하는 조선 나름의 조하의주 정비 이후 그 속에서 일본국왕사의 위상을 고려한 것이다. 즉, ‘수린국서폐의’의 제정은 조선국왕과 그 신하들 사이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의식구조를 통해 조선이 나름의 중심으로 상정된 외교질서를 추구하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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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儀禮라는 틀을 통해 조선초 對日認識의 변화를 살피고, 그에 따른 對日賓禮의 정비과정 및 의미를 ‘受隣國書幣儀’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조선 건국초 대일빈례는 고려말부터 계...

      본고는 儀禮라는 틀을 통해 조선초 對日認識의 변화를 살피고, 그에 따른 對日賓禮의 정비과정 및 의미를 ‘受隣國書幣儀’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조선 건국초 대일빈례는 고려말부터 계속된 왜구문제와 관련하여 모색되었고, 또 나름의 외교의례를 갖추기엔 아직 조선 내의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본국왕사는 예우의 대상이 아니었다. 일본국왕사를 다소 낮게 평가했던 건국초의 분위기는 세종대에 들어와 이들의 위차가 이전의 4~5품에서 3품으로 격상되며 변화를 보였다. 그리고 1425년(세종 7)에는 처음으로 일본국왕사가 등장하는 의례절차를 구체화한 ‘倭使肅拜節次’가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의식구조는 일상적인 조회의식과 다를 바 없이 오로지 세종에 대한 일본국왕사의 숙배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가례의식의 정비와 더불어 세종대 후반 더욱 두드러져, 1448년(세종 30) 상정된 ‘日本國使肅拜儀’의 집사관 및 자리설정은 군신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가례의식의 구조와 동일한 모습을 보였다. 세종대에 보인 대일 의례수준은 ‘수린국서폐의’라는 의주명으로 『세종실록』 「오례」와 『국조오례의』의 빈례항목에 편제되어 공식화되었다. ‘수린국서폐의’의 빈례 편제는 『大唐開元禮』 빈례의 ‘受蕃國使表及幣’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조선이 적어도 철저히 조선의 입장에서, 조선을 나름의 중심으로 설정한 외교질서를 지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조선의 목표는, 『국조오례의』가 그 준비부터 참여자의 입․퇴장 그리고 사배-행례-사배라는 원칙까지 철저히 조하의식의 절차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수정된 것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빈례의식에 끼친 가례의 영향은 그 의식구조가 동일하다는 전제 아래 그 설명 일부를 생략한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일본국왕사의 위차이다. ‘수린국서폐의’에서 이를 생략한 것은 그 의식구조가 조하의식과 동일함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 「오례」 이후 종2품으로 격상된 이들의 위차 변화 이유 또한 조하의식의 정비과정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조선은, 중국왕조가 3품 이상 관원의 이동 및 자리를 구분하는 의식절차 내에서 국외사신이 그 구분선의 끝인 3품에 자리한 것과 유사하게, 2품 이상의 관원을 구분하는 조선 나름의 조하의주 정비 이후 그 속에서 일본국왕사의 위상을 고려한 것이다. 즉, ‘수린국서폐의’의 제정은 조선국왕과 그 신하들 사이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의식구조를 통해 조선이 나름의 중심으로 상정된 외교질서를 추구하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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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문정희, "천공의 옥좌" 신서원 2002

      2 한문종, "조선초기의 왜구대책과 대마도정벌" 19 : 1997

      3 한형주, "조선초기 국가제례 연구" 고려대 2001

      4 한문종, "조선전기 日本國王使의 朝鮮通交" 한일관계사학회 (21) : 5-36, 2004

      5 하우봉, "조선시대 한국인의 일본인식" 혜안 2006

      6 강제훈, "조선 초기의 朝會 의식" 조선시대사학회 (28) : 5-46, 2004

      7 김해영, "조선 초기 禮制 연구와 『國朝五禮儀』의 편찬" 조선시대사학회 (55) : 41-80, 2010

      8 강제훈, "조선 초기 朝儀의 의례구조와 상징" 한국사연구회 (137) : 181-225, 2007

      9 강제훈, "조선 世宗朝의 조회" 한국사연구회 (128) : 103-145, 2005

      10 민덕기,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의 한․일관계" 景仁文化社 2007

      1 문정희, "천공의 옥좌" 신서원 2002

      2 한문종, "조선초기의 왜구대책과 대마도정벌" 19 : 1997

      3 한형주, "조선초기 국가제례 연구" 고려대 2001

      4 한문종, "조선전기 日本國王使의 朝鮮通交" 한일관계사학회 (21) : 5-36, 2004

      5 하우봉, "조선시대 한국인의 일본인식" 혜안 2006

      6 강제훈, "조선 초기의 朝會 의식" 조선시대사학회 (28) : 5-46, 2004

      7 김해영, "조선 초기 禮制 연구와 『國朝五禮儀』의 편찬" 조선시대사학회 (55) : 41-80, 2010

      8 강제훈, "조선 초기 朝儀의 의례구조와 상징" 한국사연구회 (137) : 181-225, 2007

      9 강제훈, "조선 世宗朝의 조회" 한국사연구회 (128) : 103-145, 2005

      10 민덕기,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의 한․일관계" 景仁文化社 2007

      11 Howard J. Wechsler, "비단같고 주옥같은 정치" 고즈윈 2005

      12 "高麗史"

      13 田中健夫, "韓國史學論叢: 水邨朴永錫敎授華甲紀念" 探求堂 1992

      14 "通典"

      15 "禮記"

      16 "朝鮮王朝實錄"

      17 장순순, "朝鮮前期 倭館의 成立과 조․일 외교의 특질" 15 : 2001

      18 정다함, "朝鮮初期 野人과 對馬島에 대한 藩籬 · 藩屛 認識의 형성과 敬差官의 파견" 국학연구원 141 (141): 221-266, 2008

      19 방기철, "朝鮮初期 交隣國 使臣의 位次-朝?日關係를 중심으로-" 한국사학회 (79) : 49-79, 2005

      20 "明集禮"

      21 정다함, "征伐이라는 戰爭/征伐이라는 祭祀 - 世宗代 己亥年 “東征”과 婆猪江 “野人征伐”을 중심으로 -" 고려사학회 (52) : 271-306, 2013

      22 민덕기, "室町幕府시대의 對明 冊封관계의 성립과 변화" 6 : 1994

      23 高橋公明, "外交文書<書>․<咨>について" 7 : 1982

      24 高橋公明, "外交儀礼よりみた室町時代の日朝関係" 91 (91): 1982

      25 "國朝五禮儀"

      26 金成奎, "中國王朝에서 賓禮의 沿革" 중국사학회 23 : 71-102, 2003

      27 김성규, "『大唐開元禮』 所載 外國使 관련 諸儀禮의 재검토" 중국고중세사학회 (27) : 347-397, 2012

      28 정다함, "‘事大’와 ‘交隣’과 ‘小中華’라는 틀의 초시간적인 그리고 초공간적인 맥락" 고려사학회 (42) : 287-3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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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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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7 0.87 0.9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98 2.253 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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