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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식민지기 홍보 이미지 자료를 통한 경성에서의 박람회 연구 = A study on the exhibition in Gyeongseong of the colonial period through the promotional image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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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890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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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Gyeongseo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many expositions were held, starting with the 1915 Joseon Trade Fair, the 1923 Joseon Industry Exhibition, the 1926 Joseon Exhibition, the 1929 Joseon Exhibition, the 1935 Joseon Industry Exhibition, and the 1940 Joseon Grand Exhibition. This thesis examines the exhibition held in Gyeongseo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rough the promotional image materials. As image materials, we looked at not only printed materials such as posters, picture postcards, and invitations, but also admission tickets, propaganda towers, and memorabilia.
      Joseon Government-General chose Gyeongbokgung as the venue for the exhibition. This was 'public spaceization' and 'deauthorization', and it was a general direction to reorganize the existing power space in modern times. However, considering that many traditional buildings appear in promotional image materials such as posters, it seems that, unlike general imperialism, the attitude toward evaluating the old power space was not negative. And street promotional materials such as propaganda towers and decorations created a vista landscape on the main street of Gyeongseong.
      Through a diachronic comparison of promotional image materials, it was confirmed that the emphasis on Joseon locality appeared not only in the 1929 Joseon Exhibition, but also in the exhibitions held at other times. ‘Joseon on the path to civilization’ was more effective in rationalizing the ongoing colonial rule.
      The image of women in the poster can be explained as colonialism or Orientalism, but it was basically an expression of sexual objectification and fixed gender roles, and there were differences depending on th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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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Gyeongseo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many expositions were held, starting with the 1915 Joseon Trade Fair, the 1923 Joseon Industry Exhibition, the 1926 Joseon Exhibition, the 1929 Joseon Exhibition, the 1935 Joseon Industry Exhibition, and the ...

      In Gyeongseo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many expositions were held, starting with the 1915 Joseon Trade Fair, the 1923 Joseon Industry Exhibition, the 1926 Joseon Exhibition, the 1929 Joseon Exhibition, the 1935 Joseon Industry Exhibition, and the 1940 Joseon Grand Exhibition. This thesis examines the exhibition held in Gyeongseo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rough the promotional image materials. As image materials, we looked at not only printed materials such as posters, picture postcards, and invitations, but also admission tickets, propaganda towers, and memorabilia.
      Joseon Government-General chose Gyeongbokgung as the venue for the exhibition. This was 'public spaceization' and 'deauthorization', and it was a general direction to reorganize the existing power space in modern times. However, considering that many traditional buildings appear in promotional image materials such as posters, it seems that, unlike general imperialism, the attitude toward evaluating the old power space was not negative. And street promotional materials such as propaganda towers and decorations created a vista landscape on the main street of Gyeongseong.
      Through a diachronic comparison of promotional image materials, it was confirmed that the emphasis on Joseon locality appeared not only in the 1929 Joseon Exhibition, but also in the exhibitions held at other times. ‘Joseon on the path to civilization’ was more effective in rationalizing the ongoing colonial rule.
      The image of women in the poster can be explained as colonialism or Orientalism, but it was basically an expression of sexual objectification and fixed gender roles, and there were differences depending on th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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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식민지기 경성에서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시작으로 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 1926년 조선박람회, 1929년의 조선박람회, 1935년 조선산업박람회, 1940년 조선대박람회 등 많은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이 논문은 박람회의 홍보 이미지 자료를 통해 식민지기 경성에서 개최된 박람회의 성격과 인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미지 자료로는 포스터를 비롯하여 그림엽서, 안내장과 같은 종이에 인쇄한 자료뿐만 아니라 입장권, 선전탑, 기념물품 등도 살펴보았다.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을 박람회장으로 선택하였다. 이는 ‘공공공간화’이자 ‘탈권위화’이고, 근대에 기존의 권력공간을 재편하는 일반적인 방향이었다. 그러나 포스터 등 홍보 이미지 자료에 궁궐 등 전통 건축물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일반적인 제국주의와는 달리 옛 권력공간을 평가하는 태도가 부정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선전탑과 선전장식 등의 거리 홍보물이 경성역-남대문-경성부청-광화문(조선총독부)으로 이어지는 식민지기 경성의 핵심가로에서 비스타 경관을 만들어낸 것도 확인하였다.
      홍보 이미지 자료의 통시적인 비교를 통해서는, 조선성에 대한 강조가 1929년의 조선박람회뿐만 아니라 다른 시기 개최된 박람회에서도 등장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식민지인 조선에서 개최된 박람회의 경우 문명 대 야만이라는 구도보다 과거의 조선 대 현재의 조선이라는 구도가 주요하게 등장할 수밖에 없었고, ‘문명화의 길로 접어든 조선’이라는 것이 진행 중인 식민통치를 합리화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이미지 자료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식민지를 여성화하는 콜로니얼리즘, 또는 동양을 여성화하는 오리엔탈리즘으로 설명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성적 대상화와 고정적인 성역할의 표현이었고, 시기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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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기 경성에서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시작으로 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 1926년 조선박람회, 1929년의 조선박람회, 1935년 조선산업박람회, 1940년 조선대박람회 등 많은 박람회가 개최...

      식민지기 경성에서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시작으로 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 1926년 조선박람회, 1929년의 조선박람회, 1935년 조선산업박람회, 1940년 조선대박람회 등 많은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이 논문은 박람회의 홍보 이미지 자료를 통해 식민지기 경성에서 개최된 박람회의 성격과 인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미지 자료로는 포스터를 비롯하여 그림엽서, 안내장과 같은 종이에 인쇄한 자료뿐만 아니라 입장권, 선전탑, 기념물품 등도 살펴보았다.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을 박람회장으로 선택하였다. 이는 ‘공공공간화’이자 ‘탈권위화’이고, 근대에 기존의 권력공간을 재편하는 일반적인 방향이었다. 그러나 포스터 등 홍보 이미지 자료에 궁궐 등 전통 건축물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일반적인 제국주의와는 달리 옛 권력공간을 평가하는 태도가 부정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선전탑과 선전장식 등의 거리 홍보물이 경성역-남대문-경성부청-광화문(조선총독부)으로 이어지는 식민지기 경성의 핵심가로에서 비스타 경관을 만들어낸 것도 확인하였다.
      홍보 이미지 자료의 통시적인 비교를 통해서는, 조선성에 대한 강조가 1929년의 조선박람회뿐만 아니라 다른 시기 개최된 박람회에서도 등장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식민지인 조선에서 개최된 박람회의 경우 문명 대 야만이라는 구도보다 과거의 조선 대 현재의 조선이라는 구도가 주요하게 등장할 수밖에 없었고, ‘문명화의 길로 접어든 조선’이라는 것이 진행 중인 식민통치를 합리화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이미지 자료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식민지를 여성화하는 콜로니얼리즘, 또는 동양을 여성화하는 오리엔탈리즘으로 설명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성적 대상화와 고정적인 성역할의 표현이었고, 시기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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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각규, "한국의 근대박람회" 커뮤니케이션북스 2010

      2 최석영, "한국 근대의 박람회・박물관" 서경문화사 2001

      3 김영희, "조선박람회와 식민지 근대" 국학연구원 (140) : 221-267, 2007

      4 염복규, "조선박람회 전시관 양식에 보이는제국과 식민지, 수도와 지방" 인문학연구원 75 (75): 129-162, 2018

      5 목수현, "일제하 박물관의 형성과 그 의미"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0

      6 홍순민, "일제의 식민 침탈과 경복궁 훼손" 5 (5): 2004

      7 송인호, "일제강점기 박람회의 개최와 경복궁의 위상변동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와 1929년 조선박람회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소 (55) : 111-138, 2014

      8 강상훈, "일제강점기 박람회 건축을 통해 본 건축양식의 상징성" 한국건축역사학회 15 (15): 7-25, 2006

      9 강상훈, "일제강점기 근대시설의 모더니즘 수용 : 박람회·보통학교·아파트 건축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4

      10 박성진, "일제강점기 경복궁 전각의 훼철과 이건" 대한건축학회 23 (23): 133-140, 2007

      1 이각규, "한국의 근대박람회" 커뮤니케이션북스 2010

      2 최석영, "한국 근대의 박람회・박물관" 서경문화사 2001

      3 김영희, "조선박람회와 식민지 근대" 국학연구원 (140) : 221-267, 2007

      4 염복규, "조선박람회 전시관 양식에 보이는제국과 식민지, 수도와 지방" 인문학연구원 75 (75): 129-162, 2018

      5 목수현, "일제하 박물관의 형성과 그 의미"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0

      6 홍순민, "일제의 식민 침탈과 경복궁 훼손" 5 (5): 2004

      7 송인호, "일제강점기 박람회의 개최와 경복궁의 위상변동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와 1929년 조선박람회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소 (55) : 111-138, 2014

      8 강상훈, "일제강점기 박람회 건축을 통해 본 건축양식의 상징성" 한국건축역사학회 15 (15): 7-25, 2006

      9 강상훈, "일제강점기 근대시설의 모더니즘 수용 : 박람회·보통학교·아파트 건축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4

      10 박성진, "일제강점기 경복궁 전각의 훼철과 이건" 대한건축학회 23 (23): 133-140, 2007

      11 육영수, "일본제국의 국제·식민박람회 사용법 -1910년 일본-영국박람회와 1929년 조선박람회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서양사학회 (146) : 122-153, 2020

      12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13 최병택, "욕망의 전시장 : 식민지 조선의 공진회와 박람회" 서해문집 2020

      14 김제정, "식민지기 조선인과 재조일본인의 경성 안내서 비교:『京城便』覽(1929)과 『大京城』(1929)" 도시사학회 (19) : 63-86, 2018

      15 김제정, "식민지기 박람회 연구 시각과 지역성 — 1929년 조선박람회를 중심으로 —" 도시사학회 (9) : 7-32, 2013

      16 하세봉, "식민지권력의 두 가지 얼굴 - 조선박람회(1929년)와 대만박람회(1935년)의 비교 -" 부산경남사학회 (51) : 111-143, 2004

      17 "서울역사아카이브"

      18 토드 헨리, "서울, 권력 도시 : 일본 식민 지배와 공공 공간의 생활정치" 산처럼 2020

      19 吉見俊哉, "박람회–근대의 시선" 논형 2004

      20 하세봉, "동아시아 엑스포의 역사" 산지니 2019

      21 "근현대사디지털아카이브"

      22 山路勝彦, "近代日本の植民地博覽會" 風響社 2008

      23 남기웅, "1929년 조선박람회와 ‘식민지 근대성’" 동아시아문화연구소 (43) : 157-184, 2008

      24 김태웅, "1915년 京城府 物産共進會와 日帝의 政治宣傳" 서울학연구소 (18) : 139-168, 2002

      25 최병택, "1910~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개최된 공진회와 박람회의 성격" 전북사학회 (53) : 275-3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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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2-26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History of Seoul -> Seoul and History KCI등재
      2016-02-03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鄕土서울 -> 서울과 역사
      외국어명 : The Hyangto Seoul -> The History of Seoul
      KCI등재
      2015-10-22 학회명변경 한글명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서울역사편찬원
      영문명 : The City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Seoul ->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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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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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7 0.27 0.3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5 0.33 1.024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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