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전라남도 도평의회에서 일어난 조선인 도평의회의원(이하 도평의원)과 일본인 도평의원 사이의 ?알력?사건은 일본인 도평의원 야마노로조(山野瀧三)의 회의장 밖에서의 발언 내용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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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159-187(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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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전라남도 도평의회에서 일어난 조선인 도평의회의원(이하 도평의원)과 일본인 도평의원 사이의 ?알력?사건은 일본인 도평의원 야마노로조(山野瀧三)의 회의장 밖에서의 발언 내용에 대해 조선인 도평의원들이 조선인을 무시했다며 사과를 요구하고 심의를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 도지사의 중재로 야마노가 조선인 도평의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죄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도평의원들이 회의장 밖에서의 야마노의 발언을 회의장안에서 거론한 것은 의사규칙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도지사가 조선인 도평의원들의 반박 연설을 허용하고 야마노에게 사죄를 강요한 것은 부당하다며 신문 등을 통해 강하게 반발하면서 사건이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감정문제로 확대되었다.
이후 조선인 도평의원들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성명서 발표를 준비하며 조직적 대응을 시도하자 도당국이 주도적으로 화해안을 발표하여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였다. 이에 항의해 조선인 도평의원들이 사건의 진상과 자신들의 의견을 성명서로 발표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결국 지사의 교섭으로 사직의원들이 사퇴를 철회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와 같이 전개된 사건의 일련의 과정으로부터 동화주의를 지배이념으로 내걸은 일본제국주의가 동화의 한 단계로 설정하고 일방적인 협력을 기대했던 지방자문기관에서조차도 실제로 일본인 도평의원의 조선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존재했으며 이에 대해 조선인 도평의원들은 조선인의 입장에서 도당국과의 갈등과 대립을 무릅쓰고 반발하였음을 잘 알 수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의 정치과정을 탄압과 회유를 통해 조선인의 합의를 도출해서 지배이념을 순조롭게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으며, 조선인 도평의원 역시 지배당국과의 협력과 대립 관계 속에서 조선인의 지지를 얻어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유지?확대하고 더 많은 권력을 분점받는 일 또한 간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바로 식민지 조선에서 전개된 일본제국주의가 안고 있었던 난점과 식민지 조선의 지방정치의 실제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목차 (Table of Contents)
일제침략기 선교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과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을 통해 본 한일관계에 대한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