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고려후기 征東行省理問所의 등장과 존재 양태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1952786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征東行省에 예속된 官署인 理問所는 行省三所의 하나로서 핵심적인 관서였다. 기록상 이문소의 始置시기는 나오지 않지만, 정동행성이 설치된 이후에 후속적으로 두어졌다. 그런데 최초로 이문관에 제수된 金富允과 鄭仁卿의 활동 상황을 고려하면, 대체로 충렬왕 9년에서 15년 사이에 설치된 것으로 파악된다.
    행성의 이문소는 理問․副理問․知事․提控案牘의 관원으로 편제되었고 이문과 부이문은 정원이 두 명이었다. 그런데 고려의 경우에는 대부분 理問혹은 理問官이고 知事․提控案牘 사례는 찾을 수 없으며, 理問郎中이라는 『元史』 백관지에 없는 직함도 나온다. 따라서 정동행성이문소는 職制나 職窠에 맞추어 운영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理問은 審理 혹은 訊問한다는 뜻으로 이문관의 주요 업무는 刑政과 決獄이었다. 따라서 刑名에 능통한지 여부가 이문관 선발에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문소라는 官署名은 충숙왕 8년(1321) 權漢功 사건에서 처음 등장하며, 충혜왕대 申靑의 옥사와 충목왕대 整治都監을 둘러싼 訟事에서 그 존재가 부각되었다.
    이문소의 주요 업무가 決獄이었으므로 獄事가 발생했을 때 이문소에 내려 죄인을 국문하였다. 이런 점에서 行省獄을 이문소의 獄으로 보느냐 별개로 보는냐에 따라 이문소의 관할 업무나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문소의 업무가 訊問이었기 때문에 ‘下理問’ 내지 ‘囚理問’은 獄事에 수반된 취조와 심문을 하기 위해 이문소에 일정 기간 구류한 것이다. 따라서 행성옥에 가두었다는 표현은 있지만 理問獄에 가두었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번역하기

    征東行省에 예속된 官署인 理問所는 行省三所의 하나로서 핵심적인 관서였다. 기록상 이문소의 始置시기는 나오지 않지만, 정동행성이 설치된 이후에 후속적으로 두어졌다. 그런데 최초로 ...

    征東行省에 예속된 官署인 理問所는 行省三所의 하나로서 핵심적인 관서였다. 기록상 이문소의 始置시기는 나오지 않지만, 정동행성이 설치된 이후에 후속적으로 두어졌다. 그런데 최초로 이문관에 제수된 金富允과 鄭仁卿의 활동 상황을 고려하면, 대체로 충렬왕 9년에서 15년 사이에 설치된 것으로 파악된다.
    행성의 이문소는 理問․副理問․知事․提控案牘의 관원으로 편제되었고 이문과 부이문은 정원이 두 명이었다. 그런데 고려의 경우에는 대부분 理問혹은 理問官이고 知事․提控案牘 사례는 찾을 수 없으며, 理問郎中이라는 『元史』 백관지에 없는 직함도 나온다. 따라서 정동행성이문소는 職制나 職窠에 맞추어 운영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理問은 審理 혹은 訊問한다는 뜻으로 이문관의 주요 업무는 刑政과 決獄이었다. 따라서 刑名에 능통한지 여부가 이문관 선발에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문소라는 官署名은 충숙왕 8년(1321) 權漢功 사건에서 처음 등장하며, 충혜왕대 申靑의 옥사와 충목왕대 整治都監을 둘러싼 訟事에서 그 존재가 부각되었다.
    이문소의 주요 업무가 決獄이었으므로 獄事가 발생했을 때 이문소에 내려 죄인을 국문하였다. 이런 점에서 行省獄을 이문소의 獄으로 보느냐 별개로 보는냐에 따라 이문소의 관할 업무나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문소의 업무가 訊問이었기 때문에 ‘下理問’ 내지 ‘囚理問’은 獄事에 수반된 취조와 심문을 하기 위해 이문소에 일정 기간 구류한 것이다. 따라서 행성옥에 가두었다는 표현은 있지만 理問獄에 가두었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munso was one of the three major departments of Jeongdonghangseong. Given the records on activities of Imunso officials, Kim Buyun and Jeong Ingyeong, it is estimated that Imunso was established sometime between the ninth and the fifteenth year of King Chungryeol’s reign.
    Imunso of a hangseong had several officials. However, records from the Goryeo Dynasty mostly contain only the title of imun, suggesting that the office was not managed according to respective positions of officials. Sometimes, an imun official was transferred to Jwawoosa as nangjung, and in some cases, went on to become an imunnangjung, which combined the titles of Jwawoosa and Imunso.
    Imun means to “investigate” or “interrogate”, and the main job of an imun official involved administration of criminal cases and trial of murder cases. Thus, knowledge of types of criminal punishment was key criteria in selecting imun officials. The name, imunso, first appeared during a Kwon Hangong case in the eighth year of King Chungsuk’s reign (1321), and became widely known through an imprisonment of Shin Cheong during the reign of King Chunghye and a lawsuit regarding Jeongchidogam during the reign of King Chungmok.
    Since the main duty of imunso was trial of a murder case, when a murder took place, the criminal was sent to imunso for interrogation. ‘Harimun(下理問)’ or ‘Surimun(囚理問)’ indicated being detained at imunso for interrogation to resolve a murder case. A person was said to be ‘imprisoned’ in hangseongok (jail at hangseong), but ‘imprisonment’ was not used to indicate a detention at imunso. Thus, there is no need to make a distinction between being sent to imunso and being sent to hangseongok.
    번역하기

    Imunso was one of the three major departments of Jeongdonghangseong. Given the records on activities of Imunso officials, Kim Buyun and Jeong Ingyeong, it is estimated that Imunso was established sometime between the ninth and the fifteenth year of Ki...

    Imunso was one of the three major departments of Jeongdonghangseong. Given the records on activities of Imunso officials, Kim Buyun and Jeong Ingyeong, it is estimated that Imunso was established sometime between the ninth and the fifteenth year of King Chungryeol’s reign.
    Imunso of a hangseong had several officials. However, records from the Goryeo Dynasty mostly contain only the title of imun, suggesting that the office was not managed according to respective positions of officials. Sometimes, an imun official was transferred to Jwawoosa as nangjung, and in some cases, went on to become an imunnangjung, which combined the titles of Jwawoosa and Imunso.
    Imun means to “investigate” or “interrogate”, and the main job of an imun official involved administration of criminal cases and trial of murder cases. Thus, knowledge of types of criminal punishment was key criteria in selecting imun officials. The name, imunso, first appeared during a Kwon Hangong case in the eighth year of King Chungsuk’s reign (1321), and became widely known through an imprisonment of Shin Cheong during the reign of King Chunghye and a lawsuit regarding Jeongchidogam during the reign of King Chungmok.
    Since the main duty of imunso was trial of a murder case, when a murder took place, the criminal was sent to imunso for interrogation. ‘Harimun(下理問)’ or ‘Surimun(囚理問)’ indicated being detained at imunso for interrogation to resolve a murder case. A person was said to be ‘imprisoned’ in hangseongok (jail at hangseong), but ‘imprisonment’ was not used to indicate a detention at imunso. Thus, there is no need to make a distinction between being sent to imunso and being sent to hangseongok.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
    • 머리말
    • Ⅰ. 이문소의 등장
    • Ⅱ. 이문소의 직제와 기능
    • Ⅲ. 이문소의 운영 방식
    • 요약
    • 머리말
    • Ⅰ. 이문소의 등장
    • Ⅱ. 이문소의 직제와 기능
    • Ⅲ. 이문소의 운영 방식
    •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高柄翊, "麗代征東行省의 硏究(上)(下)" 14․19 : 1961

    2 이강한, "특집총론 : "외세" , "외부" , 그리고 "외연"의 문제" 한국역사연구회 (78) : 15-35, 2010

    3 이명미, "공민왕대 초반 군주권 재구축 시도와 奇氏一家 : 1356년(공민왕 5) 개혁을 중심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53) : 3-33, 2011

    4 이강한, "공민왕 5년(1356) ‘反元改革’의 재검토" 대동문화연구원 (65) : 183-231, 2009

    5 박진훈, "고려시대 감옥(監獄)의 설치와 운영체계" 한국역사연구회 (47) : 149-186, 2003

    6 池內宏, "高麗朝に於ける元の行省" 20 (20): 1933

    7 閔賢九, "高麗恭愍王의 反元的改革政治에 대한 一考察―背景과 發端―" 68 : 1989

    8 張東翼, "高麗後期外交史硏究" 일조각 1994

    9 金龍善, "高麗墓誌銘集成" 한림대 출판부 2012

    10 "高麗史節要"

    1 高柄翊, "麗代征東行省의 硏究(上)(下)" 14․19 : 1961

    2 이강한, "특집총론 : "외세" , "외부" , 그리고 "외연"의 문제" 한국역사연구회 (78) : 15-35, 2010

    3 이명미, "공민왕대 초반 군주권 재구축 시도와 奇氏一家 : 1356년(공민왕 5) 개혁을 중심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53) : 3-33, 2011

    4 이강한, "공민왕 5년(1356) ‘反元改革’의 재검토" 대동문화연구원 (65) : 183-231, 2009

    5 박진훈, "고려시대 감옥(監獄)의 설치와 운영체계" 한국역사연구회 (47) : 149-186, 2003

    6 池內宏, "高麗朝に於ける元の行省" 20 (20): 1933

    7 閔賢九, "高麗恭愍王의 反元的改革政治에 대한 一考察―背景과 發端―" 68 : 1989

    8 張東翼, "高麗後期外交史硏究" 일조각 1994

    9 金龍善, "高麗墓誌銘集成" 한림대 출판부 2012

    10 "高麗史節要"

    11 "高麗史"

    12 北村秀人, "高麗における征東行省について" 32 : 1964

    13 "稼亭集"

    14 "益齋亂藁"

    15 池內宏, "滿鮮史硏究" 吉川弘文館 1963

    16 "拙藁千百"

    17 고명수, "征東行省의 置廢경위와 성격변화 再考" 한국중세사학회 (43) : 319-352, 2015

    18 張東翼, "征東行省의 硏究" 67 : 1990

    19 "動安居士集"

    20 "元高麗紀事"

    21 "元史"

    22 張東翼, "元代麗史資料集錄" 서울대 출판부 1997

    23 丁崑健, "元代征東行省之硏究" 10 : 1980

    24 이익주, "1356년 공민왕 反元政治 再論" 역사학회 (225) : 57-88, 2015

    25 최종석, "1356(공민왕 5)~1369년(공민왕 18) 고려-몽골(원) 관계의 성격 - ‘원간섭기’와의 연속성을 중심으로 -" 역사교육연구회 (116) : 233-271, 2010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1 1.11 1.0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3 1.05 2.153 0.42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