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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사료로 보는 애국가 짓기와 부르기의 역사 = History of Korean National Anthem Lyrics and Singing Songs through Historical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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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26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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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how the Korean national anthem has developed in terms of lyrics and songs based on musical materials. It investigates three different periods: 1st period is the national anthem before the 1910 Japanese occupation; 2nd for after 1910; and today’s version of the national anthem. While the 1890s in the 1st period was the decade busy for “writing the lyrics of the national anthem”, the 1900s was the time when “singing the national anthem” was considered an important national practice. A national anthem called, “The Great Han Empire Anthem” that was composed at that time. As many schools adopted national anthem singing practice being accompanied by Taegeukgi hosting and shouting hurray three times, it was widely sung across the entire nation. However, the Japanese imperial rule prohibited singing the national anthem while confiscating all the books containing the national anthem. Despite such banning, more various patriot songbooks were published after 1910 in support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as a result, different types of patriot songs were sung until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dopted an official national anthem to represent its authority in 1920s. The national anthem beginning with the lyric of ‘donghaemulgwa’ that was first called as ‘Mugunwhasong’ was sung with other national anthem songs, but it finally became the most representative national anthem in 1919. This national anthem lyrics adopted the melody of <Auld LangSyne> before An Ik-tae composed and introduced the national anthem, so-called, donghaemulgwa anthem, right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rule on Aug 15th, 1945. Since then, this song has been officially playing as the national anthem representing the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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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examines how the Korean national anthem has developed in terms of lyrics and songs based on musical materials. It investigates three different periods: 1st period is the national anthem before the 1910 Japanese occupation; 2nd for after 191...

      This paper examines how the Korean national anthem has developed in terms of lyrics and songs based on musical materials. It investigates three different periods: 1st period is the national anthem before the 1910 Japanese occupation; 2nd for after 1910; and today’s version of the national anthem. While the 1890s in the 1st period was the decade busy for “writing the lyrics of the national anthem”, the 1900s was the time when “singing the national anthem” was considered an important national practice. A national anthem called, “The Great Han Empire Anthem” that was composed at that time. As many schools adopted national anthem singing practice being accompanied by Taegeukgi hosting and shouting hurray three times, it was widely sung across the entire nation. However, the Japanese imperial rule prohibited singing the national anthem while confiscating all the books containing the national anthem. Despite such banning, more various patriot songbooks were published after 1910 in support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as a result, different types of patriot songs were sung until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dopted an official national anthem to represent its authority in 1920s. The national anthem beginning with the lyric of ‘donghaemulgwa’ that was first called as ‘Mugunwhasong’ was sung with other national anthem songs, but it finally became the most representative national anthem in 1919. This national anthem lyrics adopted the melody of <Auld LangSyne> before An Ik-tae composed and introduced the national anthem, so-called, donghaemulgwa anthem, right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rule on Aug 15th, 1945. Since then, this song has been officially playing as the national anthem representing the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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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1890년대부터 발생한 ‘애국가 가사 짓기’와 ‘애국가 부르기’의 역사를 음악사적 사료를 통해서 고찰한다. 이 논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목차를 구성하였는데, 일제강점기를 기준으로 하여, 첫째는 1910년 이전의 역사, 둘째는 1910년 이후의 역사, 셋째는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동해물과 애국가’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로 다룬 1910년 이전의 애국가 역사는 또 다시 1890년대 ‘애국가 가사 짓기’가 크게 일어난 시기와 1900년대로 ‘애국가 노래 부르기’가 크게 유행했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이 때 대한제국에서 <대한제국애국가>라는 국가도 탄생하게 되었으며 학교를 중심으로 해서 애국가 부르기가 태극기게양과 만세삼창을 동반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시기이다. 그러나 1910년 일제 강점으로 모든 ‘애국가 짓기’와 ‘노래 부르기’가 금지되고 애국가를 담은 모든 서적이 압수당한다.
      두 번째로 다룬 1910년 이후의 역사는 다시 많은 애국창가집이 발행되고 독립운동 진영에 보급되어 애국가 가 애국창가로 더욱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 1910년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많은 국외 독립운동 단체에서 공식적인 의례에서 애국가를 자주 불렀지만 국내에서는 ‘애국가’를 짓거나 부르거나 모두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1920년대로 나뉜다.
      세 번째로 다룬 ‘동해물과 애국가’의 역사는 다시 1919년, 1945년이 기점이 되어 전후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무궁화가’로 시작한 ‘동해물과 애국가’는 처음엔 다른 애국가들과 함께 쓰였으나 1919년 이후 대표곡이 되었다. <Auld Lang Syne>의 곡조에 맞춰 부르던 ‘동해물과 애국가’는 1945년 8.15 해방 이후 국가가 제정되기 전까지 안익태 곡조로 부르기로 하였다가 정착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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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1890년대부터 발생한 ‘애국가 가사 짓기’와 ‘애국가 부르기’의 역사를 음악사적 사료를 통해서 고찰한다. 이 논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목차를 구성하였는데, 일제강점기...

      본 논문은 1890년대부터 발생한 ‘애국가 가사 짓기’와 ‘애국가 부르기’의 역사를 음악사적 사료를 통해서 고찰한다. 이 논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목차를 구성하였는데, 일제강점기를 기준으로 하여, 첫째는 1910년 이전의 역사, 둘째는 1910년 이후의 역사, 셋째는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동해물과 애국가’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로 다룬 1910년 이전의 애국가 역사는 또 다시 1890년대 ‘애국가 가사 짓기’가 크게 일어난 시기와 1900년대로 ‘애국가 노래 부르기’가 크게 유행했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이 때 대한제국에서 <대한제국애국가>라는 국가도 탄생하게 되었으며 학교를 중심으로 해서 애국가 부르기가 태극기게양과 만세삼창을 동반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시기이다. 그러나 1910년 일제 강점으로 모든 ‘애국가 짓기’와 ‘노래 부르기’가 금지되고 애국가를 담은 모든 서적이 압수당한다.
      두 번째로 다룬 1910년 이후의 역사는 다시 많은 애국창가집이 발행되고 독립운동 진영에 보급되어 애국가 가 애국창가로 더욱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 1910년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많은 국외 독립운동 단체에서 공식적인 의례에서 애국가를 자주 불렀지만 국내에서는 ‘애국가’를 짓거나 부르거나 모두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1920년대로 나뉜다.
      세 번째로 다룬 ‘동해물과 애국가’의 역사는 다시 1919년, 1945년이 기점이 되어 전후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무궁화가’로 시작한 ‘동해물과 애국가’는 처음엔 다른 애국가들과 함께 쓰였으나 1919년 이후 대표곡이 되었다. <Auld Lang Syne>의 곡조에 맞춰 부르던 ‘동해물과 애국가’는 1945년 8.15 해방 이후 국가가 제정되기 전까지 안익태 곡조로 부르기로 하였다가 정착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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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신용하, "해외의 독립운동사료(ⅩⅥ) 일본편 ④-最新唱歌集 附樂典" 국가보훈처 1996

      2 노동은, "항일음악 330곡집" 민족문제연구소 2017

      3 김수현, "한국근대음악기사자료집 ‒ 잡지편 1" 민속원 2008

      4 "임시중등음악교본"

      5 이경분, "잃어버린시간 1938~1944" 휴머니스트 2007

      6 김덕균, "우리겨레의 항일가요 연구" 한국음악사학회 20 : 1998

      7 장유정, "옛날 노래책에 빠지다 애국창가집, 『창가』(손봉호(孫鳳鎬), 1910년 발행)의 해제" 근대서지학회 7 : 2013

      8 장사훈, "여명의 동서음악" 보진재 1974

      9 "애국창가 (1916.5.13. 등사판)"

      10 이명화, "애국가 형성에 관한 연구" 역사실학회 10·11 : 1999

      1 신용하, "해외의 독립운동사료(ⅩⅥ) 일본편 ④-最新唱歌集 附樂典" 국가보훈처 1996

      2 노동은, "항일음악 330곡집" 민족문제연구소 2017

      3 김수현, "한국근대음악기사자료집 ‒ 잡지편 1" 민속원 2008

      4 "임시중등음악교본"

      5 이경분, "잃어버린시간 1938~1944" 휴머니스트 2007

      6 김덕균, "우리겨레의 항일가요 연구" 한국음악사학회 20 : 1998

      7 장유정, "옛날 노래책에 빠지다 애국창가집, 『창가』(손봉호(孫鳳鎬), 1910년 발행)의 해제" 근대서지학회 7 : 2013

      8 장사훈, "여명의 동서음악" 보진재 1974

      9 "애국창가 (1916.5.13. 등사판)"

      10 이명화, "애국가 형성에 관한 연구" 역사실학회 10·11 : 1999

      11 김도훈, "애국가 작사자 관련 논쟁에 대한 검토"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64) : 241-295, 2018

      12 임진택, "애국가 논쟁의 기록과 진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0

      13 노동은, "애국가 가사는 언제, 누가 만들었나" 역사비평사 1994

      14 독립기념관, "신한청년" 독립기념관 2020

      15 김보희, "북만주지역의 獨立運動歌謠 -1910년대 민족주의 독립운동가요를 중심으로-" 한국국악학회 43 : 15-49, 2008

      16 김시덕, "북간도 명동학교 막새기와의 꽃문양에 나타난 민족의식"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48) : 101-147, 2014

      17 부산근대역사관, "먼구름 한형석의 생애와 독립운동" 부산근대역사관 2006

      18 "대한제국애국가, 000715"

      19 "대한제국애국가"

      20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사이트에서 검색한 1896~1946년까지 애국가 관련 이미지 자료"

      21 "광복군가집"

      22 "最新唱歌集 附樂典(광성학교, 1914.7.15. 등사판)"

      23 반혜성, "1916년 하와이 호놀룰루 발행 『애국창가』 연구" 음악연구소 23 (23): 137-182, 2019

      24 김보희, "1910년대 국외 ‘애국창가’에 대한 음악학적 연구 –하와이판 "애국창가"(1916)를 중심으로–" 동양학연구원 (78) : 175-2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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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3-06-1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Oriental Studies KCI등재
      2013-03-13 학회명변경 한글명 : 동양학연구소 -> 동양학연구원
      영문명 : Dankook University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 Academy of Asian Studies, Dankook University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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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 0.7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4 0.63 1.457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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