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원(原)파시즘의 착의(着衣)와 탈의(脫衣) -도스토예프스키와의 관련을 중심으로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이상의 ｢조춘점묘｣와 ｢추등잡필｣, ｢휴업과 사정｣에 나타난 원파시즘의 착의와 탈의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의 관련 속에서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크게 4가지 연구목표를 세우고 각 연구목표별로 두 가지 항목의 연구내용을 담았다. 첫 번째 연구목표는 이상과 도스토예프스키의 관련성을 고찰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두 작가의 문학의 정신이 처한 공간적 위치로 거론되는 사이성의 의미를 살펴보고, 이 두 작가의 시대감각이 낳은 근대적 악의 탐구를 논의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이 이율배반 사이에 위치한 문턱에 서 있는 인간이라면 이상의 인물은 어느 곳에도 귀속되지 않은 채 홀로 살아가는 사이·틈사구니에 있는 인간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을 통해, 이상은 ｢휴업과 사정｣, ｢조춘점묘｣, ｢추등잡필｣을 통해 근대적 악을 탐구함으로써 시대의 모순성·분열성을 반영하며 양립불가능한 것들의 공존·상호작용을 지향하는데, 이상의 이 작품들은 죄와 벌과 영향관계 및 상호텍스트적 관련을 맺고 있다. 두 번째 연구목표는 죄와 벌의 초인사상을 1840~60년대 러시아의 사상담론과, ｢휴업과 사정｣의 우생학적 관념을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우생학담론과 관련해 고찰하는 것이다. 1840년대 서구주의자와 슬라브주의자의 논쟁의 와중 도스토예프스키는 서구주의자의 편에 섰다가 이후 대지주의자로서 변모한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를 추동한 이념인 초인사상은 대지주의자 도스토예프스키가 서구 근대의 제 관념을 원형으로 삼아 예술적 관념의 이미지로 개조한 것이다. 한편, 죄와 벌을 창조적으로 변형한 ｢휴업과 사정｣에서 SS를 계몽과 규율의 대상으로 삼게 해주는 보산의 이념은 우생학적 관념인데, 여기에는 1920~30년대 조선의 우생담론이 반영되어 있다. 이상은 보산의 관념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 관념으로 인해 소외되어가는 보산의 인생에 개입하는 비판적 목소리를 공존시킨다. 세 번째 연구목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저널리스틱한 글과 이상의 수필에 나타난 초인사상 및 우생학적 관념을 고찰하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저널리스틱한 글에 피력된 사상에서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의 초인사상의 원형이 발견되는데, 이 사상은 저널리스틱한 글에 진술됨에도 불구하고 설득력 있게 피력되지 않고 상상된 대화의 형식으로 조직되어 있다. 한편, 이상의 우생학적 관념은 수필 ｢조춘점묘｣와 ｢추등잡필｣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여기에서 이상은 우생학적 관념에 입각해 사회적 부적자들의 존재성을 걸인·걸인의 이미지 혹은 구경거리로 수렴시켜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그것을 식민지 조선의 빈민·의료·행형·관광정책이 안고 있는 모순과 불균등의 폐해와 연결시켜 비판한다. 네 번째 연구목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이상의 감성 생태주의를 고찰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죄와 벌에 나타난 대지주의와 사랑 및 ｢휴업과 사정｣, ｢조춘점묘｣에 나타난 동양적 세계와 생명을 논의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지주의는 생태주의적인 표도로프의 사상 및 러시아인들의 지모사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데, 죄와 벌의 소냐가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를 대지를 모독한 것으로 간주해 그에게 대지에 입을 맞추게 하는 장면은 이를 증거한다. 죄와 벌의 감성 생태주의는 소냐의 라스콜리니코프를 향한 대지-어머니와 같은 헌신적인 사랑이 그의 내면의 “깊은 마음의 층위”를 일깨우고 그를 개심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이상의 ｢휴업과 사정｣과 ｢조춘점묘｣의 감성 생태주의의 기반에는 동양사상과 민속이 자리한다. ｢휴업과 사정｣에는 보산에게 인생의 지침서 역할을 하거나 생명성을 일깨워주는 음양론과 공자의 인학 및 까치와 금줄과 관련된 한국의 민속, 일본 전통민요 야스기부시가 등장한다. 또한 ｢조춘점묘｣ <차생윤회>에서는 이상 자신과 일제의 우생학적 시선과 행위를 반면교사로 삼게 하는 불교의 윤회설이 등장한다. 보산의 휴업을 이끌어내는 것은 그를 감응하게 한 SS의 신비로운 노래와 결부되어 있는 생명탄생의 사건이다. 보산의 휴업은 균형 찾기의 의미를 가진 것이고 외경을 일깨워주는 생명의 초대라는 점에서 전환의 가능성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