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기억: 과거청산과 문화정체성 문제의 국가별 사례연구> 프로젝트 연구팀의 하위분과인 러시아 팀은 스딸린이 권력을 잡고 있었던 1928-53년 동안 소비에뜨 정부에 의해서 제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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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기억: 과거청산과 문화정체성 문제의 국가별 사례연구> 프로젝트 연구팀의 하위분과인 러시아 팀은 스딸린이 권력을 잡고 있었던 1928-53년 동안 소비에뜨 정부에 의해서 제도화...
<역사와 기억: 과거청산과 문화정체성 문제의 국가별 사례연구> 프로젝트 연구팀의 하위분과인 러시아 팀은 스딸린이 권력을 잡고 있었던 1928-53년 동안 소비에뜨 정부에 의해서 제도화된 주의, 정책, 실천들의 총체로서 정의될 수 있는 이른바 스딸린주의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성찰과 그것의 청산의 노력에 대한 검토를 연구의 주요한 목표로 삼았다. 러시아의 근현대사 속에서 스딸린주의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위해 행해진 극도의 강제와 억압, 이를테면 사적소유와 자유무역의 폐지, 농업의 집단화, 국가주도의 계획경제와 급속한 산업화, 대규모의 강제이주와 추방을 포함한 소위 착취 계급의 대대적인 청산, 공산당 내부의 사람들을 포함한 ‘인민의 적’ 혹은 ‘계급의 적’에 대한 대대적인 정치적 테러, 개인숭배, 그리고 무제한적인 독재정치 등으로 특징지워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러시아인들에게 스딸린주의라는 역사적 과거의 청산은 단지 역사적 진실이라는 과거에 대한 기억의 문제만이 아니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현재적 고민과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미래적 대안의 모색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딸린 체제가 등장했던 1930년대부터 그것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려 시도했던 뻬레스뜨로이까 직전까지의 시기에 소련에서 행해졌던 스딸린주의에 대한 성찰과 청산의 움직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던 1차년도 연구의 연속 차원에서 러시아팀은 당대인 1930년대는 물론이고 특히 뻬레스뜨로이까 이후 다양한 영역에 걸쳐 본격적으로 전개된 탈스딸린주의의 노력들을 광범위하고 심층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스딸린주의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그것의 청산의 현재적 의미와 문제점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시도하였다.
이를 위하여 러시아 팀은 공동연구원 2명(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 노어노문학과 박현섭 교수)과 전임연구원 3명(김남섭 연구원, 박상철 연구원, 오원교 연구원) 등 5명의 연구자를 중심으로 2003년 9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연구를 수행하였다.
김남섭 연구원의 논문 <“우리 안의 스딸린”: 스딸린 테러와 러시아인들의 기억>은 스딸린주의의 청산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스딸린 테러에 대한 소련인들의 무관심을 1930년대 당대의 소련인들의 인식에 대한 검토를 통해 설득력있게 조명하고 있다. 필자는 당대인들의 이러한 무관심의 근거를 무엇보다도 스딸린 테러로 계층 상승의 기회를 잡은 일부 사람들이나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유토피아적 사고에 물든 젊은 이상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보통 노동자들을 비롯한 소련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에게 일반적이었던 체제의 공식 담론의 내면화에서 찾고 있다. 말하자면 일반 대중들은 테러를 인민의 적, 계급 적으로부터 사회주의 체제를 방어하기 위한 국가의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대응으로 간주했으며, 무고한 사람의 희생 또한 당국의 ‘실수’로 여겼다는 것이다. 또한 테러의 주된 대상은 실제로 사회의 상위 계층, 혹은 사회의 특정 주변 그룹들(공산당원, 경영자, 엔지니어, 지식인 등)에 한정되었다는 사실과 믿음도 이것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필자는 스딸린 테러에 대한 널리 알려진 통설적 신화, 즉 테러는 온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졌으며, 2차 세계대전 발발 전후로 적어도 소련인 10-15명 중의 한 명이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다는 주장을 논박한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스딸린 당대에 생산된 테러를 정당화하는 기억과, 그 후 흐루시쵸프 통치 하의 짧은 부분적 탈스딸린 시기를 거쳐 다시 한번 도래한 장기의 스딸린 체제에서 재생산된 동일한 기억 속에 전반적으로 양육되고 교육 받은 사람들이 인구의 절대 다수를 이루면서 그들의 의식 속에 테러를 정당화하는 인식이 끈질기게 남아 있는 한, 테러의 실상을 파악하고 그 희생자들을 기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오원교 연구원의 논문 <스딸린주의의 탈신화화: 영화 「도둑, Вор」 (빠벨 추흐라이, 1997)을 중심으로>는 스딸린 체제의 궁극적 결정소인 강제와 동의의 상호 역학에 대한 고찰, 특히 현재진행형으로서 스딸린주의를 염두에 둔 테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정당화 기제로서 작동했던 ‘개인숭배’라는 지배 담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스딸린주의의 지배 담론 중의 하나인 ‘아버지 신화’를 매개로 하여 스딸린 시대에 대한 ‘공식 역사의 고쳐 쓰기’와 러시아적 정체성의 모색을 함께 시도하는 대표적인 러시아 영화 「도둑」에 주목한다. 다양한 상징과 알레고리를 통해 스딸린주의의 당대적 본질과 그것의 역사적 청산 그리고 현재적 실태를 압축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이 영화는 스딸린 신화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성찰과 해체적 전언을 담고 있으며, 나아가 역사의 비극적 반복 내지 악순환을 통해 탈신화화의 현주소를 증언한다.
영화는 가짜 아버지 똘랸, 진짜 아버지, 어머니 까쨔 그리고 아들 싸냐의 복잡한 관계망을 통해 러시아의 근현대사 속에서 러시아와 그의 아이들의 위대한 아버지 스딸린에 대한 관계와 그것의 진화를 비극적 아이러니를 곁들여 알레고리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감독 추흐라이는 소비에트 국가라는 ‘대가족’의 ‘가장’이요 ‘아버지’라고 불렸던 스딸린이 그의 ‘아들들’이요 ‘아이들’인 러시아인들에게 진정으로 어떠한 존재였고 존재인가를 되묻는다. 감독의 궁극적 관심은 오늘의 러시아(인)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추구이다. 아버지를 단죄하는 소년도, 체첸 전쟁터를 오가는 러시아 장교도 6살배기 어린 아이 싸냐로부터 비롯되었듯이, 오늘의 러시아 역사는 스딸린 시대와 탈스딸린 시대로부터 기원하며 러시아적 정체성의 현재적 혼란은 다름 아닌 스딸린주의의 합법칙적 결과이다. 필자에 따르면 러시아 근현대사를 진짜 아버지에 대한 배반과 망각의 역사로 갈음하는 영화 ꡔ도둑ꡕ은 위대한 아버지에 대한 선택적 수용 혹은 그것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그것의 가짜성(신화성) 자체의 완전한 해체를, 나아가 진짜 아버지에 대한 정당한 추구를 역설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역사가 되지 못한 한 개인의 과거의 이야기’에 대한 기억을 통해 러시아의 역사에서 은폐되거나 왜곡되었던 시간과 공간, 주체들을 새롭게 복원하면서 현대 러시아의 갈등의 근원을 추적하고 이를 통해 공식 역사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제시한다.
공동연구원인 박현섭 교수의 논문 <파벨 룽긴의 “택시 블루스” : 과거의 청산인가, 자기부정인가?>는 소비에트 체제가 붕괴되기 직전인 1990년에 발표된 파벨 룽긴의 대표적 영화 <택시 블루스>에 대한 분석이다. 당대의 사회적, 윤리적, 문화적 혼돈을 한 평범한 택시 운전사 칠리꼬프와 천재적인 색소폰 주자인 료샤와의 갈등 관계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이 영화 속에서 필자는 구소련의 가치와 새로운 러시아의 가치, 혹은 집단적 윤리와 개인의 윤리라는 이항대립, 나아가 정치 권력과 예술가의 관계의 역사에 대한 우의적 패러디를 읽어낸다.
료샤에 대한 칠리꼬프의 폭력적 태도는 예술가에 대한 소비에트 정치권력의 전횡의 복사판이다. 그러나 양자의 관계는 억압과 굴종이라는 단순한 구도를 넘어선다. 물질적 실존적 불안에서 비롯되는 자발적 예속과 동의가 은밀하게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우연히 료사는 서방의 도움으로 자유를 얻게 되지만 그것의 진정성은 익살스럽게 의심받는다. 필자가 밝히듯이 이처럼 파벨 룽긴의 영화는 낡은 과거를 청산해야 할 필연과 그 과거가 나의 일부임으로 해서 빚어지는 당착적 상황에 대한 당대 러시아인들의 깊은 고뇌를 대변하고 있다.
한편 박상철 연구원의 논문 <뻬레스뜨로이까와 스딸린 문제: 시민단체 ‘메모리알’의 창립 과정을 중심으로>는 스딸린 체제의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비 건립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역사 연구 및 교육, 인권보호 등의 활동을 전개하는 전러시아적인 시민단체가 된 ‘메모리알’의 창립과 발전 과정을 소련 정부, 운동 단체 내부의 여러 정파들 사이의 입장 차이와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하고 있다.
필자에 따르면 사실 메모리알 운동은 정치적 탄압의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기존 체제의 구조적 결함에 소련 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움직임이었기에 처음부터 기존 체제의 도덕성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넘어 소련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메모리알 운동은 사회 전반의 폭넓은 관심과 지지를 얻었고, 동시에 소련 당국의 견제와 방해에 직면하게 되었다. 따라서 메모리알 운동은 처음부터 자체 내 급진파와 온건파 사이의 노선 투쟁과 논쟁, 그리고 정부 당국과의 갈등과 투쟁을 통하여 구체적인 활동방향을 모색하였고 그 과정에서 뻬레스뜨로이까의 전개 상황, 스딸린주의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 및 사회인식의 변화 등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메모리알 운동은 추모비와 함께 도서관, 문서고, 전시실 등을 포함하는 추모단지 건립 운동으로, 정부에 대한 청원과 시설들의 관리, 운영을 주관할 독자적인 시민단체 결성 운동으로, 나아가 스딸린 독재 및 대규모 정치 탄압과 같은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예방하기 위한 독자적인 시민운동 및 ‘정치적’ 운동으로까지 점차 발전하였다. 특히 ‘불행한 과거’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 속에서 단체의 활동가들은 문서고 뿐만 아니라 희생자들의 ‘억압된 기억’에 귀를 기울였다. 바로 희생자들의 ‘억압된 기억’은 스딸린주의에 관한 ‘공식 역사’를 보완, 수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공식 역사’ 자체를 의심하도록 만들었으며, 결국에는 ‘공식 역사’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주장하던 소련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데에 기여했다. 이점에서 메모리알 운동은 과거 인식에 있어서의 ‘역사와 기억’ 문제에 관한 새로운 사례를 제공해준 것으로 필자는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이처럼 특히 메모리알 운동의 초기 활동은 뻬레스뜨로이까 시대에 일어났던 스딸린주의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시민운동의 성격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메모리알의 창립과 발전 과정은 러시아에서의 ‘과거청산’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고 필자는 결론짓는다.
국문 초록 (Abstract)
본 자료는 공동연구 "역사와 기억: 과거청산과 문화정체성 문제의 국가별 사례 연구"중 <러시아 팀의 연구개요보고서이다. 보고서는 총 56 page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5개의 논문 개요와 4개...
본 자료는 공동연구 "역사와 기억: 과거청산과 문화정체성 문제의 국가별 사례 연구"중 <러시아 팀의 연구개요보고서이다. 보고서는 총 56 page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5개의 논문 개요와 4개의 논문초고로 구성되었다.
국문 초록 (Abstract)
주초록은 러시아 팀 보고서의 서론 부분을 발췌하였습니다.
주초록은 러시아 팀 보고서의 서론 부분을 발췌하였습니다.
국문 초록 (Abstract)
러시아 팀 <개요> “우리 안의 스딸린”: 스딸린 테러와 러시아인들의 기억 - 4 <개요> 스딸린주의의 탈신화화 - 5 영화『도둑, Вор』(빠벨 추흐라이, 1997)을 중...
러시아 팀
<개요> “우리 안의 스딸린”: 스딸린 테러와 러시아인들의 기억 - 4
<개요> 스딸린주의의 탈신화화 - 5
영화『도둑, Вор』(빠벨 추흐라이, 1997)을 중심으로 - 5
<논문초고> 스딸린주의의 탈신화화: 영화『도둑, Вор』(빠벨 추흐라이, 1997)을 중심으로 - 7
<개요> 파벨 룽긴의 “택시 블루스” : 과거의 청산인가, 자기부정인가? - 16
<논문초고> 파벨 룽긴의 “택시 블루스” : 과거의 청산인가, 자기부정인가? - 17
<개요> 페레스트로이카와 스탈린 문제 - 23
시민단체 ‘메모리알’의 창립 과정을 중심으로 - 23
<논문초고> 페레스트로이카와 스탈린 문제: 시민단체 ‘메모리알’의 창립 과정을 중심으로 - 25
<개요> 폭력의 메카니즘 -43
스탠리 큐브릭과 냉전시대의 역사인식 -43
<논문초고> 폭력의 메카니즘: 스탠리 큐브릭과 냉전시대의 역사인식 -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