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전통 장르였던 시조가 이전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1908년 11월부터 1910년 8월까지 2년여의 짧은 시간 동안 ≪대한매일신보≫에 약 400편의 시조 작품이 발표된 것에 주목하여, 최초...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T12868074
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2
2012
한국어
서울
72 p. ; 26 cm
지도교수: 최동호
참고문헌: p. 67-72
0
상세조회0
다운로드이 논문은 전통 장르였던 시조가 이전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1908년 11월부터 1910년 8월까지 2년여의 짧은 시간 동안 ≪대한매일신보≫에 약 400편의 시조 작품이 발표된 것에 주목하여, 최초...
이 논문은 전통 장르였던 시조가 이전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1908년 11월부터 1910년 8월까지 2년여의 짧은 시간 동안 ≪대한매일신보≫에 약 400편의 시조 작품이 발표된 것에 주목하여, 최초의 근대시조 「혈죽가」가 발표된 1906년에서 1910년까지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연구하였다. 이는 근대적 문학 장르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려는 연구로서 ‘시가(詩歌)’에서 ‘가(歌)’가 분리되는 지점을 밝히려는 시도였다.
개화기 시조와 더불어 개화기 시가 일반에 보이는 미의식의 결핍을 장르의식의 결핍으로 연결하고 그와 같은 반미학적 성격으로 장르로서의 존재를 부정하는 기존의 방법론은 문학 장르가 반드시 미학적이어야 한다는 제한적 시각이 작용한 결과라 생각된다. 개화기를 전통 사회와 근대 사회를 이어주는 전환 또는 이행의 시기라는 것에 주목하여 개화기 시가가 전환기 의식의 교체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치중한 나머지, 근대성을 의식의 전환으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봉건제도의 해체에 따른 개인 자아의식의 각성이라는 역사적 근대성과 서정적 주체 ‘나’의 목소리 출현이라는 문학사적 근대성을 일치시키려는 요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개화기 문학 연구에 있어 신문이라는 대중매체의 출현과 그에 따른 사회적 의사소통 문제와 ‘독자’ 개념의 발생을 간과하고 있다. 개화기 시가를 예술미학적 성격보다는 사회미학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장르적 성격에 주목하여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기나 과도기적 상태로 규정하면서, 한국시가의 교술성이 절정에 이른 것으로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화기 시조가 가요, 신요, 단가, 영언, 시, 가, 사 등의 잡다한 명칭으로 불리다가, 1914년에 비로소 ‘시조(詩調)’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 전의 작품이 ‘시조’ 혹은 ‘시’ 장르로서의 특징을 갖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대한매일신보≫라는 근대적 매체의 등장과 그에 따른 신문적 글쓰기 주체와 신문 시조의 형성은 배제와 통합의 원리에 의해 민족과 국가에 개인을 귀속시키는 동시에, 개인 스스로 민족주의에 자기를 동일시하게 되는 당시의 근대적 문학 장르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동시대에 발표된 「천희당시화」의 ‘시계 혁명’이라는 담론은 전통적인 시조창이라는 장르에서 어떻게 ‘가(歌)’가 분리되어 ‘시(詩)’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한다.
Ⅱ장에서는 ‘전통적 글쓰기’에서 ‘신문적 글쓰기’로 전환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았다. 신문이라는 매체의 출현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작가와 독자층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새로운 의사소통의 방식이자 글쓰기 방식이었다. 전통적인 한문체를 버리고 국한문체나 국문체만으로 신문을 채워가는 것은 독자층의 문제와 직접 결부되어 있다.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개화기 시조 상당 부분은 필명 및 아호로 익명화된 신문 편집인이었다. 이들은 일반 대중에게 ‘개화’와 ‘계몽’이라는 의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동시에,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모색으로 고시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장르의 창조를 지향하게 된다. 이는 모든 계층의 창작 참여라는 보편성을 띠는 동시에, 시조의 독자가 곧 작자가 되는 창작층과 향유층의 공존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대중매체적 유통이 가져온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신문이라는 대중매체의 출현으로 대중들의 사회적 의사 소통과 참여가 확산됨으로써 문학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세계를 벗어나 공공의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개화기 시조는 형태상의 파격과 함께 현실을 인식하는 태도에서 전근대 혹은 조선조 시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Ⅲ장에서는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시조를 분석하였다. 기본적으로 판매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매체임으로 신문 편집인들은 독자 투고란 정책을 시행하였고 이는 곧 남녀노소, 계층에 관계없는 대중의 글쓰기와 참여로 이어졌다. 바로 그 부분이 개화기 시조에 있어 주목할 부분인데, 한 문학 장르의 향유층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전근대적 장르라면, 이처럼 광범위한 향유층의 확대는 근대적 문학 장르로서의 가능성을 담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 시조의 주제의식을 작품에 따라 분류하는 것은 논자의 관점에 따라 재구되면서 범주화되기 어렵다. 범주에 대한 경계와 기준이 모호하며, 작품 대부분을 ‘애국사상’의 발현이라는 집단적 목소리에만 머무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대한매일신보≫ 시조의 작자가 대상을 대하는 태도는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어조’로 나타난다고 보고 이에 따른 작품을 1) 일제세력과 동조세력 풍자, 2) 국가와 민족 예찬, 3) 부정적 상황 인식과 연민, 4) 자기반성과 영웅 희구, 5) 해학과 통합으로 분류하였다. 이와 같은 분류를 통해 ≪대한매일신보≫ 시조의 시적 주체의 형상은 개별적 화자인 ‘나’와 같은 1인칭으로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문학 외적으로 나타나며, 시적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는 곧 독자와 대상과의 관계로 전이된다. 그러므로 ≪대한매일신보≫ 시조의 시적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집단적 주체와 개인적 주체가 동시에 출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Ⅳ장에서는 시가(詩歌)에서 ‘가(歌)’가 분리되는 근대적 문학 혹은 근대적 시형을 작품 「혈죽가」와 신채호의 「천희당시화」를 통해 살펴보았다. 줄글로 게재된 「혈죽가」는 시조창의 향유관습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줄글 형태와 종장 말구의 생략, 그리고 시각적 배열과 음보 구분 같은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특징은 󰡔남훈태평가󰡕의 형식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즉 「혈죽가」는 󰡔남훈태평가󰡕처럼 독서물이기도 하면서 시조창의 대본으로도 가능한 양면적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텍스트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시대를 내려올수록 장(章) 구분이나 구(句) 혹은 음보(音步) 구분을 명확히 하는 ‘읽는 시조’로서 형태를 갖춰나가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한매일신보≫ 시조는 「천희당시화」의 시계혁명이라는 담론의 자장 안에서 일치되는 것으로서, ‘시가(詩歌)’에서 ‘가(歌)’의 분리는 ‘시(詩)’를 강조함으로 자연스러운 수순에 의한 것이었다. 그것은 국문으로 지어진 시가에 대해서만 ‘국시’라는 지위가 부여되었고, 국난과 구국 계몽의 절대적 도구로 기능하는 시의 역할은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시조의 역할과 일치하는 부분에서 밝히고자 했다.
결국 ≪대한매일신보≫ 시조는 시조창이라는 전통적 장르에서 ‘시(詩)’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가(歌)’는 자연스럽게 분리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최남선ㆍ이병기 등에 의한 본격적인 시조론의 형성과 시조부흥운동은 차후 연구과제로 남긴다.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