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여 · 몽전쟁기 변경민의 몽골 ‘체험’과 고려 조정의 대응 = An Encounter of Goryeo People in Border Area with Mongol during the First Mongol Invasion and the Response of Goryeo

      한글로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1차 고려 · 몽골 전쟁 발발 이전 요동 지역에서 흥기한 다양한 정치세력의 병립과 각축으로 변경지대에는 국지적인 충돌이 일상화되었다. 전쟁의 일상화는 변경민에게 고려 백성으로서의 국가의식보다는 생존을 더욱 우선하는 가치로 여기도록 하였다. 본래 부터 고려인이자 경계인으로서 복합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변경민들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자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출시켰는데, 이러한 사태를 더욱 부추긴 것이 국가의 ‘배신’이었다. 당시 고려 조정은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책임을 전가하였다. 고려조정의 이와 같은 태도로 인해 변경민들은 전쟁과 희생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고, 종국에 가서 나라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거나 附蒙 행위를 감행하기까지 했다. 즉, 국가의 지시를 거부했던 西京人이나 홍복원에게 동조한 자들의 행동 이면에는 국가의 무책임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고려 조정의 이러한 무책임에도 사실 원인이 있었다. 몽골의 압도적 물리력과 과도한 요구가 그러한 결과를 초래했다. 대적하기도 감당하기도 어려운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의 지속이 순간순간의 어려움만을 모면하려는 무책임의 정치를 야기하였던 것이다. 여하튼 고려 정부의 이와 같은 무책임의 정치는 백성들의 이탈을 가속화시켰고, 그것은 변경지대에 대한 국가의 장악력을 약화시켜 강화도 천도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번역하기

      1차 고려 · 몽골 전쟁 발발 이전 요동 지역에서 흥기한 다양한 정치세력의 병립과 각축으로 변경지대에는 국지적인 충돌이 일상화되었다. 전쟁의 일상화는 변경민에게 고려 백성으로서의 ...

      1차 고려 · 몽골 전쟁 발발 이전 요동 지역에서 흥기한 다양한 정치세력의 병립과 각축으로 변경지대에는 국지적인 충돌이 일상화되었다. 전쟁의 일상화는 변경민에게 고려 백성으로서의 국가의식보다는 생존을 더욱 우선하는 가치로 여기도록 하였다. 본래 부터 고려인이자 경계인으로서 복합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변경민들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자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출시켰는데, 이러한 사태를 더욱 부추긴 것이 국가의 ‘배신’이었다. 당시 고려 조정은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책임을 전가하였다. 고려조정의 이와 같은 태도로 인해 변경민들은 전쟁과 희생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고, 종국에 가서 나라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거나 附蒙 행위를 감행하기까지 했다. 즉, 국가의 지시를 거부했던 西京人이나 홍복원에게 동조한 자들의 행동 이면에는 국가의 무책임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고려 조정의 이러한 무책임에도 사실 원인이 있었다. 몽골의 압도적 물리력과 과도한 요구가 그러한 결과를 초래했다. 대적하기도 감당하기도 어려운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의 지속이 순간순간의 어려움만을 모면하려는 무책임의 정치를 야기하였던 것이다. 여하튼 고려 정부의 이와 같은 무책임의 정치는 백성들의 이탈을 가속화시켰고, 그것은 변경지대에 대한 국가의 장악력을 약화시켜 강화도 천도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Prior to the outbreak of the Mongol invasion, local conflicts became an everyday occurrence in the border area due to coexistence and competition among various political powers in Liaodong. The routine outbreaks of war made people in the border area put more value on survival than on national identity as people of Goryeo dynasty. People in the border area already had complex identity as both people of Goryeo and marginalized people before, and now, faced with a threat to life, their identity as marginalized people prevailed. This was further fueled by the ‘betrayal’ of the country.
      Whenever the situation became unfavorable, the royal court avoided responsibilities. Due to this attitude, people in the border area suffered from double hardship of war and sacrifice, and later came to reject the royal court’s orders, and instead sought their own means of survival or even took pro-Mongolian actions. Behind the behaviors of people in Seokyeong that refused to follow the orders from the royal court, and behaviors of people who followed Hong Bokwon, were the irresponsible attitude of the royal court.
      In fact, there were reasons that caused such irresponsible attitude of the Goryeo royal court. It resulted from overwhelming physical force of Mongolia and its excessive demands. The continuation of situations where the royal court had to face formidable enemies led to irresponsible politics of merely avoiding momentary difficulties. Such irresponsible attitude became a catalyst that accelerated people’s breakaway, which in turn, returned as a boomerang that further weakened Goryeo’s defense, and eventually, resulted in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Ganghwado Island.
      번역하기

      Prior to the outbreak of the Mongol invasion, local conflicts became an everyday occurrence in the border area due to coexistence and competition among various political powers in Liaodong. The routine outbreaks of war made people in the border area p...

      Prior to the outbreak of the Mongol invasion, local conflicts became an everyday occurrence in the border area due to coexistence and competition among various political powers in Liaodong. The routine outbreaks of war made people in the border area put more value on survival than on national identity as people of Goryeo dynasty. People in the border area already had complex identity as both people of Goryeo and marginalized people before, and now, faced with a threat to life, their identity as marginalized people prevailed. This was further fueled by the ‘betrayal’ of the country.
      Whenever the situation became unfavorable, the royal court avoided responsibilities. Due to this attitude, people in the border area suffered from double hardship of war and sacrifice, and later came to reject the royal court’s orders, and instead sought their own means of survival or even took pro-Mongolian actions. Behind the behaviors of people in Seokyeong that refused to follow the orders from the royal court, and behaviors of people who followed Hong Bokwon, were the irresponsible attitude of the royal court.
      In fact, there were reasons that caused such irresponsible attitude of the Goryeo royal court. It resulted from overwhelming physical force of Mongolia and its excessive demands. The continuation of situations where the royal court had to face formidable enemies led to irresponsible politics of merely avoiding momentary difficulties. Such irresponsible attitude became a catalyst that accelerated people’s breakaway, which in turn, returned as a boomerang that further weakened Goryeo’s defense, and eventually, resulted in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Ganghwado Island.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고종 전반기 국지전의 지속과 변경민
      • 3. 1차 여몽전쟁과 고려왕조의 대응전략
      • 4. 1차 여몽전쟁의 종식과 고려 조정의 무책임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고종 전반기 국지전의 지속과 변경민
      • 3. 1차 여몽전쟁과 고려왕조의 대응전략
      • 4. 1차 여몽전쟁의 종식과 고려 조정의 무책임
      • 5. 변경민의 이중고와 강화도 천도
      • 6. 맺음말
      • 참고문헌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최윤정, "몽골의 요동·고려 경략 재검토(1211~1259)" 역사학회 (209) : 107-153, 2011

      2 고명수, "몽골-고려 형제맹약 재검토" 역사학회 (225) : 195-229, 2015

      3 尹龍爀, "고려의 海島入保策과 몽고의 戰略變化: 麗蒙戰爭전개의 一樣相" 32 : 1982

      4 김보광, "고려의 對蒙 대응 논리와 ‘大國이미지’ ― 1231, 1232년 외교문서를 중심으로 ―" 고려사학회 (61) : 273-309, 2015

      5 이개석, "고려-대원 관계 연구" 지식산업사 2013

      6 이정신, "고려 고종대 의주민의 항쟁" 43 : 1994

      7 金洛珍, "高麗時代牽龍軍의 設置와 任務" 165 : 2000

      8 金庠基, "高麗時代史"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5

      9 尹龍爀, "高麗對蒙抗爭史硏究" 一志社 1991

      10 "高麗史"

      1 최윤정, "몽골의 요동·고려 경략 재검토(1211~1259)" 역사학회 (209) : 107-153, 2011

      2 고명수, "몽골-고려 형제맹약 재검토" 역사학회 (225) : 195-229, 2015

      3 尹龍爀, "고려의 海島入保策과 몽고의 戰略變化: 麗蒙戰爭전개의 一樣相" 32 : 1982

      4 김보광, "고려의 對蒙 대응 논리와 ‘大國이미지’ ― 1231, 1232년 외교문서를 중심으로 ―" 고려사학회 (61) : 273-309, 2015

      5 이개석, "고려-대원 관계 연구" 지식산업사 2013

      6 이정신, "고려 고종대 의주민의 항쟁" 43 : 1994

      7 金洛珍, "高麗時代牽龍軍의 設置와 任務" 165 : 2000

      8 金庠基, "高麗時代史"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5

      9 尹龍爀, "高麗對蒙抗爭史硏究" 一志社 1991

      10 "高麗史"

      11 "高麗史節要"

      12 주채혁, "高麗內地의 達魯花赤置廢에 관한 小考" 1 : 1974

      13 강재광, "蒙古의 제1차 침공과 被陷 北界 14大城의 抗戰" 한국사연구회 (146) : 31-73, 2009

      14 金潤坤, "江華遷都의 背景에 關하여" 15 16 : 1978

      15 "東文選"

      16 "東國李相國集"

      17 "元高麗紀事"

      18 張東翼, "元代麗史資料集錄" 서울대출판부 1997

      19 허인욱, "13세기 초 몽골의 ‘位階’ 지배 시도와 麗蒙 관계의 시작" 고려사학회 (61) : 211-241, 2015

      20 이정란, "13세기 몽골제국의 高麗觀" 한국중세사학회 (27) : 95-121, 2009

      21 이미지, "1231・1232년 對蒙 表文을 통해 본 고려의 몽고에 대한 외교적 대응" 고려사학회 (36) : 235-267, 2009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2-0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9-2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28 1.28 1.1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89 2.254 0.21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