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술(金賢述, 1898~1969)은 초명은 복술(福述), 자 희숙(希叔), 호 봉산, 본관은 부안이다. 군사(郡事) 광서(光敍)의 후손으로 아버지 김낙찬(金洛瓚)과 어머니 퇴우당(退憂堂)의 후손인 밀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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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김현술(金賢述, 1898~1969)은 초명은 복술(福述), 자 희숙(希叔), 호 봉산, 본관은 부안이다. 군사(郡事) 광서(光敍)의 후손으로 아버지 김낙찬(金洛瓚)과 어머니 퇴우당(退憂堂)의 후손인 밀양박...
김현술(金賢述, 1898~1969)은 초명은 복술(福述), 자 희숙(希叔), 호 봉산, 본관은 부안이다. 군사(郡事) 광서(光敍)의 후손으로 아버지 김낙찬(金洛瓚)과 어머니 퇴우당(退憂堂)의 후손인 밀양박씨 준상(準尙)의 딸 사이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1898년 3월 23일 전북 부안군 부안면 하입석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백부 정재공(精齋公)에게 배웠으며, 19살에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 선생의 문하에 들어갔다. 경서뿐 아니라 동서양의 역사와 불교경전, 신구약서 등 다양한 학문에 관심이 많아 다독하였다. 일본강점기 말기 창씨개명을 따르지 않았다. 부안향교에 들어가 책을 간행하고 부안 세적을 기록하였으며 부안 씨족 중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을 밝혀 충효비문을 세워주는 등 의 일을 하였다. 김창숙(金昌淑)이 간재선생이 기극(紀極)이 없다고 헐뜯자 그에 반박하는 글을 썼으며 간재 선생이 죽은 후 문인 중 한명인 오진영(吳震泳)이 거짓으로 꾸민 간재선생문집을 내자 그를 꾸짖어 문인들로 하여금 그를 성토하게 하였고, 또한 일본이 사림을 핍박하고 유가의 법도를 단속하는 것을 글로 성토하였다. 이를 보고 윤용구(尹用求)와 민병승(閔丙承)은 김현술을 호남의 진정한 선비라고 칭찬하였다. 1969년 3월 2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는 부안군 부안면 하입석리 백호등(白虎嶝)에 있다. 문집으로 『봉산유고』가 있다.
『봉산유고』는 6권 3책 석인본으로 1권에는 서(書)가 2권에는 잡저(雜著), 3권에는 서(序), 4권에는 기(記), 제발(題跋), 명(銘), 찬(贊), 혼서(婚書), 내사(哀辭), 제문(祭文), 고유문(告由文), 상량문(上樑文), 5권에는 비(碑), 묘갈명(墓碣銘), 묘표(墓表), 6권에는 행장(行狀), 가장(家狀), 전(傳), 시(詩)가 수록되어 있다. 서는 김병관(金炳觀)이, 행장은 박상기(朴庠基)가 발은 종질 김형대(金炯大)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