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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로스의 윤리학: 『옆방에서』에 재현된 생성적 욕망과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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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먼저 『옆방에서』의 여성인물들이 모성의 윤리로 유대를 이루고 욕망의 생성적 흐름을 실천하는 양상을 고찰한다. 여성의 성이 신경증으로 병리화되었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여성인물들은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복합적인 아픔을 겪으면서도 모성에 관한 내러티브로 책임과 존중의 윤리학을 재고하게 한다. 흑인 유모 엘리자베스(Elizabeth)는 자신의 아이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절대 타자를 유모가 젖먹이를 안듯”(Otherwise 91) 품으라는 레비나스의 사유를 그대로 실천한다. 캐서린(Catherine Givings)과 사브리나(Sabrina Daldry)는 좌절을 넘어 연대하며 바이브레이터를 서로에게 작동시켜 히스테리를 치료하고 억압된 섹슈얼리티를 회수하며 주체성을 회복한다. 모유의 흐름과 전기의 흐름을 통해 룰이 강조하는 것은 자아를 초월하여 타자에게로 향하는 욕망의 생성적 흐름이다. 룰의 여성들은 상호호혜적인 흐름으로 유폐에서 유대로 나아가는 생명력을 생산하고 주체성을 확립한다.
    본 연구는 또한 룰의 인물들이 경계를 넘어 타자와 조우하고 애무를 통해 한계를 초월하고 윤리적 자아로 거듭나는 양상을 탐구한다. 수유 문제로 인한 좌절감을 극복하고 자신의 욕망을 발견한 캐서린은 마침내 남편 기빙스(Dr. Givings)의 막혀있던 욕망의 흐름을 자극한다. 기빙스는 사랑을 표현해달라는 캐서린의 요구에 그녀의 얼굴곳곳을 입맞춤한다. 얼굴을 드러냄은 소통가능성을 의미하고(Agamben 92), 타자의 얼굴은 주체의 윤리를 깨닫게 하는 현현(epiphany)이며(Shepherd 23), 무한의 존재인 “타자를 인식하는 것은 갈망을 인식하는 것이며 베푸는 것이다”(Levinas, Totality 75). 기빙스는 캐서린과의 친밀한 조우를 통해 그녀의 갈망을 인식하며 축복을 베푼다. 이처럼 룰의 작품에서 여성의 자아발견과 욕망의 주체되기는 남성의 자아를 거듭나게 한다. 에로스는 절대적 다름이며 무한인 타자와의 관계맺음인데 애무는 에로스의 구체적 방식이다. 캐서린과 기빙스의 애무는 새롭게 펼쳐지는 “순수한 미래를 기다리는 행위”(Time 89)이며 주체의 새로운 존재방식이 된다. 두 주인공이 애무를 나누는 순간 무대는 눈 내리는 작은 정원으로 바뀐다. 남성/여성, 과학/감정의 영역으로 철저히 분리되었던 집이 사라지면서 두 주인공은 제도와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서로의 옷을 벗기며 젠더의 속박에서 해방된다. 그들은 “사회가 그들의 기억 속에 새겨놓은 적을 쓰러뜨리고”(Cixous, Newly 172) 타자에게로 향한다. 욕망의 흐름을 차단하며 “잘못 닫혀있던” 오이디푸스 “삼각형”(Deleuze and Guattari 96)으로부터 자유로운 주체가 된 그들은 새로운 방향으로 횡단하며 서로의 에너지를 흐르게 한다.
    타자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새로운 주체는 “모성적 시간과 선형적 시간의 조화”(Kristeva, “Women’s Time” 187)를 이루며 새로운 의미화를 추구하는 주체이다. 크리스테바가 상호텍스트성의 교차점을 중시하는 것처럼 룰은 어느 한쪽으로 환원되지 않는 상호공존의 평등한 관계를 추구한다. 크리스테바가 전적으로 타자가 아니지만 전적으로 자기 자신도 아닌 타자와의 관계를 모성에서 발견하며 “윤리적 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듯(McAfee 76), 식수 역시 “다수가 되고 타자가 되며” “살아 있는 자를 생산하는” 모성에 주목한다(Newly 90). 룰이 제시하는 상호존중의 윤리학도 타자를 완전한 타자로 대하지 않는 지점을 지향한다. 이러한 윤리학을 실천하는 주인공들은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며 새로운 되기를 축복한다. 이리가레이가 레비나스의 윤리적 에로스를 “애무의 생산성”(An Ethics 185)으로 다시 쓰는 과정에서 사랑의 가장 근본적인 몸짓으로 강조하는 애무는 룰의 주인공들을 “재생과 변형의 은총”(197)이 되는 “빛의 원천”(197)으로 데려간다. 두 주인공은 눈 위에서 벌거벗은 채 눈 천사를 만들며 원죄로부터 해방된 에덴동산의 새로운 출발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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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먼저 『옆방에서』의 여성인물들이 모성의 윤리로 유대를 이루고 욕망의 생성적 흐름을 실천하는 양상을 고찰한다. 여성의 성이 신경증으로 병리화되었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

    본 연구는 먼저 『옆방에서』의 여성인물들이 모성의 윤리로 유대를 이루고 욕망의 생성적 흐름을 실천하는 양상을 고찰한다. 여성의 성이 신경증으로 병리화되었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여성인물들은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복합적인 아픔을 겪으면서도 모성에 관한 내러티브로 책임과 존중의 윤리학을 재고하게 한다. 흑인 유모 엘리자베스(Elizabeth)는 자신의 아이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절대 타자를 유모가 젖먹이를 안듯”(Otherwise 91) 품으라는 레비나스의 사유를 그대로 실천한다. 캐서린(Catherine Givings)과 사브리나(Sabrina Daldry)는 좌절을 넘어 연대하며 바이브레이터를 서로에게 작동시켜 히스테리를 치료하고 억압된 섹슈얼리티를 회수하며 주체성을 회복한다. 모유의 흐름과 전기의 흐름을 통해 룰이 강조하는 것은 자아를 초월하여 타자에게로 향하는 욕망의 생성적 흐름이다. 룰의 여성들은 상호호혜적인 흐름으로 유폐에서 유대로 나아가는 생명력을 생산하고 주체성을 확립한다.
    본 연구는 또한 룰의 인물들이 경계를 넘어 타자와 조우하고 애무를 통해 한계를 초월하고 윤리적 자아로 거듭나는 양상을 탐구한다. 수유 문제로 인한 좌절감을 극복하고 자신의 욕망을 발견한 캐서린은 마침내 남편 기빙스(Dr. Givings)의 막혀있던 욕망의 흐름을 자극한다. 기빙스는 사랑을 표현해달라는 캐서린의 요구에 그녀의 얼굴곳곳을 입맞춤한다. 얼굴을 드러냄은 소통가능성을 의미하고(Agamben 92), 타자의 얼굴은 주체의 윤리를 깨닫게 하는 현현(epiphany)이며(Shepherd 23), 무한의 존재인 “타자를 인식하는 것은 갈망을 인식하는 것이며 베푸는 것이다”(Levinas, Totality 75). 기빙스는 캐서린과의 친밀한 조우를 통해 그녀의 갈망을 인식하며 축복을 베푼다. 이처럼 룰의 작품에서 여성의 자아발견과 욕망의 주체되기는 남성의 자아를 거듭나게 한다. 에로스는 절대적 다름이며 무한인 타자와의 관계맺음인데 애무는 에로스의 구체적 방식이다. 캐서린과 기빙스의 애무는 새롭게 펼쳐지는 “순수한 미래를 기다리는 행위”(Time 89)이며 주체의 새로운 존재방식이 된다. 두 주인공이 애무를 나누는 순간 무대는 눈 내리는 작은 정원으로 바뀐다. 남성/여성, 과학/감정의 영역으로 철저히 분리되었던 집이 사라지면서 두 주인공은 제도와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서로의 옷을 벗기며 젠더의 속박에서 해방된다. 그들은 “사회가 그들의 기억 속에 새겨놓은 적을 쓰러뜨리고”(Cixous, Newly 172) 타자에게로 향한다. 욕망의 흐름을 차단하며 “잘못 닫혀있던” 오이디푸스 “삼각형”(Deleuze and Guattari 96)으로부터 자유로운 주체가 된 그들은 새로운 방향으로 횡단하며 서로의 에너지를 흐르게 한다.
    타자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새로운 주체는 “모성적 시간과 선형적 시간의 조화”(Kristeva, “Women’s Time” 187)를 이루며 새로운 의미화를 추구하는 주체이다. 크리스테바가 상호텍스트성의 교차점을 중시하는 것처럼 룰은 어느 한쪽으로 환원되지 않는 상호공존의 평등한 관계를 추구한다. 크리스테바가 전적으로 타자가 아니지만 전적으로 자기 자신도 아닌 타자와의 관계를 모성에서 발견하며 “윤리적 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듯(McAfee 76), 식수 역시 “다수가 되고 타자가 되며” “살아 있는 자를 생산하는” 모성에 주목한다(Newly 90). 룰이 제시하는 상호존중의 윤리학도 타자를 완전한 타자로 대하지 않는 지점을 지향한다. 이러한 윤리학을 실천하는 주인공들은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며 새로운 되기를 축복한다. 이리가레이가 레비나스의 윤리적 에로스를 “애무의 생산성”(An Ethics 185)으로 다시 쓰는 과정에서 사랑의 가장 근본적인 몸짓으로 강조하는 애무는 룰의 주인공들을 “재생과 변형의 은총”(197)이 되는 “빛의 원천”(197)으로 데려간다. 두 주인공은 눈 위에서 벌거벗은 채 눈 천사를 만들며 원죄로부터 해방된 에덴동산의 새로운 출발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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