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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義州 지역의 교류와 義州民의 異國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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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조선후기 의주는 國境, 關門 등으로 상징되었다. 국경에 위치하므로 군사적 요충지가 되지만, 청과의 군사적 긴장이 감소되면서 의주는 외교와 무역 기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의주는 조선과 明?淸 사이의 경계, 여진과 인접해 있는 境界地였다. 또한 국경으로 상징되는 압록강은 민의 이동하는 데 장애물이 되지 못하였으며, 더욱이 압록강 건너편부터 요동의 連山關(또는 鳳凰城) 사이에는 國境線이라고 상징할 만한 통제물이 없었다. 그러므로 의주부터 連山關(또는 鳳凰城)까지는 ‘國境中立地帶’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런 공간적 특성은 조선후기 내내 이어졌다. 민의 이동이 빈번하자, 빈 압록강변의 출입통제를 위해 청에서 군 초소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조선에서는 이를 반대하였다. 초소가 생기면 마을이 생기고, 민의 왕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우려때문이었다. 압록강변을 군인의 감시가 없는 空閑地로 남겨두려고 한 것은, 오히려 민이 경계를 넘는 越境이 단절되지 않는 한 가지 원인으로 제공되었다.
      한편 크고 작은 분쟁, 후금 건국,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이 발발하였을 때에는 상호간에 이주민이 대거 발생하였다. 조선전기에도 여진인 마을로 이주하는 조선인, 조선인 마을로 이주한 여진인이 많았던 것과 유사한 양상이었다. 청을 피해 들어오는 漢人(明人)이 이주하고, 이주민의 마을이 생겨나기도 하고, 이들과 결혼하는 의주 사람도 생겼다. 명확하게 보였던 나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이 의주를 비롯한 변방에서 생겨났다.
      의주는 조선과 明淸을 오가는 使行路에 또한 위치하였다. 燕京을 오고가는 연행사, 조선에 들어오는 勅行이 의주에 체류하면서 의주민은 청의 소식, 정보,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사행 구성원으로 참여하여 직접 淸에 가서 異國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柵門後市에서의 거래를 지속하면서, 의주상인과 淸 상인은 신뢰를 쌓을 수도 있었다.
      의주는 國境이라는 통제성, 邊方의 주변성, 민의 이동과 여행을 통해 이문화의 수용과 변용이 진행되는 지역이었다. 의주민은 異國 경험과 교류를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공간을 확장하고, 異國人과 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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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의주는 國境, 關門 등으로 상징되었다. 국경에 위치하므로 군사적 요충지가 되지만, 청과의 군사적 긴장이 감소되면서 의주는 외교와 무역 기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의주는 조선...

      조선후기 의주는 國境, 關門 등으로 상징되었다. 국경에 위치하므로 군사적 요충지가 되지만, 청과의 군사적 긴장이 감소되면서 의주는 외교와 무역 기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의주는 조선과 明?淸 사이의 경계, 여진과 인접해 있는 境界地였다. 또한 국경으로 상징되는 압록강은 민의 이동하는 데 장애물이 되지 못하였으며, 더욱이 압록강 건너편부터 요동의 連山關(또는 鳳凰城) 사이에는 國境線이라고 상징할 만한 통제물이 없었다. 그러므로 의주부터 連山關(또는 鳳凰城)까지는 ‘國境中立地帶’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런 공간적 특성은 조선후기 내내 이어졌다. 민의 이동이 빈번하자, 빈 압록강변의 출입통제를 위해 청에서 군 초소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조선에서는 이를 반대하였다. 초소가 생기면 마을이 생기고, 민의 왕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우려때문이었다. 압록강변을 군인의 감시가 없는 空閑地로 남겨두려고 한 것은, 오히려 민이 경계를 넘는 越境이 단절되지 않는 한 가지 원인으로 제공되었다.
      한편 크고 작은 분쟁, 후금 건국,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이 발발하였을 때에는 상호간에 이주민이 대거 발생하였다. 조선전기에도 여진인 마을로 이주하는 조선인, 조선인 마을로 이주한 여진인이 많았던 것과 유사한 양상이었다. 청을 피해 들어오는 漢人(明人)이 이주하고, 이주민의 마을이 생겨나기도 하고, 이들과 결혼하는 의주 사람도 생겼다. 명확하게 보였던 나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이 의주를 비롯한 변방에서 생겨났다.
      의주는 조선과 明淸을 오가는 使行路에 또한 위치하였다. 燕京을 오고가는 연행사, 조선에 들어오는 勅行이 의주에 체류하면서 의주민은 청의 소식, 정보,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사행 구성원으로 참여하여 직접 淸에 가서 異國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柵門後市에서의 거래를 지속하면서, 의주상인과 淸 상인은 신뢰를 쌓을 수도 있었다.
      의주는 國境이라는 통제성, 邊方의 주변성, 민의 이동과 여행을 통해 이문화의 수용과 변용이 진행되는 지역이었다. 의주민은 異國 경험과 교류를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공간을 확장하고, 異國人과 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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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Uiju in Pyeongan-do province during late Chosun period was the gate of the state; however, the city also has active exchange with foreign parties. War and exchange crossed with each other in a city located on a border because the city becomes a battleground during a war but it also becomes a place of goods exchange during peaceful time. In other words, war and exchange co-existed in a city on a border.
      War and exchange crossed with each other in a city located on a border because the city becomes a battleground during a war but it also becomes a place of goods exchange during peaceful time. In other words, war and exchange co-existed in a city on a border.
      Uiju also had geographical environment in addition to above border city environment, which enabled border-crossing. China and Chosun both clarified the border and strictly regulated border-crossing of people; however, the awareness on the border held by local people was quite different from the awareness of politicians.
      As more people participated in the traditional delegations to China, people who had the experience on foreign countries increase. In addition, as the exchange and trading on private level became active, the border became on objective to be crossed.
      The people of Uiju lived in a space, where the control of the state was quite strong; however, the location of Uiju was a remote frontier from the capital. The Uiju people living in the frontier of the state weakened the controlling power of the state and demonstrated the dynamics of border-crossing; while accommodating and learning new culture.
      Therefore, Uiju was a city, in which the people became familiar with exchange experience because their border-crossing experience was repeated every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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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Uiju in Pyeongan-do province during late Chosun period was the gate of the state; however, the city also has active exchange with foreign parties. War and exchange crossed with each other in a city located on a border because the city becomes a b...

      The Uiju in Pyeongan-do province during late Chosun period was the gate of the state; however, the city also has active exchange with foreign parties. War and exchange crossed with each other in a city located on a border because the city becomes a battleground during a war but it also becomes a place of goods exchange during peaceful time. In other words, war and exchange co-existed in a city on a border.
      War and exchange crossed with each other in a city located on a border because the city becomes a battleground during a war but it also becomes a place of goods exchange during peaceful time. In other words, war and exchange co-existed in a city on a border.
      Uiju also had geographical environment in addition to above border city environment, which enabled border-crossing. China and Chosun both clarified the border and strictly regulated border-crossing of people; however, the awareness on the border held by local people was quite different from the awareness of politicians.
      As more people participated in the traditional delegations to China, people who had the experience on foreign countries increase. In addition, as the exchange and trading on private level became active, the border became on objective to be crossed.
      The people of Uiju lived in a space, where the control of the state was quite strong; however, the location of Uiju was a remote frontier from the capital. The Uiju people living in the frontier of the state weakened the controlling power of the state and demonstrated the dynamics of border-crossing; while accommodating and learning new culture.
      Therefore, Uiju was a city, in which the people became familiar with exchange experience because their border-crossing experience was repeated every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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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의주, 장소의 속성
      • 3. 邊方, 모호한 境界
      • 4. 義州民의 異國 경험과 교류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의주, 장소의 속성
      • 3. 邊方, 모호한 境界
      • 4. 義州民의 異國 경험과 교류
      • 5.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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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龍灣誌(『朝鮮時代 私撰邑誌』 49・50(평안도 6・7))" 한국인문과학원 1990

      2 "통문관지"

      3 정혜중, "청대 조선인과 청국인 범월의 특징: 양국 범월사례의 분석을 중심으로" 명청사학회 (26) : 69-88, 2006

      4 김춘선, "조선후기 한인의 만주로의 ‘犯越’과 정착과정" 백산학회 51 : 1997

      5 권내현, "조선후기 평안도 재정 연구" 지식산업사 2004

      6 오수창, "조선후기 평안도 사회발전연구" 일조각 2002

      7 이철성, "조선후기 무역상인과 정부의 밀무역 대책"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58 : 2004

      8 이철성, "조선후기 대청무역사" 국학자료원 2000

      9 김현영, "조선후기 朝·淸 변경의 인구와 국경 인식" 국사편찬위원회 41 : 2004

      10 한성주, "조선의 對女眞關係와 6鎭지역 사람들" 한일관계사학회 (49) : 3-42, 2014

      1 "龍灣誌(『朝鮮時代 私撰邑誌』 49・50(평안도 6・7))" 한국인문과학원 1990

      2 "통문관지"

      3 정혜중, "청대 조선인과 청국인 범월의 특징: 양국 범월사례의 분석을 중심으로" 명청사학회 (26) : 69-88, 2006

      4 김춘선, "조선후기 한인의 만주로의 ‘犯越’과 정착과정" 백산학회 51 : 1997

      5 권내현, "조선후기 평안도 재정 연구" 지식산업사 2004

      6 오수창, "조선후기 평안도 사회발전연구" 일조각 2002

      7 이철성, "조선후기 무역상인과 정부의 밀무역 대책"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58 : 2004

      8 이철성, "조선후기 대청무역사" 국학자료원 2000

      9 김현영, "조선후기 朝·淸 변경의 인구와 국경 인식" 국사편찬위원회 41 : 2004

      10 한성주, "조선의 對女眞關係와 6鎭지역 사람들" 한일관계사학회 (49) : 3-42, 2014

      11 민덕기, "조선의 對明관계와 義州 사람들 -압록강 하류의 三島 경작문제를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49) : 43-81, 2014

      12 "조선왕조실록"

      13 차문섭, "조선시대 군사관계 연구"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6

      14 홍대용, "을병연행록 1·2" 경진 2012

      15 "연려실기술"

      16 "심양장계"

      17 "비변사등록"

      18 배우성, "국역 『同文彙考』 疆界 史料" 동북아역사재단 2008

      19 배우성, "국역 『同文彙考』 犯越 史料 1~4" 동북아역사재단 2008

      20 남의현, "고지도를 통해서 본 15~17세기의 변경지대 -압록강, 두만강 변을 중심으로-" 만주학회 (14) : 37-73, 2012

      21 "義州府狀啓謄錄(『각사등록』 卷35(평안도편 7))" 국사편찬위원회 1989

      22 "續雜錄"

      23 구범진, "淸의 朝鮮使行 人選과 ‘大淸帝國體制’" 인문학연구원 (59) : 179-228, 2008

      24 李惠恩, "朝鮮時代의 交通路에 대한 歷史地理的 연구 : 漢城~義州間을 事例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1976

      25 장희흥, "朝鮮時代 對明 使行의 接待와 護送軍-의주민의 생활을 중심으로" 백산학회 75 : 2006

      26 權以鎭, "有懷堂集"

      27 김선민, "國境地帶에서 國境線으로 -19世紀末 淸과 朝鮮의 關係" 중국사학회 (82) : 177-214, 2013

      28 이선희, "吉尙事件을 통해 본 17세기 초 向化胡人 관리 실태와 한계 - 『向化人謄錄』을 중심으로" 동양고전학회 (37) : 93-126, 2009

      29 "『연행록선집』: 『燕途紀行』(인평대군), 『燕行錄』(최덕중), 『燕行日記』(김창업), 『燕行記事』(이갑), 『燕行紀』(서호수), 『燕行錄』(김정중), 『戊午燕行錄』(서유문), 『薊山紀程』(미상), 『赴燕日記』(미상), 『燕薊紀程』(박사호), 『燕轅直指』(김경선), 『夢經堂日史』(서경순)"

      30 조용호, "19세기 선비의 의주·금강산기행" 삼우반 2005

      31 이철성, "17세기 平安道 『江邊 7邑』의 방어체제" 고려사학회 13 : 11-, 2002

      32 이욱, "17∼18세기 犯越사건을 통해 본 함경도 주민의 경제생활" 고려사학회 (20) : 139-164, 2005

      33 박범, "17~18세기 의주부의 경제상황과 재정운영의 변화" 조선시대사학회 (58) : 97-137, 2011

      34 이화자, "17~18세기 월경문제를 둘러싼 조·청 교섭"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

      35 유재춘, "15세기 前後 朝鮮의 北邊 兩江地帶 인식과 영토 문제" 조선시대사학회 (39) : 76-3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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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재인증) KCI등재
      2019-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2009-05-26 학회명변경 영문명 : Center for Korean Studies Pusan National University -> Korean Studies Institute, Pusan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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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9 0.89 0.7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3 0.78 1.247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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