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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湖西地域 原三國時代 墳墓遺物의 變遷과 周邊地域과의 關係 = The changes of the Artifacts excavated from Tombs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in the Hoseo Region and Relations with Neighbouring A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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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598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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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set out to sort out the current artifacts excavated from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in the Hoseo region by the areas and examine the development patterns of tombs artifacts by the periods by comparing them with those in the neighbouring areas including Gyeonggi, Honam, and Yeongnam.
      The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tombs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in the Hoseo region are mainly divided into the ones in the northern(inland) areas and those in the West Coast and southwestern areas like the case of tombs with a ditch. Their patterns are originated in the cultural system differences, starting to become clear in the second century and continuing to be clear in the third century.
      Entering the second century, there was a clear distinction between the exchange route from southern Gyeonggi through northern Hoseo to eastern Yeongnam and the one from the West Coast in Hoseo through the southwestern areas to the South Coast. It is estimated that the tombs culture was divided into two major regions in the Hoseo region under those influences during Proto-Three Kingdom Period.
      New changes occurred under the influence of Lorang(樂浪) culture in the third century with some differences in the content of artifacts between the two regions. The period witnessed the active construction of tombs both in the regions. Foreign artifacts including those of Lorang were introduced, and new types of pottery were made under the influence of Lorang artifacts and then naturalized. The backgrounds included the negotiations with Lorang and the inflows of its concepts and technologies via the migration of its migrants at the end of Hwanryeong(桓靈之末, the middle and late second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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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set out to sort out the current artifacts excavated from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in the Hoseo region by the areas and examine the development patterns of tombs artifacts by the periods by comparing them with those in the neighbouring...

      This study set out to sort out the current artifacts excavated from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in the Hoseo region by the areas and examine the development patterns of tombs artifacts by the periods by comparing them with those in the neighbouring areas including Gyeonggi, Honam, and Yeongnam.
      The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tombs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in the Hoseo region are mainly divided into the ones in the northern(inland) areas and those in the West Coast and southwestern areas like the case of tombs with a ditch. Their patterns are originated in the cultural system differences, starting to become clear in the second century and continuing to be clear in the third century.
      Entering the second century, there was a clear distinction between the exchange route from southern Gyeonggi through northern Hoseo to eastern Yeongnam and the one from the West Coast in Hoseo through the southwestern areas to the South Coast. It is estimated that the tombs culture was divided into two major regions in the Hoseo region under those influences during Proto-Three Kingdom Period.
      New changes occurred under the influence of Lorang(樂浪) culture in the third century with some differences in the content of artifacts between the two regions. The period witnessed the active construction of tombs both in the regions. Foreign artifacts including those of Lorang were introduced, and new types of pottery were made under the influence of Lorang artifacts and then naturalized. The backgrounds included the negotiations with Lorang and the inflows of its concepts and technologies via the migration of its migrants at the end of Hwanryeong(桓靈之末, the middle and late second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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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논문은 호서지역의 원삼국시대 분묘 출토유물에 대해 지역별로 출토유물 현황을 정리하고, 경기나 호남, 영남 등 주변지역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분묘 유물의 전개 양상을 시기별로 살펴본 것이다.
      호서지역의 원삼국시대 분묘는 주구묘와 마찬가지로 유물에 있어서도 크게 북부(내륙)지역과 서해안·서남부지역으로 대별되는데, 그 양상은 문화적 계통 차이에 연원이 있으며, 2세기대에 뚜렷해지기 시작하며 3세기대에도 이어진다.
      2세기대에는 전반적인 철기문화는 유사하지만, 토기나 일부 금속유물에서는 차이가 난다. 이는 경기남부에서 호서북부를 거쳐 영남동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교류 루트, 경기 서해안에서 호서서해안을 거쳐 남해안으로 이어지는 교류 루트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그 영향 하에서 호서지역의 원삼국시대 분묘 문화도 크게 두 지역권으로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세기대에는 낙랑 문물의 영향을 받아 다시 변화가 나타나지만, 유물 내용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3세기대에는 낙랑 문물의 영향 등으로 다시 변화가 나타나지만, 유물 내용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새로운 철기문화와 함께 호서북부지역은 양단환봉철기, 마형대구, 마구 등, 그리고 원통형토기도 본격적으로 사용되며, 호서 서해안과 남부지역은 철정과 양이부호, 이중구연호, 평저호 등이 새롭게 나타난다. 두 지역권 모두 분묘의 조영이 활발해지는 시기로, 낙랑 등 외래계 유물이 유입되기도 하고, 낙랑 유물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기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 배경에는 낙랑과의 교섭이나 桓靈之末(2세기 중·후엽) 韓濊의 강성으로 낙랑의 유이민이 많이 유입되어 낙랑의 관념과 기술 유입이 이루어졌던 상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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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호서지역의 원삼국시대 분묘 출토유물에 대해 지역별로 출토유물 현황을 정리하고, 경기나 호남, 영남 등 주변지역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분묘 유물의 전개 양상을 시기별로 살펴...

      이 논문은 호서지역의 원삼국시대 분묘 출토유물에 대해 지역별로 출토유물 현황을 정리하고, 경기나 호남, 영남 등 주변지역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분묘 유물의 전개 양상을 시기별로 살펴본 것이다.
      호서지역의 원삼국시대 분묘는 주구묘와 마찬가지로 유물에 있어서도 크게 북부(내륙)지역과 서해안·서남부지역으로 대별되는데, 그 양상은 문화적 계통 차이에 연원이 있으며, 2세기대에 뚜렷해지기 시작하며 3세기대에도 이어진다.
      2세기대에는 전반적인 철기문화는 유사하지만, 토기나 일부 금속유물에서는 차이가 난다. 이는 경기남부에서 호서북부를 거쳐 영남동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교류 루트, 경기 서해안에서 호서서해안을 거쳐 남해안으로 이어지는 교류 루트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그 영향 하에서 호서지역의 원삼국시대 분묘 문화도 크게 두 지역권으로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세기대에는 낙랑 문물의 영향을 받아 다시 변화가 나타나지만, 유물 내용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3세기대에는 낙랑 문물의 영향 등으로 다시 변화가 나타나지만, 유물 내용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새로운 철기문화와 함께 호서북부지역은 양단환봉철기, 마형대구, 마구 등, 그리고 원통형토기도 본격적으로 사용되며, 호서 서해안과 남부지역은 철정과 양이부호, 이중구연호, 평저호 등이 새롭게 나타난다. 두 지역권 모두 분묘의 조영이 활발해지는 시기로, 낙랑 등 외래계 유물이 유입되기도 하고, 낙랑 유물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기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 배경에는 낙랑과의 교섭이나 桓靈之末(2세기 중·후엽) 韓濊의 강성으로 낙랑의 유이민이 많이 유입되어 낙랑의 관념과 기술 유입이 이루어졌던 상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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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택구, "한반도 중서부지역의 馬韓 墳丘墓" 한국고고학회 (66) : 48-89, 2008

      2 김성욱, "한반도 마형대구의 편년과 지역상"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1

      3 서현주, "한강·영산강·낙동강유역권과의 문화적 상사·상이성 및 교류, In 호서지역 마한 문화의 지역성" 2011

      4 이현숙, "출토유물로 본 부장리 고분군의 정체성, In 瑞山 富長里 古墳群의 正體性" 2015

      5 현남주, "중서부지역 출토 마형대구의 검토" 한국고대학회 (35) : 47-73, 2011

      6 김승옥, "중서부지역 마한계 분묘의 인식과 시공간적 전개과정" 한국상고사학회 71 (71): 85-116, 2011

      7 성정용, "중서부 마한지역의 백제영역화과정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0

      8 지민주, "중부지역 마한 분묘 출토 토기류의 성격-2세기대 유적을 중심으로-, In 중부지역 원삼국시대 타날문토기의 등장과 전개" 2013

      9 박형열, "원삼국시대 유개대부호의 편년" 호남고고학회 50 : 70-91, 2015

      10 김성남, "오이도 원삼국토기의 성격" 백제연구소 (40) : 33-58, 2004

      1 이택구, "한반도 중서부지역의 馬韓 墳丘墓" 한국고고학회 (66) : 48-89, 2008

      2 김성욱, "한반도 마형대구의 편년과 지역상"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1

      3 서현주, "한강·영산강·낙동강유역권과의 문화적 상사·상이성 및 교류, In 호서지역 마한 문화의 지역성" 2011

      4 이현숙, "출토유물로 본 부장리 고분군의 정체성, In 瑞山 富長里 古墳群의 正體性" 2015

      5 현남주, "중서부지역 출토 마형대구의 검토" 한국고대학회 (35) : 47-73, 2011

      6 김승옥, "중서부지역 마한계 분묘의 인식과 시공간적 전개과정" 한국상고사학회 71 (71): 85-116, 2011

      7 성정용, "중서부 마한지역의 백제영역화과정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0

      8 지민주, "중부지역 마한 분묘 출토 토기류의 성격-2세기대 유적을 중심으로-, In 중부지역 원삼국시대 타날문토기의 등장과 전개" 2013

      9 박형열, "원삼국시대 유개대부호의 편년" 호남고고학회 50 : 70-91, 2015

      10 김성남, "오이도 원삼국토기의 성격" 백제연구소 (40) : 33-58, 2004

      11 중앙문화재연구원,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 문화재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자료집(유인물)"

      12 중앙문화재연구원,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 문화재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자료집(유인물)"

      13 홍보식, "문물로 본 가야와 백제의 교섭과 교역" 호서고고학회 (18) : 116-147, 2008

      14 김길식, "낙랑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6

      15 김무중, "낙랑 문화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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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성정용, "中西部地域 原三國時代 土器 樣相" 한국고고학회 (60) : 120-157, 2006

      32 이상엽, "中西部地域 出土 圓筒形土器의 性格 檢討" 한국고대학회 (31) : 162-196, 2009

      33 성정용, "中原地域 原三國時代 墳墓 築造集團의 性格" 중부고고학회 12 (12): 83-116, 2013

      34 윤용구, "三韓과 樂浪의 교섭" 한국고대사학회 34 : 125-144, 2004

      35 김길식, "2~3世紀 漢江 下流域 鐵製武器의 系統과 武器의 集中流入 背景 -김포 운양동유적 철제무기를 중심으로-" 백제문화연구소 1 (1): 135-17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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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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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9 0.29 0.2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4 0.59 0.812 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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