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태조 이성계가 즉위한 1392년부터 순종까지 27명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며, 1910년까지 519년간 지속된 시대로 볼 수 있다. 즉, 조선조 초기는 대외적으로 명(明), 여진족(女眞族),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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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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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태조 이성계가 즉위한 1392년부터 순종까지 27명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며, 1910년까지 519년간 지속된 시대로 볼 수 있다. 즉, 조선조 초기는 대외적으로 명(明), 여진족(女眞族), 청(...
조선시대는 태조 이성계가 즉위한 1392년부터 순종까지 27명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며, 1910년까지 519년간 지속된 시대로 볼 수 있다. 즉, 조선조 초기는 대외적으로 명(明), 여진족(女眞族), 청(淸), 일본과 문화를 교류하였으나 크고 작은 전쟁이 빈번하였다. 중앙집권제로 유교가 사회전반을 주도하였으며, 신진 사대부가 등장하여 관리제도가 정착된 시대적 배경이 있다.
조선시대는 사회혁명에 의해 형성된 국가가 아니라 단지 왕조가 바뀐 혁명으로 왕권교체에 지나지 않았고, 정치, 사회, 경제, 문화가 고려적인 기반위에서 개혁되고, 재조직 된다. 고려사회의 문화는 유‧불교를 배경으로 하여 전개되었으며, 고려 말 주자학이 도입되어 조선조는 건국 초부터 배불정책을 내세워, 유교를 숭상하는 정치적 지도이념을 지양하였다(체육총서편찬회, 1980:49).
이와 같이 조선시대는 유교사상에 의해 다양한 신체활동과 무예수련은 차츰 쇠퇴하는 경향이 나타난 반면, 무관(武官)을 과거에 의하여 등용하였다. 세조는 정권 쟁탈을 계기로 무관을 위한 과거제도를 대폭 정비하여 강화시킴으로서 문무병용의 정책이 중요시되었다. 이것은 무과의 제도를 통해 무사(武士)를 양성하는 정책으로 정착된다.
따라서 조선시대 무예신체문화의 연구는 나현성(1974)의《한국체육사연구》를 시발점으로 이학래(1990), 이진수(1994), 등이 있으며, 전통무예의 연구를 주도한 것은 나영일(1992)의 <조선조 무사체육에 관한 연구> , 박기동(1995)의 <조선후기 무예사 연구> 등이 있다. 무예의 사상적인 측면은 김정행(1997)의《무도론》, 양진방(1998)의 <무술, 무예, 무도개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틀> , 최복규(1995)의 <전통무예의 개념정립과 현대적 의의>, 등의 다수가 있으며, 무경에 관련된 연구는 장학근(1996)의 <조선초 武經七書의 도입 배경>, 곽낙현(2009)의 <武經七書를 통해서 본 조선전기 武科試取에 관한 연구> 등이 있지만, 전통무예 사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이와 같이 전통무예의 관심영역의 확대는 학문적 토대를 형성하는 학술적 연구를 비롯한 ‘전통무예진흥법(2008)’을 입안하고 제도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사회적 현상으로 전국 대학에 무예관련 학과를 설립하는 계기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전통 무예란 제한적인 측면에서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국수주의적 입장에서 무예사상을 일본 또는 중국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그 사상을 설명한 연구물은 없다. 또는 동양과 서양의 관점에 구별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현대 사회는 많은 전통무예가 존재하고 있으나 그들의 무예사상을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전통무예의 사상적 연구는 무예, 무도, 무술의 개념을 통해, 도(道)라는 결론으로 귀결하려는 특징이 있으며, 보편적 개념에서 일본 무도사상을 인용하고 있다. 한편, 한국 전통무예의 경우 삼원(三元) 또는 삼재(三才), 더 나아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개념을 토대로 무예사상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그에 대한 이론은 있지만 무엇이 무예의 사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단지, 그들의 무예 형(품세)이나 기법에서 그와 같은 사상을 함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한국 전통무예가 올바른 학문으로 정착되고 현대 사회에서 그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근거 있는 무예의 사상적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예컨대, 한국 고대 사회로부터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무(武)는 지과지예(止戈之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무(武)를 통해 전란을 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무(武)를 사용하지 않고 전쟁을 그치는 것이 최대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 권도(權道)로 전쟁을 그친다는 의미로 귀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의 무(武)는 국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무학(武學)의 학문적 체계가 정립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전통시대 무예사상의 핵심은 조선시대 무학의 주요 텍스트를 토대로 그 근원과 체계를 정립함이 중요할 것으로 인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