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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청일전쟁기 조선정부의 대영(對英) 외교교섭 연구 : 고종과 흥선대원군 세력을 중심으로 = The Diplomatic Negotiations between the Korea and Britain during the first Sino-Japanese War: Focusing on King Gojong and the Heungseon Daewongun’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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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negotiations with Britain that King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n promoted for the purpose of anti-Japanese in the early days of the first Sino- Japanese War. When Japan occupied Gyeongbokgung, King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n’s group tried to weaken Japanese influence through British intervention. By the way, While King Gojong wished that British troops would protect him and Empress Myeongseong, Heungseon Daewongun’s group tried to take control of Korea through British intervention. However, Briiain tried not to intervene in the Korea and Japanese issues by not taking any action. Then King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n’s group induced British intervention through interests. King Gojong tried to neutralize the Joiljamjeonghapdongjogwan (朝日暫定合同條款 : Korea-Japan Tentative Cooperation Provision) through the Chosun-Rothschild contract. Heungseon Daewongun’s group hoped that Britain would neutralize Japan's plan to deploy advisors to the Joseon government only as Japanese based on the balance of interests. In other words, King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n's group tried to bring Britain into "anti-Japanese" by going back and forth between monopoly and equalization of these powers. However, using other foreign powers to overpower foreign powers only would lead to another foreign aggression. From this point of view, the anti-Japanese negotiations with Britian by King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n’s group were the first steps to catastrop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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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negotiations with Britain that King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n promoted for the purpose of anti-Japanese in the early days of the first Sino- Japanese War. When Japan occupied Gyeongbokgung, King Gojon...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negotiations with Britain that King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n promoted for the purpose of anti-Japanese in the early days of the first Sino- Japanese War. When Japan occupied Gyeongbokgung, King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n’s group tried to weaken Japanese influence through British intervention. By the way, While King Gojong wished that British troops would protect him and Empress Myeongseong, Heungseon Daewongun’s group tried to take control of Korea through British intervention. However, Briiain tried not to intervene in the Korea and Japanese issues by not taking any action. Then King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n’s group induced British intervention through interests. King Gojong tried to neutralize the Joiljamjeonghapdongjogwan (朝日暫定合同條款 : Korea-Japan Tentative Cooperation Provision) through the Chosun-Rothschild contract. Heungseon Daewongun’s group hoped that Britain would neutralize Japan's plan to deploy advisors to the Joseon government only as Japanese based on the balance of interests. In other words, King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n's group tried to bring Britain into "anti-Japanese" by going back and forth between monopoly and equalization of these powers. However, using other foreign powers to overpower foreign powers only would lead to another foreign aggression. From this point of view, the anti-Japanese negotiations with Britian by King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n’s group were the first steps to catastrop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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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은 청일전쟁 초기 고종과 흥선대원군 세력이 항일을 목적으로 추진한 영국과의 교섭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자, 고종과 흥선대원군 세력은 영국의 개입으로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고종은 영국군의 투입을 통해서 본인과 명성황후를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다면, 흥선대원군은 영국의 개입으로 조선의 통치권을 장악하고자 했다. 하지만 영국은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조선과 일본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자 했다. 그러자 고종과 흥선대원군은 이권을 매개로 영국의 개입을 유도하였다. 고종은 조선-로스차일드 계약을 통해서 잠정합동조관을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흥선대원군 세력은 영국이 이권의 균점을 내세워서 일본이 조선정부에 독점적으로 고문관을 파견하려는 계획을 무력화해주기를 희망하였다. 즉 고종과 흥선대원군 세력은 이권의 독점과 균점을 오가면서 영국을 “항일전선”에 끌어들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외세를 이용해서 다른 외세를 제압하는 것은 또 다른 외세의 침략을 초래할 뿐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항일 대영교섭은 파국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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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청일전쟁 초기 고종과 흥선대원군 세력이 항일을 목적으로 추진한 영국과의 교섭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자, 고종과 흥선대원군 세력은 영국의 개입으로 ...

    이 글은 청일전쟁 초기 고종과 흥선대원군 세력이 항일을 목적으로 추진한 영국과의 교섭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자, 고종과 흥선대원군 세력은 영국의 개입으로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고종은 영국군의 투입을 통해서 본인과 명성황후를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다면, 흥선대원군은 영국의 개입으로 조선의 통치권을 장악하고자 했다. 하지만 영국은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조선과 일본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자 했다. 그러자 고종과 흥선대원군은 이권을 매개로 영국의 개입을 유도하였다. 고종은 조선-로스차일드 계약을 통해서 잠정합동조관을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흥선대원군 세력은 영국이 이권의 균점을 내세워서 일본이 조선정부에 독점적으로 고문관을 파견하려는 계획을 무력화해주기를 희망하였다. 즉 고종과 흥선대원군 세력은 이권의 독점과 균점을 오가면서 영국을 “항일전선”에 끌어들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외세를 이용해서 다른 외세를 제압하는 것은 또 다른 외세의 침략을 초래할 뿐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항일 대영교섭은 파국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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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왕현종, "한국 근대국가의 혀엉과 갑오개혁" 역사비평사 2002

    2 유바다, "청일전쟁기 朝-淸 항일 연합전선의 구축과 동학농민군" 동학학회 (51) : 305-339, 2019

    3 한승훈, "청일전쟁 직전 영국의 외교적 간섭 실패와 패권적 지위 균열: 영국의 대조선정책과 관련해서"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19 (19): 63-97, 2020

    4 조경달, "이단의 민중반란-동학과 갑오농민전쟁 그리고 조선 민중의 내셔널리즘" 역사비평사 2008

    5 유영익, "동학농민봉기와 갑오경장" 일조각 1998

    6 배항섭, "동학농민군의 대외인식-대일관・대청관을 중심으로" 20 : 2004

    7 최태호, "근대한국경제사 연구서설 : 개항기의 한국관세제도와 민족경제" 국민대학교 출판부 1991

    8 김현숙, "근대 한국의 서양인 고문관들" 한국연구원 2008

    9 박상섭, "국가・주권" 소화 2009

    10 장경호, "고종의 미관파천(美館播遷) 시도와 한미관계(1894~1905)" 경인문화사 2020

    1 왕현종, "한국 근대국가의 혀엉과 갑오개혁" 역사비평사 2002

    2 유바다, "청일전쟁기 朝-淸 항일 연합전선의 구축과 동학농민군" 동학학회 (51) : 305-339, 2019

    3 한승훈, "청일전쟁 직전 영국의 외교적 간섭 실패와 패권적 지위 균열: 영국의 대조선정책과 관련해서"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19 (19): 63-97, 2020

    4 조경달, "이단의 민중반란-동학과 갑오농민전쟁 그리고 조선 민중의 내셔널리즘" 역사비평사 2008

    5 유영익, "동학농민봉기와 갑오경장" 일조각 1998

    6 배항섭, "동학농민군의 대외인식-대일관・대청관을 중심으로" 20 : 2004

    7 최태호, "근대한국경제사 연구서설 : 개항기의 한국관세제도와 민족경제" 국민대학교 출판부 1991

    8 김현숙, "근대 한국의 서양인 고문관들" 한국연구원 2008

    9 박상섭, "국가・주권" 소화 2009

    10 장경호, "고종의 미관파천(美館播遷) 시도와 한미관계(1894~1905)" 경인문화사 2020

    11 유영익, "갑오경장연구" 일조각 1990

    12 왕현종, "갑오개혁기 권력구조 개편과 군주권의 위상" 114 : 2001

    13 "駐韓日本公使館記錄"

    14 김현숙, "韓末 顧問官 J. McLeavy Brown에 대한 硏究" 66 : 1989

    15 오영섭, "甲午更張 中 高宗의 王權恢復運動" 24 : 2000

    16 홍문기, "甲午改革 이후 秘書機關의 변천과 君主權" 52 : 2006

    17 "『日本外交文書』 第27卷 第1冊"

    18 "FO : Records created and inherited by the Foreign Office in UK"

    19 한승훈, "19세기 후반 조선의 대외정책 기조와 그 실현-균세정책과 거중조정의 추진" 한국근현대사학회 (83) : 7-38, 2017

    20 조재곤, "1894년 7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에 대한 반향" 한국근현대사학회 (96) : 7-38, 2021

    21 김순덕, "1876~1905년 관세정책과 관세의 운용" 15 : 1986

    22 "- FO 228/1142, FO 228/1143, FO 228/1168, FO 405/61, FO 40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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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2-0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9-2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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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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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28 1.28 1.1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89 2.254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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