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부여 강역에 대한 연구현황을 정리하고, 그 문제점과 쟁점 사항을 분석해 봄으로써 부여 성립 초기, 전성기, 쇠퇴기의 강역을 생활문화권역 중심으로 재설정해 보고자 하는데 그 목...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5338609
2018
-
부여 ; 강역 ; 길림시 ; 호룬평원 ; 송눈평원 ; 생활문화권 ; Buyeo ; Territory ; Jilin ; Hulun Plain ; Songnen Plain ; Living-culture area
900
KCI등재
학술저널
33-52(20쪽)
3
0
상세조회0
다운로드이 글은 부여 강역에 대한 연구현황을 정리하고, 그 문제점과 쟁점 사항을 분석해 봄으로써 부여 성립 초기, 전성기, 쇠퇴기의 강역을 생활문화권역 중심으로 재설정해 보고자 하는데 그 목...
이 글은 부여 강역에 대한 연구현황을 정리하고, 그 문제점과 쟁점 사항을 분석해 봄으로써 부여 성립 초기, 전성기, 쇠퇴기의 강역을 생활문화권역 중심으로 재설정해 보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성립기 부여는 『사기』와 『한서』의 기록에 의하면 오환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부여의 강역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오환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서차구고분군 발굴보고서를 재작성하는 과정에서 이들 무덤의 조영집단을 오환으로 파악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환의 거주지는 장성 이북의 길림 합달령 주변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성립초기부터 부여는 길림시 일대를 중심으로 성립되었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더불어 고고학적으로도 기존의 토착문화인 서단산문화가 소멸되고 초기철기문화인 포자연문화로 새롭게 출현한다는 점 역시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전성기의 강역범위에 대해서는 호룬평원설과 송눈평원설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호룬평원은 인간이 생활하기에 자연환경이 적합하지 않으며, 부여의 물질문화로 파악할 수 있는 유적, 유물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송눈평원 지역을 부여의 중심권역으로 볼 수 있다. 당시의 강역범위는 길림시 일대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장광재령과 위호령, 서쪽으로는 송원지역에서 개원 일대에 이르는 선, 남쪽으로는 용강산, 북쪽 경계는 동류송화강 일원으로 설정할 수 있다.
전성기 부여의 강역범위 내에는 모두 5개의 생활문화권역이 확인된다. 부여가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5개 문화권역 중 길림시 일대와 사평ㆍ개원 일대의 세력집단은 전연의 침입에 의해 소멸되고, 휘발하유역의 세력집단은 고구려에 복속되며, 빈현 일대의 세력집단은 읍루와 물길의 남하로 인해 지속적으로 세력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유수 노하심유적을 중심으로 한 북류송화강 하류에 거주하던 집단이 최후까지 존속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494년 왕실이 고구려에 투항한 이후에는 일부 세력이 동류송화강을 건너 두막루를 건설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article summarizes the research status of Buyeo’s territory and analyzes its problems and issues, and resets the role of Buyeo in the region’s origin, prime, and decline to the purpose of living culture area. According to the records of chine...
The article summarizes the research status of Buyeo’s territory and analyzes its problems and issues, and resets the role of Buyeo in the region’s origin, prime, and decline to the purpose of living culture area.
According to the records of chinese books, Buyeo at the time of establishment was on the north of Wuwan. In the recent process of re-creatable Xichagou tombs Research Report of Cultural Treasure, Given that the contrast groups in these tombs were identified as Wuwan, The dwelling site of Wuwan is likely to be around Jilinshan Deling north of the great wall. This explains that the Buyeo center was located in the Jilin region. Material and culture also disappears from the indigenous culture of Xininshan. Another reason for this is the rise of the early iron culture, the culture of Paoziyan.
The territorial boundaries of the prime are divided by the Hulun plain’s theory and the Songnen’s theory. However, the natural environment is not suitable for human beings and artifacts identified as the material culture of Buyeo can not be identified in the Hulun Plain, The Songnen Plain area can be seen as the central region of Buyeo. The territory of the time was centered around the Jilin and east were the Changan Cai Ling and Wei Holing, west were Songyuan and Kaiyuan, Mount Yonggang to the south, The northern boundary may be set along the East Songhua River.
In the prime buyeo’s territory, there are five Living-culture districts identified. As Buyeo has entered a declining stage, five cultural districts may have difficulty maintaining power due to continued entry into Qian Yan, Koguryeo, Yilou and Wuji. Eventually, it is likely that a group of people who lived downstream of the Songhua River in northern flow, located at Yoshu laohe shen ruins, succeeded to Buyeo, After the royal family surrendered to Koguryeo in 494, it can be traced that some influential people crossed the East Songhua River and built Doumolou.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曾庸, "遼寧西豊西岔溝古墓群爲烏桓文化遺迹論" (6) : 1961
2 송호정, "한국사4 -초기국가(고조선 부여 삼한)-" 국사편찬위원회 1997
3 박경철, "한국사2" 한길사 1994
4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5 권승안, "조선단대사(부여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1
6 이종수, "북학의 역사인식과 부여사로의 적용 -권승안의 조선단대사: 부여사 서평을 중심으로-" 단국사학회 53 : 2017
7 노태돈, "부여국의 강역 및 그 변천" 국사편찬위원회 4 : 1989
8 傳斯年, "동북사강(東北史綱)" 주류성 2017
9 李鐘洙, "고구려의 부여진출과정연구-군사적 충돌을 중심으로-" 고구려발해학회 21 : 337-368, 2005
10 靳維柏, "關于鮮卑早期文化的再認識" (3) : 1988
1 曾庸, "遼寧西豊西岔溝古墓群爲烏桓文化遺迹論" (6) : 1961
2 송호정, "한국사4 -초기국가(고조선 부여 삼한)-" 국사편찬위원회 1997
3 박경철, "한국사2" 한길사 1994
4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5 권승안, "조선단대사(부여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1
6 이종수, "북학의 역사인식과 부여사로의 적용 -권승안의 조선단대사: 부여사 서평을 중심으로-" 단국사학회 53 : 2017
7 노태돈, "부여국의 강역 및 그 변천" 국사편찬위원회 4 : 1989
8 傳斯年, "동북사강(東北史綱)" 주류성 2017
9 李鐘洙, "고구려의 부여진출과정연구-군사적 충돌을 중심으로-" 고구려발해학회 21 : 337-368, 2005
10 靳維柏, "關于鮮卑早期文化的再認識" (3) : 1988
11 李 鍾 洙, "西溝 古墳群의 性格과 使用集團에 대하여" 백산학회 (77) : 99-127, 2007
12 田耘, "西岔溝古墓群族屬問題淺析" (1) : 1984
13 李建才, "社會科學戰線" 社會科學戰線出版社 1982
14 장진근, "滿洲源流考(만주원류고)" 파워북 2008
15 丁謙, "浙江圖書館叢書 第1集" 上海古籍書店 1915
16 이종수, "松花江유역 初期鐵器文化의 변천과 夫餘文化 성립과정 고찰" 동양학연구원 (53) : 223-246, 2013
17 李文信, "李文信考古文集" 遼寧人民出版社 1992
18 白鳥庫吉, "弱水考" 7 (7): 1896
19 張博泉, "夫餘的地理環境與疆域" 1988 (1988): 1998
20 楊軍, "夫餘史硏究" 蘭州大學出版社 2012
21 張博泉, "夫餘史地叢說" (6) : 1981
23 王禹浪, "北夷“索離”國及其夫餘初期王城新考" 2003 (2003): 2003
24 李德山, "中國東北古民族發展史"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3
25 孫守道, "“匈奴西岔溝文化”古墓群的發現" (8·9) : 1960
考古 · 文獻資料로 본 皇龍寺 畢功의 意味와 創建伽藍의 存在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7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1-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8-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1-01-01 | 등재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 |
| 2008-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7-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6-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 |
| 2005-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4-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 |
| 2003-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6 | 0.6 | 0.71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63 | 0.59 | 1.723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