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285, Moyongoe(慕容廆) invaded Puyeo(扶餘), destroyed the capital, took over 10,000 prisoners, and returned. During this process King Uilyeo(依慮王) committed suicide, and his son King Uila(依羅王) succeeded the throne and fled to Okjeo(...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285, Moyongoe(慕容廆) invaded Puyeo(扶餘), destroyed the capital, took over 10,000 prisoners, and returned. During this process King Uilyeo(依慮王) committed suicide, and his son King Uila(依羅王) succeeded the throne and fled to Okjeo(...
In 285, Moyongoe(慕容廆) invaded Puyeo(扶餘), destroyed the capital, took over 10,000 prisoners, and returned. During this process King Uilyeo(依慮王) committed suicide, and his son King Uila(依羅王) succeeded the throne and fled to Okjeo(沃沮). The following year, when Moyongoe broke into Puyeo again, King Uila sent an envoy to Jin(晉) to ask for help, and with the help of Jin, defeated the invasion of Moyongoe and saved the country.
Okjeo, where King Uila was evacuated, is said to be the old North Okjeo(北沃沮) area that was formerly located downstream of the Duman river(豆滿江). And it is said that some people left this place and founded East-Puyeo(東扶餘). However, North Okjeo is the area where Koguryo(高句麗) occupies the Period of King Dongmyeong(東明王). And it was the area that occupied Koguryo in 280 years. Therefore, the area where King Uila has evacuated can not be seen here.
모용외는 285년에 부여를 침입하여 수도가 파괴하고, 포로 만 여명을 잡아서 되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국왕 의려는 자살을 하고, 아들인 의라는 왕위를 계승하고 옥저로 피난하였다. 다음해...
모용외는 285년에 부여를 침입하여 수도가 파괴하고, 포로 만 여명을 잡아서 되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국왕 의려는 자살을 하고, 아들인 의라는 왕위를 계승하고 옥저로 피난하였다. 다음해에 모용외가 다시 부여를 침입하자, 의라왕은 진(晉)에 사신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고, 진의 도움을 받아 모용외의 침입을 물리치고 나라를 보전하였다.
의라가 피난하였던 옥저에 대해서 기존에는 두만강 하류에 있던 과거의 북옥저 지역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일부 사람들이 남아 이곳에 동부여를 건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북옥저는 동명왕대에 고구려가 점령한 지역이다. 그리고 280년에도 고구려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지역이다. 그러므로 의라가 피난한 지역을 이곳으로 볼 수 없다.
참고문헌 (Reference)
1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2 "진서"
3 박노석, "졸본부여와 고구려의 관계에 대한 고찰" 26 : 2003
4 "조선단대사 (부여편)"
5 "자치통감"
6 "삼국지"
7 박노석, "삼국시대 실직과 하슬라의 위치 이동" 전북사학회 (35) : 41-67, 2009
8 "삼국사기"
9 "북사"
10 나하나, "부여의 변천과 동부여 문제" 인문과학연구소 (23) : 307-331, 2009
1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2 "진서"
3 박노석, "졸본부여와 고구려의 관계에 대한 고찰" 26 : 2003
4 "조선단대사 (부여편)"
5 "자치통감"
6 "삼국지"
7 박노석, "삼국시대 실직과 하슬라의 위치 이동" 전북사학회 (35) : 41-67, 2009
8 "삼국사기"
9 "북사"
10 나하나, "부여의 변천과 동부여 문제" 인문과학연구소 (23) : 307-331, 2009
11 윤용구, "고대중국의 동이관(東夷觀)과 고구려 - 동이교위(東夷校尉)를 중심으로 -" 한국역사연구회 (55) : 61-100, 2005
12 이용범, "고구려의 성장과 철" 백산학회 1 : 1966
13 권오중, "고구려의 국제관계" 2005
14 박노석, "고구려 초기 왕위 계승의 원리" 5 : 2005
15 박노석, "고구려 초기 왕들의 계보(系譜) 고찰" 전북사학회 (44) : 5-26, 2014
16 박노석, "고구려 서천왕대의 숙신 점령에 대한 고찰" 9 : 2004
17 박노석, "고구려 동천왕대 관구검의 침입" 한국사상문화학회 (20) : 149-175, 2003
18 박노석, "고구려 太祖王代 전반기의 대외 관계" 2 : 2003
19 박노석, "『삼국지』위서 동이전의 정보 출처에 대한 고찰" 전북사학회 (38) : 5-22, 2011
20 이민수, "‘3세기 沃沮 地域 東夫餘 建國說’에 대한 검토" 동아시아고대학회 (41) : 127-152, 2016
19세기 경향 간 채무 분쟁의 일면 -고창지역 채송(債訟) 관련 고문서를 중심으로-
일제 말기 사립보통학교 졸업생의 진로 -전주해성심상소학교 사례를 중심으로-
1930년대 조선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의 민족이론 수용 양상과 민족형성에 대한 해석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6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7-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3-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9-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7-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4 | 0.4 | 0.49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45 | 0.43 | 1.181 | 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