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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으로 본 부산의 산업변동과 로컬리티 = Industrial Fluctuations and Locality of Busan with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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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646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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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the process of growth of Busan from a fishing village to the capital city of South Gyeongsang Province and the central city of transportation and commerce, and an industry with records. The results of the analysis are as follows: after the port opened in 1876, there has been a decline in settlement spaces in Dongnae; on the other hand, there has been an increase in migration spaces around the port of Busan. Waegwan(倭館) nearby Yongdusan Mountain(龍頭山) was changed to the Japanese concession; thus, the number of Japanese moving into Busan had rapidly increased. As a result, the Japanese government carried out reclamation work for securing available lands for the construction of port facilities and other facilities. The Japanese government built public offices and houses, as well as production facilities for daily necessities around the port of Busan. The opening of the Seoul Busan railway(京釜線) and the cross-channel liner between Busan and Shimonoseki(釜關連絡船) led to the growth of Busan and the development of its status. At this time, as the main industry of Busan was trade, Busan had grown as a commercial city. As Busan had grown as a central city of transportation and commerce, the provincial government building of Gyeongsangnam-do(慶尙南道) moved to Busan. Thus, Busan became the central city of local politics and administration. After the Land Survey Project, a large scale of farmers were recruited for low-wage work in the new port. Because of the abolition of the corporation law, Japanese capitalists moved into their colony in Busan. There, large-scale factories, such as the Joseon cotton textile factory, were established. Through this process, the locality of Busan was changed from a fishing village to a commercial city and, finally, to a city of commerce and indu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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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analyzes the process of growth of Busan from a fishing village to the capital city of South Gyeongsang Province and the central city of transportation and commerce, and an industry with records. The results of the analysis are as follows: a...

      This study analyzes the process of growth of Busan from a fishing village to the capital city of South Gyeongsang Province and the central city of transportation and commerce, and an industry with records. The results of the analysis are as follows: after the port opened in 1876, there has been a decline in settlement spaces in Dongnae; on the other hand, there has been an increase in migration spaces around the port of Busan. Waegwan(倭館) nearby Yongdusan Mountain(龍頭山) was changed to the Japanese concession; thus, the number of Japanese moving into Busan had rapidly increased. As a result, the Japanese government carried out reclamation work for securing available lands for the construction of port facilities and other facilities. The Japanese government built public offices and houses, as well as production facilities for daily necessities around the port of Busan. The opening of the Seoul Busan railway(京釜線) and the cross-channel liner between Busan and Shimonoseki(釜關連絡船) led to the growth of Busan and the development of its status. At this time, as the main industry of Busan was trade, Busan had grown as a commercial city. As Busan had grown as a central city of transportation and commerce, the provincial government building of Gyeongsangnam-do(慶尙南道) moved to Busan. Thus, Busan became the central city of local politics and administration. After the Land Survey Project, a large scale of farmers were recruited for low-wage work in the new port. Because of the abolition of the corporation law, Japanese capitalists moved into their colony in Busan. There, large-scale factories, such as the Joseon cotton textile factory, were established. Through this process, the locality of Busan was changed from a fishing village to a commercial city and, finally, to a city of commerce and indu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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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전통적으로 부산 일대에서 전통적인 정치․행정의 중심지는 정주공간인 동래이고, 부산은 동래부 동평현 부산포라는 어촌이었다. 개항 이후 일본과의 연이은 조약으로 일본인의 조선 내에서의 활동범위가 넓어지고 조선에서 일본인의 상업행위가 허용됨에 따라 일본인의 이주가 급증하였다. 일본은 조차나 임대, 매입 또는 매축을 통해 전관거류지와 서쪽 방면 일대, 북항 일대의 부지를 확보하고, 북항 일대에 공공시설과 상공업시설, 철도․항만시설을 구비하여 경부철도와 관부연락선이 바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처럼 부산이 한일간 교통의 요충지가 되자 부산은 통상 중심의 상업이 발달하고, 부산항은 조선 최대의 무역항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이후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조선의 임야와 거대한 농지를 확보하고, 소작농이 도시 임금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회사령을 통해 조선 자본의 성장을 억제하고 일본 자본이 침투하여 일본인 기업이 대거 설립되었다. 1914년에 시가지는 부(府)로, 농촌은 군(郡)으로 지방행정조직이 개편됨에 따라 부산포 일대의 일본인이 개발한 지역은 부산부로, 그 외의 농촌지역은 동래군으로 바뀌었다. 새로 신설되는 공공시설과 상공업시설, 철도․항만시설은 부산부에 집중적으로 들어섬에 따라 변방이었던 이곳이 정치․행정의 중심지로 탈바꿈하였다. 부산이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함에 따라 경상남도의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였다. 이로써 부산이 경상남도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 역할이 확대되었다. 토지조사사업으로 대규모 노동력을 확보하고, 회사령 철폐로 일본이 대자본이 식민지로 진출하였다. 부산진 방면의 매립으로 조선방직 등 대규모 공업시설이 설립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산의 도시 정체성, 즉 로컬리티도 어촌에서 통상 위주의 상업도시로, 나아가 상공업 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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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으로 부산 일대에서 전통적인 정치․행정의 중심지는 정주공간인 동래이고, 부산은 동래부 동평현 부산포라는 어촌이었다. 개항 이후 일본과의 연이은 조약으로 일본인의 조선 내에...

      전통적으로 부산 일대에서 전통적인 정치․행정의 중심지는 정주공간인 동래이고, 부산은 동래부 동평현 부산포라는 어촌이었다. 개항 이후 일본과의 연이은 조약으로 일본인의 조선 내에서의 활동범위가 넓어지고 조선에서 일본인의 상업행위가 허용됨에 따라 일본인의 이주가 급증하였다. 일본은 조차나 임대, 매입 또는 매축을 통해 전관거류지와 서쪽 방면 일대, 북항 일대의 부지를 확보하고, 북항 일대에 공공시설과 상공업시설, 철도․항만시설을 구비하여 경부철도와 관부연락선이 바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처럼 부산이 한일간 교통의 요충지가 되자 부산은 통상 중심의 상업이 발달하고, 부산항은 조선 최대의 무역항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이후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조선의 임야와 거대한 농지를 확보하고, 소작농이 도시 임금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회사령을 통해 조선 자본의 성장을 억제하고 일본 자본이 침투하여 일본인 기업이 대거 설립되었다. 1914년에 시가지는 부(府)로, 농촌은 군(郡)으로 지방행정조직이 개편됨에 따라 부산포 일대의 일본인이 개발한 지역은 부산부로, 그 외의 농촌지역은 동래군으로 바뀌었다. 새로 신설되는 공공시설과 상공업시설, 철도․항만시설은 부산부에 집중적으로 들어섬에 따라 변방이었던 이곳이 정치․행정의 중심지로 탈바꿈하였다. 부산이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함에 따라 경상남도의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였다. 이로써 부산이 경상남도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 역할이 확대되었다. 토지조사사업으로 대규모 노동력을 확보하고, 회사령 철폐로 일본이 대자본이 식민지로 진출하였다. 부산진 방면의 매립으로 조선방직 등 대규모 공업시설이 설립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산의 도시 정체성, 즉 로컬리티도 어촌에서 통상 위주의 상업도시로, 나아가 상공업 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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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회사령 , [ 시행 1911.4.1.] [ 조선총독부제령 제 13 호 , 1910.12.29 제정 ]" 국가법령정보센터

      2 김경남, "한말․일제하 부산지역의 도시형성과 공업구조의 특징" 부경역사연구소 5 : 223-259, 1999

      3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4 "한국독립운동사정보시스템"

      5 국가기록원, "조선총독부 관보"

      6 김기혁, "조선-일제강정기 동래읍성 경관변화 연구" 대한지리학회 37 (37): 317-336, 2002

      7 심민정, "조선 후기 통신사 원역의 차정과 변화" 부경대학교 대학원 2004

      8 송정숙, "조선 개항장의 감리서(監理署)와 기록- 부산항을 중심으로 -" 한국기록관리학회 13 (13): 255-281, 2013

      9 김대래, "일제강점기 부산지역 인구통계의 정비와 분석"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6) : 283-320, 2005

      10 차철욱, "일제강점기 부산도시사 연구의 회고와 전망" 23 : 395-4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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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국독립운동사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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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김기혁, "조선-일제강정기 동래읍성 경관변화 연구" 대한지리학회 37 (37): 317-336, 2002

      7 심민정, "조선 후기 통신사 원역의 차정과 변화" 부경대학교 대학원 2004

      8 송정숙, "조선 개항장의 감리서(監理署)와 기록- 부산항을 중심으로 -" 한국기록관리학회 13 (13): 255-28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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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권태환, "일제 식민통치와 사회구조의 변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12 김의원, "우리의 國土 : 그 변천의 歷史와 未來 (47): 日帝下 道廳移轉"

      13 "신증동국여지승람"

      14 "승정원일기"

      15 "삼국사기"

      16 "비변사등록"

      17 하지영, "부산항 거류지 차입 약서 부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

      18 송정숙, "부산의 기억과 로컬리티 -<부산의 인물>과 <부산의 문화재>를 중심으로-" 한국도서관·정보학회 43 (43): 343-364, 2012

      19 "부산역사문화대전"

      20 박용숙, "부산시사" 부산직할시사편찬위원회 1-, 1989

      21 홍영철, "부산근대영화사 : 영화상영자료 1915-1944" 산지니 2009

      22 "부산광역시 중구청 홈페이지"

      23 오미일, "부산 시공간의형성과 다층성" 소명출판 2013

      24 차철욱, "부산 북항 매축과 시가지 형성"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8) : 1-36, 2006

      25 김강일, "동래부사와 대일외교" 동북아역사재단 (38) : 295-328, 2012

      26 김용욱, "근대 개항기의 부산행정 : 1876~1910 년을 중심으로" 부산시사편찬위원회 11 : 35-91, 1994

      27 강대민, "근대 개항기 부산지역사 연구의 회고와 전망" 부산시사편찬위원회 23 : 327-351, 2007

      28 홍순권, "근대 개항기 부산의 무역과 상업" 11 : 3-33, 1994

      29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0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실"

      31 "고종실록"

      32 송정숙, "개항장으로서의 부산항과 기록" 한국기록관리학회 11 (11): 273-298, 2011

      33 김철권, "개항기·일제강점기의 부산 시가지 변천에 관한 연구 : 일본전관거류지를 중심으로" 東亞大學校 大學院 1999

      34 양흥숙, "개항 후 초량 사람들과 근대 공간의 형성" 한국민족문화연구소 (44) : 211-249, 2012

      35 강대민, "개항 이후의 부산과 일본" 부산시사편찬위원회 9 : 135-153, 1992

      36 李憲昶, "開港期 市場構造와 그 變化에 관한 연구" 서울大學校 大學院 1990

      37 홍연진, "釜關連絡船 始末과 釜山府 日本人 人口變動" 한일민족문제학회 (11) : 141-175, 2006

      38 김기수, "釜山의 近代建築과 붉은 벽돌 이야기" 한국해양대학교

      39 朝鮮總督府 土木局, "釜山鑿平工事報告" 朝鮮總督府 土木局 ; 국립중앙도서관

      40 김의환, "釜山 近代工業 發達史(上)​" 부산시사편찬위원회 6 : 375-431, 1967

      41 김의환, "釜山 近代工業 發展史(下)" 부산시사편찬위원회 7 : 58-87, 1969

      42 김대래, "移住와 支配 : 개항이후 부산거주 일본인에 관한 연구(1876-1910)" 한국경제통상학회 27 (27): 141-169, 2009

      43 李完永, "東萊府 및 倭館의 行政小考" 부산시사편찬위원회 2 : 11-73, 1963

      44 김민정, "朝鮮末期 이후 東萊邑城의 변천과정과 공간적 의미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25 (25): 187-196, 2009

      45 孫禎睦, "會社令研究" 한국사연구회 (45) : 87-130, 1984

      46 김동철, "京釜線 개통전후 부산지역 일본인 상인의 투자 동향"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8) : 37-72, 2006

      47 김동철, "‘東萊府使接倭使圖’의 기초적 연구" 효원사학회 37 : 69-103, 2010

      48 김동철, "[서 평] 왜관조선은 왜 일본사람들을 가두었을까? (다시로 가즈이 지음/ 정성일 옮김)" 한일관계사학회 (24) : 339-351, 2006

      49 장선화, "1920-30 년대 부산의 공업발전과 도시구조의 변화" 부경역사연구소 6 : 137-177, 2000

      50 尹用出, "18 세기 초 東萊府의 築城役과 賦役勞動" 2 : 83-128,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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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8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7-04-08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Records Management & Archives Society of Korea -> Journal of Korean Society of Archives and Records Management KCI등재
      2017-04-06 학회명변경 영문명 : Records Management & Archives Society Of Korea -> Korean Society of Archives and Records Management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5-03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Records Management & Archives Society of Koreae -> Journal of Records Management & Archives Society of Korea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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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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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98 0.98 1.0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1 1.06 1.6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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