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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책임과 점령기 일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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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전후 일본의 구성원들을, 전쟁범죄를 일으킨 소수의〈군국주의자〉와 그 피해자인 〈국민〉으로 양분하는 태평양전쟁사는 점령군에 의해 제작되었고,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를 통해 널리 확산되었다. 전쟁책임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면책과 피해자 정서 일변도의 왜곡된 역사인식, 사회적 분위기는 이미 점령기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일본의 점령기문학 중에는 드물지만 가해자로서의 자화상을 기억해 그려내거나, 비록 부분적이지만 ‘전쟁책임’과 집단죄책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되묻고 있는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오오카 쇼헤이의 소설 『포로기』의 주인공은 생사의 갈림길에 내몰린 전장의 자국 병사들을 “모두 잘못된 지시”에 의한 “희생자”들이라고 간주한다는 점에서 자칫 피해자 정체성을 구현하는 인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그는 희생의 근거가 결국 “순전히 우리 내부의 문제”임을 자인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내가 묵인한 조직의 지시에 따라 저질러진 행위의 책임을 그 조직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비겁”하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전쟁에 대해 집단죄책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도쿄재판 방청기라는 픽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다케야마 미치오의 「하이드씨의 재판」은 피고석의 “지배자”와 방청석을 포함한 대다수 일본의 “피지배자”들을 양분하며, 전시기에 피지배자들은 왜 지배자들에게 저항하지 못했는가라고 자문한다. 하지만 다케야마는 ‘이데올로기 조작’과 ‘가난한 나라’라는 환경을 방어막으로, 결국 집단죄책을 둘러싼 일본국민들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 면죄부를 준다는 점에서는 점령군이 제작한 태평양전쟁사의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와타나베 카즈오는 “사색하고 반성하는 정신이 희박한” 오합지졸과도 같은 대중은 “반사회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우려하며, 이 문제를 당시 도쿄재판에서 증언된 남경학살사건과 관련짓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대중은 자국의 군국주의와 파시즘에 어떠한 책임이 있는 것일까? 자국민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당시의 일본문학은 집단죄책이라는 관점에서 어떠한 성찰 혹은 자기 합리화의 길을 향하고 있었던 것인지 본 연구에서 살펴볼 것이다.
    ‘검열’ 역시 본 과제의 중요한 탐구 대상인데, 점령기 미디어와 관련된 데이터베이스에서 ‘도쿄재판’을 검색어로 기사를 검색해보면 ‘도쿄재판’을 표제어나 내용에 포함하는 기사들 중 수백 건의 글이 검색으로 인한 제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전쟁책임’을 검색어로 넣어 보았을 때 나타나는 열세 건의 검색 사례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숫자로, 당시의 검열당국이 ‘도쿄재판’과 관련된 보도나 평론에 대해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도쿄재판이나 전쟁책임과 관련된 일본 지식인들의 글과 그에 따른 검열 사례를 일본의 학자가 아닌 구식민지의 연구자의 눈으로 살펴보았을 때는 착목 지점이 다분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평화에 대한 죄’, ‘인도(人道)에 대한 죄’를 범했다는 당시 도쿄재판의 기소 내용에 대해, 지금까지도 역사수정주의자나 보수우익의 일본국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그 재판이 전승국에 의한 복수극 내지는 지배 권력의 각본에 의한 익살극이었다는 평가가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수백 건에 이르는 도쿄재판 관련 기사나 평론의 톤은 어떠한 것이었으며, 그 검열 사례 역시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었는지에 대한 검토는, 일본과 점령당국의 과거사 인식 및 그 착종과 관련해, 또한 아시아의 구식민지의 입장과 관련해서도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과제에서는 도쿄재판과 천황면책을 둘러싼 점령기문학―특히 에세이에 주목해, 전쟁 처리에 대한 패전국 일본인들의 동시대 반응을 재구성해보고, 검열을 비롯한 점령군의 점령정책이 실제로 일본인들의 전후의식과 전쟁책임에 어떠한 변수로 작용하였을지 고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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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 일본의 구성원들을, 전쟁범죄를 일으킨 소수의〈군국주의자〉와 그 피해자인 〈국민〉으로 양분하는 태평양전쟁사는 점령군에 의해 제작되었고,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를 통해 널리...

    전후 일본의 구성원들을, 전쟁범죄를 일으킨 소수의〈군국주의자〉와 그 피해자인 〈국민〉으로 양분하는 태평양전쟁사는 점령군에 의해 제작되었고,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를 통해 널리 확산되었다. 전쟁책임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면책과 피해자 정서 일변도의 왜곡된 역사인식, 사회적 분위기는 이미 점령기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일본의 점령기문학 중에는 드물지만 가해자로서의 자화상을 기억해 그려내거나, 비록 부분적이지만 ‘전쟁책임’과 집단죄책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되묻고 있는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오오카 쇼헤이의 소설 『포로기』의 주인공은 생사의 갈림길에 내몰린 전장의 자국 병사들을 “모두 잘못된 지시”에 의한 “희생자”들이라고 간주한다는 점에서 자칫 피해자 정체성을 구현하는 인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그는 희생의 근거가 결국 “순전히 우리 내부의 문제”임을 자인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내가 묵인한 조직의 지시에 따라 저질러진 행위의 책임을 그 조직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비겁”하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전쟁에 대해 집단죄책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도쿄재판 방청기라는 픽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다케야마 미치오의 「하이드씨의 재판」은 피고석의 “지배자”와 방청석을 포함한 대다수 일본의 “피지배자”들을 양분하며, 전시기에 피지배자들은 왜 지배자들에게 저항하지 못했는가라고 자문한다. 하지만 다케야마는 ‘이데올로기 조작’과 ‘가난한 나라’라는 환경을 방어막으로, 결국 집단죄책을 둘러싼 일본국민들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 면죄부를 준다는 점에서는 점령군이 제작한 태평양전쟁사의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와타나베 카즈오는 “사색하고 반성하는 정신이 희박한” 오합지졸과도 같은 대중은 “반사회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우려하며, 이 문제를 당시 도쿄재판에서 증언된 남경학살사건과 관련짓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대중은 자국의 군국주의와 파시즘에 어떠한 책임이 있는 것일까? 자국민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당시의 일본문학은 집단죄책이라는 관점에서 어떠한 성찰 혹은 자기 합리화의 길을 향하고 있었던 것인지 본 연구에서 살펴볼 것이다.
    ‘검열’ 역시 본 과제의 중요한 탐구 대상인데, 점령기 미디어와 관련된 데이터베이스에서 ‘도쿄재판’을 검색어로 기사를 검색해보면 ‘도쿄재판’을 표제어나 내용에 포함하는 기사들 중 수백 건의 글이 검색으로 인한 제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전쟁책임’을 검색어로 넣어 보았을 때 나타나는 열세 건의 검색 사례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숫자로, 당시의 검열당국이 ‘도쿄재판’과 관련된 보도나 평론에 대해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도쿄재판이나 전쟁책임과 관련된 일본 지식인들의 글과 그에 따른 검열 사례를 일본의 학자가 아닌 구식민지의 연구자의 눈으로 살펴보았을 때는 착목 지점이 다분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평화에 대한 죄’, ‘인도(人道)에 대한 죄’를 범했다는 당시 도쿄재판의 기소 내용에 대해, 지금까지도 역사수정주의자나 보수우익의 일본국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그 재판이 전승국에 의한 복수극 내지는 지배 권력의 각본에 의한 익살극이었다는 평가가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수백 건에 이르는 도쿄재판 관련 기사나 평론의 톤은 어떠한 것이었으며, 그 검열 사례 역시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었는지에 대한 검토는, 일본과 점령당국의 과거사 인식 및 그 착종과 관련해, 또한 아시아의 구식민지의 입장과 관련해서도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과제에서는 도쿄재판과 천황면책을 둘러싼 점령기문학―특히 에세이에 주목해, 전쟁 처리에 대한 패전국 일본인들의 동시대 반응을 재구성해보고, 검열을 비롯한 점령군의 점령정책이 실제로 일본인들의 전후의식과 전쟁책임에 어떠한 변수로 작용하였을지 고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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