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가 풍수?지리학과 미술사 등에 편중된 현상에서 벗어나 국가의례의 관점에서 조선초기 왕릉제사의 제도적 마련과 의식 정비, 종묘와의 차별성, 그리고 능행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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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Korean
왕릉 ; 건원릉 ; 흉례 ; 길례 ; 四時祭 ; 拜陵儀 ; 국조오례의 ; 俗祭 ; 종묘 ; 문소전 ; 陵幸 ; 講武 ; 大閱 ; Royal Mausoleums ; sacrificial rite ; national rite ; Chongmyo ; K?nw?ll?ng ; military power ; KukchoOrye?i ; four-seasons' ; ancestral rites
380
KCI등재
학술저널
115-14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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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가 풍수?지리학과 미술사 등에 편중된 현상에서 벗어나 국가의례의 관점에서 조선초기 왕릉제사의 제도적 마련과 의식 정비, 종묘와의 차별성, 그리고 능행의 정치...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가 풍수?지리학과 미술사 등에 편중된 현상에서 벗어나 국가의례의 관점에서 조선초기 왕릉제사의 제도적 마련과 의식 정비, 종묘와의 차별성, 그리고 능행의 정치사적 의미 등을 천착함으로써 왕릉의 역사적 위치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왕릉 제사는 태조 즉위년 추존 4대왕(비)과 신의왕후의 제릉이 조성된 후 陵直과 守護軍이 설정되고, 四孟月?朔望 節 등의 제사가 정해지면서 시작되었다. 능제는 태종 초반 신의왕후 한씨의 제릉에 친제가 거행되면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특히 동왕 8년 태조의 사망으로 健元陵이 조성되어 흉례가 시행되고, 2년 후 3년상이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제사의 시행 및 의식의 정비가 모색되었다. 왕릉 주변의 禁止설정, 능제의 재정 확보, 健元陵親祭儀와 攝行儀의 제정 등이 그 실례이다. 이후 세종즉위년에 정종, 동왕 2년에 태종비 원경왕후, 동왕 4년 태종이 잇달아 사망함으로써 후릉과 헌릉이 각각 조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흉례와 관련된 제반 의식들이 재검토되었고, 제사와 관련된 여러 세부사항들과 拜陵儀가 수정?보완되었다. 그 내용은 이후 부분적 수정을 거쳐 국조오례의」의 길례조와 흉례조에 수록되었다.
왕릉에서 시행된 제시는 사맹월의 시제와 삭망, 속절(정조,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 등 다양한데, 당시 종묘 및 원묘인 문소전에서 시행된 것과 동일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고려 이래의 전통으로 四時祭가 능제에서 배제된 중국사의 경험과 달랐다. 그런데 조선의 능제는 국가 祀典에 大祀로 편입된 고려시대와 달리 俗祭라는 별도의 체계속에 포함시킴으로써 국가의 대사인 종묘와 구분되었다. 아울러 능제를 흉례의 체계에 附加시킨 중국과 달리 왕릉 관련 의식을 흉례와 길례로 각각 구분하여 편입시키는 독자성을 보였다.
왕릉의 제사 시기가 종묘 및 원묘와 동일하다는 사실은 왕의 친행이 종묘보다는 왕릉에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태조~성종의 102년간 종묘의 국왕친제가 41회에 불과한 반면 왕릉에는 170회에 걸쳐 이루어졌고, 문소전에서는 85년간 99회의 친제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현상으로 원묘인 문소전의 폐지 및 왕릉에서의 사시제 폐지를 주장하는 여론은 조선전기 내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결국 임진왜란 과정에서 원묘인 문소전은 파괴되었지만 복구되지 못하였고, 왕릉의 사시제는 인조대에 이르러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왕릉제사는 속절제(납일 제외)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조선시대 제사에 왕이 참여한 사례는 예상외로 많지 않다. 대표적인 제사대상인 종묘의 경우에도 대략 2~3년에 한번씩 왕의 친행이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반면에 왕릉의 친제는 매년 수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누대의 선왕이 모여 있는 혼전(종묘)보다는 육신이 안치된 개별 능에 인간적인 친근감을 느끼고, 능행중에 원찰에의 행행이 쉬웠으며, 능제가 속제이기 때문에 제사과정이 간략하디는 이유 등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장엄한 의장을 갖추어 진행된 능행은 일반 민에게 우리의 ‘왕’을 알리는 동시에 그들의 생활상을 왕이 직접 관찰하여 통치의 기반으로 삼았던 중요한 정치적 행위였다. 아울러 초기의 국왕들은 능행의 과정에서 講武, 大閱, 陣法등 군사훈련을 상시적으로 시행함으로써 그들의 군사통수권을 과시하는 정치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and process of rites about sacrificial rites related Royal Mausoleums in early Joseon Dynasty, and to conclude, to review the position of Royal Mausoleums in the whole National Rites System. The sacrificial r...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and process of rites about sacrificial rites related Royal Mausoleums in early Joseon Dynasty, and to conclude, to review the position of Royal Mausoleums in the whole National Rites System.
The sacrificial rites related Royal Mausoleums stared from building Royal Mausoleums of 8 persons-ancestors since King T"aejo"s great-great-grandparents, in 1392, founding Joseon Dynasty. In 1408, King T"aejo had died and his K?nw?nn?ng(建元陵) was builted in Yangju, Gyeonggi-do. Since then, after kings of many generations died, each of Royal Mausoleums was builted solemnlly. In the process of this, sacrificial rituals modified and supplemented, especially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1418~1450). After all, the sacrificial rites related Royal Mausoleums was settled in KukchoOrye?i(國朝五禮儀, Five State Rites) compiled during the reign of King S?ngjong.
In process of Institutionalization of sacrificial rituals, the argument between king and vassals about four-seasons" ancestral rites was properly or not was occurred. That was because the memorial times of Royal Mausoleums overlaped Chongmyo"s and more important Chongmyo"s ancestral rites was neglected. But four-seasons" ancestral rites of Royal Mausoleums was continued until 17th century.
Sacrificial rites related Royal Mausoleums as royal personal rites had simple processes compared to sacrificial rites of Chongmyo, upper-graded formal ancestral rites, under National Rites system. Justifying to served his parents with devotion, the kings in early Joseon Dynasty went to Royal Mausoleums 2-3 times annually. During coming and going, the show off his presence as king in power to his subjects through magnificent guard of honor. On the one hand, he met his subjects directly and acceded to various petition. Above all things, The king in early Joseon Dynasty emphasized his military power through military training, namely, hunting, disposition of troops, and so on.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장경희, "조선후기 山陵都監의 匠人 연구" 한국역사민속학회 (25) : 119-2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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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형주, "조선전기 文昭殿의 성립과 그 운영" 한국역사민속학회 (24) : 69-102, 2007
4 권용옥, "조선왕조 왕릉 문인석상의 복식에 형태에 관한 연구" 4 :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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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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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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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9-12-31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rklife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lklife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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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3 | 0.63 | 0.65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8 | 0.66 | 1.486 | 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