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조선초기 왕릉제사의 정비와 운영 = A Study of sacrificial rites related Royal Mausoleums early Joseon Dynasty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0436909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가 풍수?지리학과 미술사 등에 편중된 현상에서 벗어나 국가의례의 관점에서 조선초기 왕릉제사의 제도적 마련과 의식 정비, 종묘와의 차별성, 그리고 능행의 정치...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가 풍수?지리학과 미술사 등에 편중된 현상에서 벗어나 국가의례의 관점에서 조선초기 왕릉제사의 제도적 마련과 의식 정비, 종묘와의 차별성, 그리고 능행의 정치사적 의미 등을 천착함으로써 왕릉의 역사적 위치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왕릉 제사는 태조 즉위년 추존 4대왕(비)과 신의왕후의 제릉이 조성된 후 陵直과 守護軍이 설정되고, 四孟月?朔望 節 등의 제사가 정해지면서 시작되었다. 능제는 태종 초반 신의왕후 한씨의 제릉에 친제가 거행되면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특히 동왕 8년 태조의 사망으로 健元陵이 조성되어 흉례가 시행되고, 2년 후 3년상이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제사의 시행 및 의식의 정비가 모색되었다. 왕릉 주변의 禁止설정, 능제의 재정 확보, 健元陵親祭儀와 攝行儀의 제정 등이 그 실례이다. 이후 세종즉위년에 정종, 동왕 2년에 태종비 원경왕후, 동왕 4년 태종이 잇달아 사망함으로써 후릉과 헌릉이 각각 조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흉례와 관련된 제반 의식들이 재검토되었고, 제사와 관련된 여러 세부사항들과 拜陵儀가 수정?보완되었다. 그 내용은 이후 부분적 수정을 거쳐 국조오례의」의 길례조와 흉례조에 수록되었다.
      왕릉에서 시행된 제시는 사맹월의 시제와 삭망, 속절(정조,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 등 다양한데, 당시 종묘 및 원묘인 문소전에서 시행된 것과 동일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고려 이래의 전통으로 四時祭가 능제에서 배제된 중국사의 경험과 달랐다. 그런데 조선의 능제는 국가 祀典에 大祀로 편입된 고려시대와 달리 俗祭라는 별도의 체계속에 포함시킴으로써 국가의 대사인 종묘와 구분되었다. 아울러 능제를 흉례의 체계에 附加시킨 중국과 달리 왕릉 관련 의식을 흉례와 길례로 각각 구분하여 편입시키는 독자성을 보였다.
      왕릉의 제사 시기가 종묘 및 원묘와 동일하다는 사실은 왕의 친행이 종묘보다는 왕릉에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태조~성종의 102년간 종묘의 국왕친제가 41회에 불과한 반면 왕릉에는 170회에 걸쳐 이루어졌고, 문소전에서는 85년간 99회의 친제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현상으로 원묘인 문소전의 폐지 및 왕릉에서의 사시제 폐지를 주장하는 여론은 조선전기 내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결국 임진왜란 과정에서 원묘인 문소전은 파괴되었지만 복구되지 못하였고, 왕릉의 사시제는 인조대에 이르러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왕릉제사는 속절제(납일 제외)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조선시대 제사에 왕이 참여한 사례는 예상외로 많지 않다. 대표적인 제사대상인 종묘의 경우에도 대략 2~3년에 한번씩 왕의 친행이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반면에 왕릉의 친제는 매년 수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누대의 선왕이 모여 있는 혼전(종묘)보다는 육신이 안치된 개별 능에 인간적인 친근감을 느끼고, 능행중에 원찰에의 행행이 쉬웠으며, 능제가 속제이기 때문에 제사과정이 간략하디는 이유 등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장엄한 의장을 갖추어 진행된 능행은 일반 민에게 우리의 ‘왕’을 알리는 동시에 그들의 생활상을 왕이 직접 관찰하여 통치의 기반으로 삼았던 중요한 정치적 행위였다. 아울러 초기의 국왕들은 능행의 과정에서 講武, 大閱, 陣法등 군사훈련을 상시적으로 시행함으로써 그들의 군사통수권을 과시하는 정치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and process of rites about sacrificial rites related Royal Mausoleums in early Joseon Dynasty, and to conclude, to review the position of Royal Mausoleums in the whole National Rites System. The sacrificial r...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and process of rites about sacrificial rites related Royal Mausoleums in early Joseon Dynasty, and to conclude, to review the position of Royal Mausoleums in the whole National Rites System.
      The sacrificial rites related Royal Mausoleums stared from building Royal Mausoleums of 8 persons-ancestors since King T"aejo"s great-great-grandparents, in 1392, founding Joseon Dynasty. In 1408, King T"aejo had died and his K?nw?nn?ng(建元陵) was builted in Yangju, Gyeonggi-do. Since then, after kings of many generations died, each of Royal Mausoleums was builted solemnlly. In the process of this, sacrificial rituals modified and supplemented, especially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1418~1450). After all, the sacrificial rites related Royal Mausoleums was settled in KukchoOrye?i(國朝五禮儀, Five State Rites) compiled during the reign of King S?ngjong.
      In process of Institutionalization of sacrificial rituals, the argument between king and vassals about four-seasons" ancestral rites was properly or not was occurred. That was because the memorial times of Royal Mausoleums overlaped Chongmyo"s and more important Chongmyo"s ancestral rites was neglected. But four-seasons" ancestral rites of Royal Mausoleums was continued until 17th century.
      Sacrificial rites related Royal Mausoleums as royal personal rites had simple processes compared to sacrificial rites of Chongmyo, upper-graded formal ancestral rites, under National Rites system. Justifying to served his parents with devotion, the kings in early Joseon Dynasty went to Royal Mausoleums 2-3 times annually. During coming and going, the show off his presence as king in power to his subjects through magnificent guard of honor. On the one hand, he met his subjects directly and acceded to various petition. Above all things, The king in early Joseon Dynasty emphasized his military power through military training, namely, hunting, disposition of troops, and so on.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요약
      • 1. 머리말
      • 2. 왕릉제사의 성립과정
      • 3. 능제의 의례적 정비
      • 4. 능행의 의례·정치적 성격
      • 국문요약
      • 1. 머리말
      • 2. 왕릉제사의 성립과정
      • 3. 능제의 의례적 정비
      • 4. 능행의 의례·정치적 성격
      • 5. 맺음말
      • 참고문헌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장경희, "조선후기 山陵都監의 匠人 연구" 한국역사민속학회 (25) : 119-202, 2007

      2 한형주, "조선초기 국가제례 연구" 일조각 2002

      3 한형주, "조선전기 文昭殿의 성립과 그 운영" 한국역사민속학회 (24) : 69-102, 2007

      4 권용옥, "조선왕조 왕릉 문인석상의 복식에 형태에 관한 연구" 4 : 1981

      5 이범직, "조선시대 왕릉의 조성 및 그 문헌" 한국사상문화학회 (36) : 233-266, 2007

      6 장은미, "조선시대 왕릉의 공간적 분포특성(위성영상분석과 지질?지형분석의 방법으로)" 한국공간정보학회 14 (14): 285-297, 2006

      7 한영우,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효영출판사 1998

      8 한우근, "유교정치와 불교" 일조각 1993

      9 신병주, "문화 : 왕릉으로 본 행복한 왕, 불행한 왕" 12 : 2007

      10 "高麗史"

      1 장경희, "조선후기 山陵都監의 匠人 연구" 한국역사민속학회 (25) : 119-202, 2007

      2 한형주, "조선초기 국가제례 연구" 일조각 2002

      3 한형주, "조선전기 文昭殿의 성립과 그 운영" 한국역사민속학회 (24) : 69-102, 2007

      4 권용옥, "조선왕조 왕릉 문인석상의 복식에 형태에 관한 연구" 4 : 1981

      5 이범직, "조선시대 왕릉의 조성 및 그 문헌" 한국사상문화학회 (36) : 233-266, 2007

      6 장은미, "조선시대 왕릉의 공간적 분포특성(위성영상분석과 지질?지형분석의 방법으로)" 한국공간정보학회 14 (14): 285-297, 2006

      7 한영우,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효영출판사 1998

      8 한우근, "유교정치와 불교" 일조각 1993

      9 신병주, "문화 : 왕릉으로 본 행복한 왕, 불행한 왕" 12 : 2007

      10 "高麗史"

      11 金永彬, "風水思想에서 본 朝鮮王陵園墓 造成技法에 關한 硏究(上)(下)" 4 : 1988

      12 "開元禮"

      13 "舊唐書"

      14 "經國大典"

      15 鄭崇敎, "正祖代 乙卯園幸의 재정운영과 整理穀 마련" 82 : 1996

      16 金元龍, "李朝 王陵의 石人彫刻-李朝 彫刻樣式의 變遷" 2 (2): 1959

      17 "朝鮮王朝實錄(太祖~仁祖)"

      18 김은선, "朝鮮後期 王陵 石人 彫刻 硏究" 한국미술사학회 (249) : 113-139, 2006

      19 金九鎭, "朝鮮 初期 王陵制度-世宗大王 舊英陵 遺蹟을 中心으로" 25 : 1979

      20 "春官通考"

      21 "明集禮"

      22 "明會典"

      23 "新唐書"

      24 "文獻通考"

      25 "宋史"

      26 "國朝五禮儀"

      27 "健元陵誌"

      28 김문식, "18세기 후반 정조 능행의 의의" 23 : 1997

      29 김문식, "1779년 정조의 능행과 남한산성" 한국실학학회 (8) : 111-152, 2004

      30 이희중, "17, 8세기 서울 주변 왕릉의 축조, 관리 및 천릉 논의" 17 : 2001

      31 한형주, "15세기 祀典體制의 성립과 그 추이―『國朝五禮儀』편찬과정을 중심으로 ―" 역사교육연구회 (89) : 127-161, 2004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12-3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rklife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lklife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3 0.63 0.6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66 1.486 0.06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