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연구서들은 혁명전 러시아 여성노동자들의 ‘후진성’을 주장한다. 러시아 여성은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 고립되어 살았으며 따라서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혁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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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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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연구서들은 혁명전 러시아 여성노동자들의 ‘후진성’을 주장한다. 러시아 여성은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 고립되어 살았으며 따라서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혁명과정 전체에서 여성은 수동적인 역할만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연구는 전통적인 가족의 가부장적 구조가 여성의 공장노동으로 인해 약화되었다는 관점을 취한다. 그 이유는 노동하는 여성이 집안의 가장의 통제 하에 있지 않은 일자리에서 작업하게 됨에 따라 가장으로부터 좀더 독립적이 되며 대가족으로부터 벗어나는 경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동원으로 인한 남편의 부재는 여성의 상대적인 독립성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여성회고록에서 보여지는 상당히 자유로와진 성도덕, 혼외자녀의 증대, 혹은 배후자 선택에서 여성의 권한 증대 등은 그러한 방향을 나타내는 지표들이다. 또한 기혼여성 중에서도 남편의 폭력을 더 이상 참지 않은 그런 경우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들의 활동이 사회적 영역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정치의식에서 '후진적' 모습을 보여준 이유는 이들의 구체적 삶의 조건들 속에서 찾아져야 한다. 여성들은 정당이나 노동조합 혹은 선술집에서 정치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기 보다, 가사를 전담하는 주부 혹은 딸로서 우물가, 빨래터 또는 시장과 같은 장소에서 비공식적인 의사소통 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공간에서 이들은 비록 전쟁과 혁명, 혹은 짜르지배와 같은 정치, 사회적 문제를 직접 논하지는 않았지만 일생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여성들은 이웃과의 연계하에서 집주인의 집세인상에 대한 요구나 국가의 세금징수에 적극적인 저항을 펼쳤다.
바로 이 일상생활의 영역이 이들에게는 정치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였다. 따라서 이들의 (정치 및 사회)의식은 이러한 일상생활에 대한 분석과 그곳에서 형성된 의사소통 망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야 비로소 포착될 수 있다. 여성노동자들이 남긴 많은 회고록들은 바로 이러한 여성들 상호간의 의사형성과정 그리고 그들의 짜르정부에 대한 혹은 남성에 대한 의식이 구체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은 정치의 영역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지만 정치영역의 외부에서 이웃 혹은 공장내의 여성들과 연대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여성의 연대적 행동은 여성적 의식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에 보다 직접적으로 요구되는 사안에 의해 촉발된다. 그러나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조직적 운동으로 발전하기는 힘들다.
1917년 러시아 페테스부르크 여성들이 2월혁명을 일으킨 것은 바로 식량과 연료와 같은 생활필수품의 부족때문이었다. 길거리에 나선 여성들은 어떤 정치적 목표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배급제가 실시되었지만 생필품은 제때 조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긴 줄을 형성한 사람은 주로 여성들이었고 줄을 서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불만을 표현하였다. 바로 여기에 '사회적 폭탄'이 장전이 되었고 1917년 2월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빵을 달라고 외치는 여성들이 시위대를 형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