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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의 冊封儀禮와 그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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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글은 신라의 책봉의례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기능을 대내외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책봉 전후에 행해진 사신의 왕래와 그 의례에 대해 살펴보았다. 혜공왕의 예를 통해 신라는 책봉을 전후하여 당에 고애사와 사은사를, 당은 조제 겸 책명사를 보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효성왕대의 당 사신인 형숙을 통해서 당 황제와 신라 왕이 책봉을 授受하는 과정에서 빈례를 포함한 다양한 의례가 행해졌다고 하였다. 이와같은 책봉을 전후한 시기에 행해진 각종 의례는 당시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책봉은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이념으로, 당 황제는 신라 왕에게 책문․관고․정절․예물 등을 보내 당이 천자국(황제국)이며 신라는 제후국(번국)임을 明示하였다. 특히 신라 하대에는 예물을 왕 이하에게도 내렸다. 하지만 신라왕은 당의 책봉을 당연하게 여기고, 책봉을 받은 이후 사은사를 보내지 않기도 하였다. 신라 역시 책봉의 주체국으로 문무왕은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책봉하였으며, 안승이 문무왕에게 보낸 表는 신라가 당에 보낸 乞罪表와 그 형식이 같았고 애장왕은 탐라의 조공을 받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신라왕 역시 蕃國을 둠으로써 책봉의 이념을 실현하려고 하였다.
      한편 애장왕은 왕 6년에 당의 책봉을 받았고 왕 9년에는 아버지인 소성왕의 책봉조서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애장왕은 당의 책봉에 앞서 왕비와 왕모를 책봉하고 당의 고애사 겸 책명사를 홀대하였다. 애장왕은 초기부터 대일본외교를 통해 친당 외교 일변도에서 벗어났고 애장왕 5년 대열을 통해 군사권을 장악하면서 왕 6년 親政에 앞서 애장왕 중심으로 권력을 집중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애장왕은 왕비와 왕모를 책봉하였고 당의 고애사 겸 책명사를 홀대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후 당은 왕을 비롯하여 왕모 등을 책봉하였지만 애장왕은 당을 견제하였는데, 이것은 일본과의 우호관계 지속이라든가 개혁정치에서 알 수 있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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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신라의 책봉의례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기능을 대내외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책봉 전후에 행해진 사신의 왕래와 그 의례에 대해 살펴보았다. 혜공왕의 예를 통해 신...

      본 글은 신라의 책봉의례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기능을 대내외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책봉 전후에 행해진 사신의 왕래와 그 의례에 대해 살펴보았다. 혜공왕의 예를 통해 신라는 책봉을 전후하여 당에 고애사와 사은사를, 당은 조제 겸 책명사를 보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효성왕대의 당 사신인 형숙을 통해서 당 황제와 신라 왕이 책봉을 授受하는 과정에서 빈례를 포함한 다양한 의례가 행해졌다고 하였다. 이와같은 책봉을 전후한 시기에 행해진 각종 의례는 당시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책봉은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이념으로, 당 황제는 신라 왕에게 책문․관고․정절․예물 등을 보내 당이 천자국(황제국)이며 신라는 제후국(번국)임을 明示하였다. 특히 신라 하대에는 예물을 왕 이하에게도 내렸다. 하지만 신라왕은 당의 책봉을 당연하게 여기고, 책봉을 받은 이후 사은사를 보내지 않기도 하였다. 신라 역시 책봉의 주체국으로 문무왕은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책봉하였으며, 안승이 문무왕에게 보낸 表는 신라가 당에 보낸 乞罪表와 그 형식이 같았고 애장왕은 탐라의 조공을 받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신라왕 역시 蕃國을 둠으로써 책봉의 이념을 실현하려고 하였다.
      한편 애장왕은 왕 6년에 당의 책봉을 받았고 왕 9년에는 아버지인 소성왕의 책봉조서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애장왕은 당의 책봉에 앞서 왕비와 왕모를 책봉하고 당의 고애사 겸 책명사를 홀대하였다. 애장왕은 초기부터 대일본외교를 통해 친당 외교 일변도에서 벗어났고 애장왕 5년 대열을 통해 군사권을 장악하면서 왕 6년 親政에 앞서 애장왕 중심으로 권력을 집중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애장왕은 왕비와 왕모를 책봉하였고 당의 고애사 겸 책명사를 홀대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후 당은 왕을 비롯하여 왕모 등을 책봉하였지만 애장왕은 당을 견제하였는데, 이것은 일본과의 우호관계 지속이라든가 개혁정치에서 알 수 있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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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thesis is studying the political function that Chaekbong ceremoy had internally and externally. First of all, it is studies about the coming and going of envoys and its ceremony. Seeing the example of King Hyegong, Silla sent Goaesa and Saunsa to Tang around the time of Chaekbong, while Tang sent Chaekmyungsa concurrent Joje. And seeing the example of Tang’s envoy, Hyungsook in king Hyosung period, various ceremonies including Binrye were performed in the course of rendering and receiving Chaekbong between Silla king and Tang emperor. Such ceremonies performed around Chaekbong had political character, and the ceremonies had inseparable relation with Chaekbong.
      Chaekbong is an idea about Chinese centered order to world, so Tang emperor sent Chaekmun, Gwango, Jeongjeol, Yemul etc. to Silla specifying that Tang is Chenjaguk(emperor country) and Silla is feudal country(Beonguk). But Silla’s kings would take Tang Chaekbong for granted, not sending Saunsa after taking it. And Silla also became a owner of Chaekbong that king Munmu did a Chaekbong to king Bodeokguk, so Pyo sent by Ansung had the same form as Pyo sent from Silla toTang. King Aejang would take Jogong from Tamla. As these showed, Silla’s kings also tried to realize the idea of Chaekbong by placing 번국.
      In the meanwhile, On his 6th king year, king Aejang took Chaekbong from Tang, and On his 9th king year, he asked for Chaekbongjoseo of his father, king Soseong. However king Aejang did chaekbong to the queen and king’s mother before Chaekbong from Tang and treated Chaekmyeongsa concurrent Goaesa poorly. King Aesjang broke out of pro-Tang foreign policy taking good foreign policy with Japan and seiged military power through his 5 years filing. Seen from this, king Aejang focused ruling power to king himself before his own ruling in his 6th king year. Begining his own ruling on this base, king Aejang did chaekbong to queen and king’s mother and could treat poorly chaekmyeongsa concurrent Goaesa from Tang, and Tang’s chaekbong rendered later was only a formal thing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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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thesis is studying the political function that Chaekbong ceremoy had internally and externally. First of all, it is studies about the coming and going of envoys and its ceremony. Seeing the example of King Hyegong, Silla sent Goaesa and Saunsa to...

      This thesis is studying the political function that Chaekbong ceremoy had internally and externally. First of all, it is studies about the coming and going of envoys and its ceremony. Seeing the example of King Hyegong, Silla sent Goaesa and Saunsa to Tang around the time of Chaekbong, while Tang sent Chaekmyungsa concurrent Joje. And seeing the example of Tang’s envoy, Hyungsook in king Hyosung period, various ceremonies including Binrye were performed in the course of rendering and receiving Chaekbong between Silla king and Tang emperor. Such ceremonies performed around Chaekbong had political character, and the ceremonies had inseparable relation with Chaekbong.
      Chaekbong is an idea about Chinese centered order to world, so Tang emperor sent Chaekmun, Gwango, Jeongjeol, Yemul etc. to Silla specifying that Tang is Chenjaguk(emperor country) and Silla is feudal country(Beonguk). But Silla’s kings would take Tang Chaekbong for granted, not sending Saunsa after taking it. And Silla also became a owner of Chaekbong that king Munmu did a Chaekbong to king Bodeokguk, so Pyo sent by Ansung had the same form as Pyo sent from Silla toTang. King Aejang would take Jogong from Tamla. As these showed, Silla’s kings also tried to realize the idea of Chaekbong by placing 번국.
      In the meanwhile, On his 6th king year, king Aejang took Chaekbong from Tang, and On his 9th king year, he asked for Chaekbongjoseo of his father, king Soseong. However king Aejang did chaekbong to the queen and king’s mother before Chaekbong from Tang and treated Chaekmyeongsa concurrent Goaesa poorly. King Aesjang broke out of pro-Tang foreign policy taking good foreign policy with Japan and seiged military power through his 5 years filing. Seen from this, king Aejang focused ruling power to king himself before his own ruling in his 6th king year. Begining his own ruling on this base, king Aejang did chaekbong to queen and king’s mother and could treat poorly chaekmyeongsa concurrent Goaesa from Tang, and Tang’s chaekbong rendered later was only a formal thing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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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
      • 머리말
      • Ⅰ. 冊封 전후 신라와 당의 사신 왕래와 儀禮
      • Ⅱ. 책봉의 이념과 실제
      • Ⅲ. 애장왕대 冊封儀禮의 정치적 기능
      • 요약
      • 머리말
      • Ⅰ. 冊封 전후 신라와 당의 사신 왕래와 儀禮
      • Ⅱ. 책봉의 이념과 실제
      • Ⅲ. 애장왕대 冊封儀禮의 정치적 기능
      •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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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최병헌,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81

      2 채미하, "한국 고대의 宮中儀禮 - 卽位禮와 朝賀禮를 중심으로 -" 한국사학회 (112) : 1-40, 2013

      3 박남수, "통일신라의 대일교역과 애장왕대 ‘交聘結好’" 한국사학회 (88) : 411-472, 2007

      4 "책부원귀"

      5 "전당문"

      6 채미하, "신라하대의 오묘제" 25 : 2001

      7 채미하, "신라의 오례와 왕권" 혜안 2015

      8 채미하, "신라의 軍禮 수용과 王權" 한국사연구회 (149) : 107-139, 2010

      9 채미하, "신라의 賓禮 -당 使臣을 중심으로-" 고려사학회 (43) : 37-75, 2011

      10 채미하, "신라의 嘉禮 수용과 運用" 한국고대사탐구학회 (18) : 81-109, 2014

      1 최병헌,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81

      2 채미하, "한국 고대의 宮中儀禮 - 卽位禮와 朝賀禮를 중심으로 -" 한국사학회 (112) : 1-40, 2013

      3 박남수, "통일신라의 대일교역과 애장왕대 ‘交聘結好’" 한국사학회 (88) : 411-472, 2007

      4 "책부원귀"

      5 "전당문"

      6 채미하, "신라하대의 오묘제" 25 : 2001

      7 채미하, "신라의 오례와 왕권" 혜안 2015

      8 채미하, "신라의 軍禮 수용과 王權" 한국사연구회 (149) : 107-139, 2010

      9 채미하, "신라의 賓禮 -당 使臣을 중심으로-" 고려사학회 (43) : 37-75, 2011

      10 채미하, "신라의 嘉禮 수용과 運用" 한국고대사탐구학회 (18) : 81-109, 2014

      11 채미하, "신라 중대 오례와 왕권-오례 수용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사학회 (27) : 127-165, 2006

      12 채미하, "신라 국가제사와 왕권" 혜안 2007

      13 양정석, "신라 공식령의 왕명문서양식 고찰" 15 : 175-177, 1999

      14 최희준, "신라 中代의 唐 사신 영접 절차와 운용" 한국사연구회 (153) : 127-158, 2011

      15 "신당서"

      16 "삼국유사"

      17 "삼국사기"

      18 박초롱, "문무왕대 고구려·가야의 조상제사 재개 조치와 그 의미- 중국 二王後 제도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86) : 113-148, 2017

      19 김한규, "동아시아 역사의환류" 지식산업사 2000

      20 "당개원례"

      21 김종복, "남북국(南北國)의 책봉호(冊封號)에 대한 기초적 검토" 한국역사연구회 (61) : 61-85, 2006

      22 "구당서"

      23 권덕영, "고대한중외교사-견당사연구-" 일조각 1997

      24 金子修一, "隋唐の國際秩序と東アジア" 名著刊行會 2001

      25 황위주, "渤海 外交文書의 實狀과 그 文體的 特徵"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6) : 197-248, 2007

      26 최홍조, "新羅 哀莊王代의 政治變動과 金彦昇" 한국고대사학회 34 : 329-372, 2004

      27 최홍조, "新羅 哀莊王代의 政治改革과 그 性格" 한국고대사학회 (54) : 301-366, 2009

      28 中村裕一, "序說王言の種類と制勅字" 汲古書 院 2003

      29 金羨珉, "唐代의 中央-地方 通信體系와 銅魚符" 중국사학회 25 : 87-118, 2003

      30 石見淸裕, "唐の北方問題と國際秩序" 汲古書院 1998

      31 胡戟撰, "中華文化通志-禮儀志" 上海人民出版社 1998

      32 陳戍國, "中國禮制史-隋唐五代卷" 湖南敎育出版社 1988

      33 박남수, "8세기 新羅의 동아시아 外交와 迎賓 체계" 신라사학회 (21) : 139-20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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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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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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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1 1.11 1.0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3 1.05 2.153 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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