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지역 토착세력은 서산류씨를 제외하고는 크게 번성하지 못하였다. 서산을 대표하는 가문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들어온 성씨들이었다. 입향 시기는 고려말에서부터 조선후기까지 다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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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재) 한국국학진흥원)
2024
Korean
서산 ; 경주김씨 ; 호산록 ; 송곡서원 ; 김적 ; 성암서원 ; 김홍욱 ; Seosan ; Gyeongju Kimseo ; Hosanrok ; Songok Seowon ; Kim Jik ; Seongam Seowon ; Kim Hongwook
KCI등재
학술저널
85-119(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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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서산지역 토착세력은 서산류씨를 제외하고는 크게 번성하지 못하였다. 서산을 대표하는 가문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들어온 성씨들이었다. 입향 시기는 고려말에서부터 조선후기까지 다양하...
서산지역 토착세력은 서산류씨를 제외하고는 크게 번성하지 못하였다. 서산을 대표하는 가문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들어온 성씨들이었다. 입향 시기는 고려말에서부터 조선후기까지 다양하였다. 경주김씨는 안주목사를 역임한 김연⾦堧이 명종대 입향한 이래로 김호윤이 서산 음암면 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세거하였다. 이들은 강력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임란 의병과 대민 구제 활동을 펼치며 재지적 기반을 강화했다. 특히 김적-김홍욱 부자대에 사회적·정치적 기반을 확충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왕실과의 혼인까지 이어지면서 18세기 이래로 대표적 벌열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서산 경주김씨의 현조인 김홍욱의 신원과 추증이 이어지던 시기에 그를 제향하는 성암서원이 건립되었다. 이때 서산류씨 류숙을 함께 제향하였는데, 서산의 토성으로서 그의 후손들이 서산에 광범하게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산지역 사림들은 서원 건립과 함께 사액을 청원하여 1721년(경종 1) 사액을 받게 되었다. 즉 성암서원 건립과 사액은 경주김씨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향촌 내 후손들의 위상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성암서원은 조령에 의해 훼철과 복설을 반복하기도 했다. 한편 김홍욱의 부친 김적 역시 사림들의 공의에 의해 서산 송곡사에 1797년(정조 21) 제향되었다. 이 역시 서산지역에 형성된 후손들의 가문적 기반과 경주김씨의 중앙에서의 권력이 고려된 것이었다. 송곡사의 입장에서는 김적의 추향으로 서산지역 토성이 주도하던 사우의 운영을 탈피하고, 척족가문의 가담으로 위상을 더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indigenous forces in the area did not flourish much, except for the Xishan family. Most of the families representing Seosan were from outside the region. The time of their arrival varied from the end of Goryeo to the late Joseon Dynasty. The Gyeon...
The indigenous forces in the area did not flourish much, except for the Xishan family. Most of the families representing Seosan were from outside the region. The time of their arrival varied from the end of Goryeo to the late Joseon Dynasty. The Gyeongju Kims were established when Kim Hoyun settled in the Eumam-myeon area of Seosan after Kim Anju, who served as a minister, entered Myeongjongdae. They had a strong economic base. Based on this, they strengthened their financial foundation by carrying out medical treatment and relief activities for the people of Imran. In particular, they expanded their social and political foundation in the Kim Jik-Gim Hongwook father-son generation, and based on this, they grew into a representative Beolyeol family since the 18th century, leading to marriage with the royal family.
In particular, Seongam Seowon was built to incense Kim Hongwook, the current ancestor of Seosan Gyeongju Kim, at a time when his identity and death were in doubt. At this time, Ryu Sook of Ryu of Seosan was also incensed, because as the Saturn of Seosan, his descendants were extensively based in Seosan. In other words, the construction of Seongam Seowon and the granting of the grant simultaneously reflected the political influence of the Gyeongju Kim clan and the status of their descendants in the local village. However, Seongam Seowon was repeatedly disrupted and dismissed by the royal decree. On the other hand, Kim Hong-wook’s father, Kim Chul, was also enshrined in Songgoksa Temple in Seosan in 1797 (Jeongjo 21) by the justice of the people. This was also in consideration of the descendants’ family base in Seosan and the central power of Gyeongju Kim. From Songgoksa’s point of view, Kim’s dedication provided an opportunity to break away from the operation of the Saewa, which was led by Saturn in Seosan, and to further increase its status with the participation of the Chuck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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