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赴는 조선시대에 시행된 문과를 비롯한 각종 과거에서 초시를 건너뛰고 회시 혹은 전시에 응시하는 것을 말한다. 직부는 원래 과거시험에 특혜를 주는 제도로 학교 교육의 장려책으로 마...
直赴는 조선시대에 시행된 문과를 비롯한 각종 과거에서 초시를 건너뛰고 회시 혹은 전시에 응시하는 것을 말한다. 직부는 원래 과거시험에 특혜를 주는 제도로 학교 교육의 장려책으로 마련된 것이나, 조선시대 직부제는 교육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慰撫의 성격을 함께 갖고 있었다. 『경국대전』에는 성균관 유생에게 봄과 가을 두 번의 시험을 시행하여 합산한 후 우수한 사람에게 회시직부를 시행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실제 시행된 문과 직부제는 국왕의 명으로 시행된 한 번의 유생과시로 직부의 특전이 주어졌으며, 그 특전은 회시직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시직부로 확대되었다.
직부의 특전을 부여하는 유생과시는 크게 성균관 유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특정 유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성균관 유생을 대상으로 하는 유생과시는 1월 7일에 시행되는 인일제, 3월 3일에 시행되는 삼일제, 7월 7일에 시행되는 칠일제, 9월 9일에 시행되는 구일제 등의 절일제와 전강으로 조선 후기에 와서 정례적으로 직부의 특전이 주어졌다. 삼일제․구일제 우등자에게는 대개 법전의 내용과는 달리 전시직부가 주어졌다. 인일제․칠일제 우등자에게는 주로 회시직부가 부여되었다. 이외의 직부전시를 부여하는 유생과시는 황감제․전강․도기과 그리고 특정 유생을 대상으로 하는 위무의 성격이 짙은 시험이다.
조선 시대에 직부의 특전을 부여받은 유생은 7,700명이었다. 이 가운데 회시직부자는 5,567명(72.3%)이며, 전시직부자는 2,094명(27.2%)이다. 직부의 특전을 받은 7,700명 가운데 문과급제자는 2,344명으로 직부자의 약 30%이다. 전시직부자 2,094명 중 신병으로 사망하였거나 정치적 문제로 문과 방목에 이름이 오르지 못한 사람 22명을 제외하고 2,071명이 문과방목에 이름이 있다. 회시직부자 5,567명 중 문과 급제자는 4.9%에 해당되는 273명 정도이다.
직부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사람은 생원 263명(11.2%), 진사 407명(17.4%), 유학 1,172명(50%), 관직․관품 소유자가 494명(21.1%), 동몽․업유 등 기타 8명(0.3%)이다. 과시에 응시한 유생은 생원과 진사가 주류였으나, 19세기 들어 유학이 급증하여 전체적으로는 유학이 50%를 차지하고 있다. 과시에 응시한 관직․관품 소유자 494명 가운데 61%가 이미 생원 진사를 획득한 사람들로 과시 유시 당시에는 생원이나 진사라는 전력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직부 출신 문과 급제자의 거주지는 서울 거주자가 53,2%로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서울 거주자의 세기별 추이로 보면 17세기와 18세기에 점유율이 다소 둔화되는 감이 있다. 특히 18세기에는 서울 거주자가 49.8%로 가장 점유율이 낮다. 이것은 숙종 후반기부터 지방유생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영조는 성균관 유생만이 응시하는 절일제에서 조차 우등자를 서울유생과 지방유생을 따로 선발하였으며, 제술 과목도 서울유생은 표문으로, 지방유생은 부로 정하였다. 영조의 지방유생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서울 거주자의 점유율을 둔화시키는데 일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직부자들이 문과 급제 후 진출한 최고 관직을 보면, 당상관 1,164명(49.7%), 참상관 1,002명(42.7%) 그리고 참하관과 관직에 진출하지 못한 자들이 178명(7.6%)이다. 최고 관직 분포로 볼 때 직부자의 당상관 점유율이 문과 급제자의 평균 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어 직부 출신자들이 핵심 관료군에 속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