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가사회주의는 선거라는 대의민주주의의 합법적 절차와 과정을 거쳐 탄생한 통치체제였다. 나치가 일으킨 홀로코스트도 표면적으로는 단계별 과정을 밟은 주도면밀한 행정 절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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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Korean
아우슈비츠 ; Auschwitz ; Holocaust ; Testimony/Literature ; Muselmann ; Biopolitics ; Kingdom of the Blind ; Gray Area ; Banality of Evil ; Language ; Primo Levi ; Hannah Arendt ; Michel Foucault ; Giorgio Agamben ; 홀로코스트 ; 증언/문학 ; 무젤만 ; 생명정치 ; 장님의 왕국 ; 회색지대 ; 악의 상투성 ; 언어 ; 프리모 레비 ; 한나 아렌트 ; 미셀 푸코 ; 조르지오 아감벤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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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독일 국가사회주의는 선거라는 대의민주주의의 합법적 절차와 과정을 거쳐 탄생한 통치체제였다. 나치가 일으킨 홀로코스트도 표면적으로는 단계별 과정을 밟은 주도면밀한 행정 절차를 ...
독일 국가사회주의는 선거라는 대의민주주의의 합법적 절차와 과정을 거쳐 탄생한 통치체제였다. 나치가 일으킨 홀로코스트도 표면적으로는 단계별 과정을 밟은 주도면밀한 행정 절차를 거친 법적 집행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라는 현상 자체는 가깝게는 바이마르 공화국(Weimarer Republik, 1919-1933), 멀게는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독일제국 성립(1871) 이후 다져진 민주 헌정질서를 점진적이면서도 철저하게 파괴하고 유린한 결과였다. 아우슈비츠를 향해 깔린 '철로'는 1935년 9월에 공포된, 유대인을 ‘잡종’(Mischlinge)으로 정의하고 유대인 조부모(祖父母)를 기준으로 잡종의 인종적 서열 및 우열을 규정한 뉘른베르크 법으로 완성된바, 이 역시 홀로코스트를 초래한 수많은 ‘인프라’ 가운데 하나였다.
적잖은 논자들이 '아우슈비츠'에 대해 증언 불가능성을 논한 것은 나치가 근대 생명정치를 인종주의적으로 관철시킨 전대미문의 '합리주의적' 폭력과 '문명적' 야만 때문이었다. '아우슈비츠 이후는 시를 쓸 수 없다'는 말을 남긴 아도로노가 주목한 것도 바로 그같은 잔혹성과 야만이 빚어낸 문화의 황무지적 상황이었다. '증언 불가능'이 하나의 이론적 논제가 된 것도, 그리고 그런 논제가 쟁점으로 부각된 원인도 '아우슈비츠'의 현실이 (공상)과학적 상상력조차 능가했다는 데 있다. 예컨대 프리츠 랑(Fritz Lang)의 무성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lois, 1927)가 선구적으로 풍자한 노동자의 ‘지하세계’는 그 자체로 인간이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그로테스크한 산업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폭로하고 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관리와 착취의 대상으로 제시될 뿐이다.
게토에서의 소개(疏開)->열차 수송->도착과 ‘선발’->가스실 입장/수용소 입감-> 화장->‘원료’ 추출이라는 톱니바퀴들은 나치의 전문 관료와 조력자들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굴러갔다. 그 ‘살처분’의 양상은 공장식 도살장의 ‘동물처리’를 방불하거니와, 나치가 실현한 체계적인 인간 말소(抹消)의 현장은 현실이 예술적 상상력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도덕과 윤리를 완전히 무화시키는 그런 현장에서 ‘회색지대’가 창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회색지대가 단순히 일체의 인간적 판단이 정지되는 장소가 아니고 아우슈비츠의 ‘권력구조’에서 유래한 역사적 실체라면 ‘상투적인 악’으로서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계산되고 실행된 생명정치적 폭력과 학대가 나무하는 영역으로 회색지대를 해석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회색지대에 대한 증언/문학이 요구된다.
‘문학적인 것’을 정지시키면서 사실 규명에만 매달리는 증언은 증언으로서도 한계가 그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아우슈비츠의 탁월한 증언/문학은, 언표화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바로 그 현장의 진실을 우리의 눈앞에 펼쳐놓는다. 그 진실이 문학적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양상을 주목할수록 "아우슈비츠의 증언/문학"이라는 표현에서 사선(/)은 단절이나 분절이 아니라 생산적 긴장과 사유를 촉발하는 기호임이 분명해진다. 그런 긴장은 상상력과 감성, 이성적 사유 전체를 아우르는 성찰 행위를 촉구한다. 아우슈비츠의 탁월한 증인들일수록 벌어진 사건과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언어의 모색과 형식의 창의적 응용을 시도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로써 ‘문학적인 것’이 증언의 필수적인' 성분'이 된다. 하지만 ‘시적인 것’으로 바꿔 불러도 좋을 문학적인 것이 특정한 장르로 구성된 어떤 실체로서의 문학(개념)의 속성이 아님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런저런 수사(修辭)나 감성(感性)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문학이라는 언어예술 자체를 가능케 하는 ‘근원적인 힘’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힘의 발현 양상을 엄밀하게 따져본다면, 인간의 증언 행위를 가능케 하는 언어의 문제에 주목하게 되며, 언어의 문제는 곧 문학의 핵심적 화두임이 거듭 확인된다. 인간의 창조적 언어활동와 새로운 발화에서 나오는 활력 속에서 아우슈비츠의 진실이 드러난다. 그 드러남의 발현인 ‘문학적인 것’은 기존의 (상투화된) 언어로는 ‘아우슈비츠’를 형언할 수 없음을 절감한 레비의 증언록에서도 핵심적인 것이다. 레비의 증언록은 증언불가능성과 싸워 아우슈비츠의 '인간적 진실'을 드러낸 생생한 사례다.
레비의 증언록을 경유하여 ‘아우슈비츠’가 발생시킨 악의 상투성과 회색지라는 개념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근대주의적 생명정치가 어떻게 언어를 가질 수 없는 무젤만을 양산했는가를 추적하는 본 연구는 한반도 분단의 현장에서 아우슈비츠 연구가 갖는 현재적 의의를 역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