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근대계몽기 ‘한양’을 이해하고 표상하는 계몽주체들의 시각과 차이를 살피기 위해 작성되는데, {대한매일신보}의 계몽가사와 {소년}_계열의 장편창가를 특히 주목한다. 당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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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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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근대계몽기 ‘한양’을 이해하고 표상하는 계몽주체들의 시각과 차이를 살피기 위해 작성되는데, {대한매일신보}의 계몽가사와 {소년}_계열의 장편창가를 특히 주목한다. 당시 ‘한양’은 조선왕조의 수도로서 근대화의 물결에 점차 휩쓸려갔다. 그러나 한양의 근대화는 대한제국의 주체적 문명화보다는 일제의 식민정책에 의해 강제되는 슬픈 도정이었다. 제목의 ‘한양-경성’은 식민성의 현저한 우위 속에 문명성이 접합되는 ‘한양’의 종속성과 불구성을 새롭게 표상하기 위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경성’은 한일합방 후 일제가 ‘한성’을 신속히 대체하기 위해 부여한 새 지명이다.
파란에 휩싸인 ‘한양’을 바라보는 당대 계몽주의자들의 시선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었다. 신채호가 주축이 된 {대한매일신보}와 최남선의 {소년}은 ‘한양’의 근대화를 바라보는 이중적 시선과 태도를 대표한다. 전자에게 ‘한양’은 ‘대한제국’을 타락시키고 억압하는 야만적 문명이 횡행하는 부정적 공간이었다. 이에 반해 후자에게 ‘한양’은 문명화가 모범적으로 수행되는 긍정적 공간이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위생과 기차, 도시화 등이 일으키는 삶의 파편화와 삶의 합리화로 다르게 봄으로써, 매우 이질적인 문명의 향방을 예측했던 것이다.
이처럼 ‘경성’으로의 변복을 눈앞에 둔 ‘한양’은 복잡다단한 일상의 장이기에 앞서 계몽 담론이 경합하고 갈등하는 정치의 장이었다. ‘한양―경성’은 주어진 실체이기에 앞서 정치의 은유였고 또 민족과 국가를 대체하는 가치체계였으며, 두 매체의 ‘문명’ 번역과 내면화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복합적 언어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