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은 기독교 발달사에서 일대 전환기이다. 초기 기독교가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 로마 제국은 기독교도들에게는 '음너 바빌론제국'으로 비쳤...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은 기독교 발달사에서 일대 전환기이다. 초기 기독교가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 로마 제국은 기독교도들에게는 '음너 바빌론제국'으로 비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은 기독교 발달사에서 일대 전환기이다. 초기 기독교가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 로마 제국은 기독교도들에게는 '음너 바빌론제국'으로 비쳤을 뿐이었다. 이들에게 있어 황제 숭배는 명백한 우상숭배였고 이에 항거한 순교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제국을 대하는 교회의 입장이 달라지게 되었으며, 교회의 구성원이나 조직 등이 크게 변화하였다. 무엇보다도 기독교가 상류층으로 대체되면서 교회는 세속국가와 같은 일종의 교회정부를 형성하게 되었다. 공적 교회는 제국 정부의 복사판처럼 되었고 주교들은 로마 행정관리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칙령반포 등의 '정치 활동'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이 당시 제국의 중심은 동로마에 있었는데, 동로마 즉 비잔틴 제국에서는 그 초기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품격에 관해 격심한 논쟁이 었었고, 이어서 성상 숭배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동시에 마리아 숭배가 서서히 자리잡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특히 비잔틴 제국에서의 성상 숭배 및 그에 대한 반대운동과 실패, 그리고 마리아 숭배의 형성이 현실의 정치권력의 향방 및 헬레니즘적 전통적 사고와 어느 정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 초기선교 정착 과정에 있어서의 사회복지 선교의 역할에 관한 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