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고는 기존의 ‘淡’字類 評語 詩에 대한 몇 가지 미비점을 보완하려는 데서 비롯하였다. 그 간 ‘淡’字類 評語 詩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한적과 은거를 통해 자연을 지향하는 시라고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淡’字類 評語와 ‘閑’字類 評語 사이의 변별점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으며, 그것만으로는 ‘枯淡’ 등의 평어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기에 본고에서는 ‘淡’字類 評語 詩가 지니는 다양한 특질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연구를 위해 許筠의 國朝詩刪과 洪萬宗의 詩話叢林이 주된 텍스트로 사용되었다.
- Ⅱ장에서는 ‘淡’字類 評語의 개념을 규정하였다. ‘淡’字類 評語의 사상적 배경을 보면, 老子와 莊子, 그리고 中庸』에서 말하는 ‘淡’은 일상사처럼 평이하고 無味한 것 같지만 음미해 보면 천지자연의 도를 얻을 수 있는 무한한 뜻을 지니는 것, 그 궁극에 달하면 천지를 제자리에 잡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거울처럼 맑고 물처럼 고요한 것을 특징으로 지닌다.
- 문학 비평에 있어 ‘淡’의 풍격에 주의가 기울여진 것은 司空圖의 二十四詩品』에서였는데, 그에게 ‘淡’은 24개의 풍격 중 두 번째에 위치하는 중요한 위치였다. 그는 ‘淡’은 묵묵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맑고 고상한 뜻을 품고 살아가는 시인의 삶의 태도에서 나와, 애써 구하려 하면 비슷한 형상은 얻을 수 있어도 그 진정한 경지에는 이를 수 없다고 밝힘으로 무심의 상태에서 자연스레 조화를 이룰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풍격이라고 하였다. ‘淡’의 중요성은 시는 성정에 바탕을 두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宋代 성리학의 발달과 함께 부각되기에 이르러, 以道爲文의 입장에 서서 浮華한 표현을 배격하고 박실함을 추구하게 되었기에, 詩經』의 思無邪와 溫柔敦厚와 근사한 ‘淡’의 경지는 성리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풍격이 되었고, 그러한 시각은 精言玅選』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상을 종합하여 본다면 ‘淡’의 풍격이란 아주 평이하고 소박한 가운데 심오한 사상을 표현해 내는 것, 즉 언어가 자연스런 가운데 함축적 의미가 담겨져 言外之意를 지니는 데서 자아내는 미감으로, 여유롭고 한가롭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처하는 ‘悠閑自在’의 경지라고 하겠다.
- 國朝詩刪과 詩話叢林에 실린 평어들을 정리해 보면, ‘淸淡’과 ‘枯淡’이 각각 6회, ‘淡雅’가 5회, ‘閑淡’이 3회, 그리고 ‘簡淡’과 ‘沖淡’이 각각 1회씩 나와 있다. ‘淸淡’의 특징은 범상한 것을 초월한 맑은 경계를 읊조리는 것인데, ‘淸’이 은백색의 달빛과 소복이 쌓인 눈의 청량함이나 흐르는 강물의 생동감이라면, 저물녘에서 한밤중을 배경으로, 안개와 연기, 부슬비 등을 주된 소재로 삼고 있는 ‘淸淡’은 아스라한 연기나 안개 그리고 부슬비의 애상감이나 고요히 가라앉아 있는 못물의 渲染에 가깝다. ‘枯淡’은 겉은 말랐지만 속은 기름져서 담박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름다운 시의 풍격을 가리키는 평어로, 질박하고 메마른 듯, 평이하고 한가로운 듯 느껴지지만 철저히 음미할 때 깨닫게 되는 단절과 고독의 정서가 ‘枯淡’의 풍격이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雅’에는 고상하고 통속적인 것과 섞이지 않으며 천박하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규범적 사상을 구현하는 데 적당하기에, ‘淡雅’의 풍격은 자신 내부로 침잠하여 인간 사회의 풍진에서 본성을 회복코자 하는 청경한 다짐을 그린다. ‘閑淡’의 중요한 특징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한적과 은거를 통해 자연에 대한 관조와 융화를 그리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세계와의 갈등을 담지하고 있고 그로 인해 단절감을 느끼면서도 달관의 자세를 나타내고 고난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매개체로서 자연을 지향하고자 한다. ‘簡淡’은 함축적이거나 비유적이라기보다는 直敍的이어서, 섬세하고 세밀한 수식이나 묘사, 다양한 전고의 사용, 다양한 표현 기법 등이 거의 없는 시의 풍격을 가리킨다. ‘沖淡’은 자연스럽고 담박한 고취가 있는 시에서 나타나는 풍격으로, 자연 속에서 한가로이 소요하며 물욕의 바깥에서 초연할 때 가능한 풍격이다.
- 이어 Ⅲ장에서는 ‘淡’字類 評語 詩의 특질을 고찰하였다. 특히 1절에서는 ‘淡’字類 評語 詩가 지니는 수묵미학적 특질에 주의를 기울였다. ‘淡’字類 評語 詩는 수묵미학의 핵심을 이루는 색채의 초탈과 여백의 운용을 통해 “자연의 성정을 표현하여 조화의 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수묵화의 회화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여백의 운용은 술어의 생략과 시인과 대상의 융화 등을 통해 ‘不事繪飾’하지만 無味한 데로 흐르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