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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리천전투와 고려태조 왕건의 전략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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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일리천전투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였다. 936년 일선군에서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벌인 이 전투는 거의 일방적이다 싶을 정도로 고려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고려가 완승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후백제를 압도하던 고려군의 규모에서 비롯한다. 무려 87,500명의 병력이 동원되었고, 그 병력은 3군체제하 마군을 주력으로 보군이 질서정연하게 편성되었다. 종래 이 군사의 수치에 대해 부정하는 견해가 있었지만, 전략 전술적 차원에서 살펴 보건데 사실로 보여진다.
    왕건이 대규모의 정벌군을 편성한 것은 농사철에 농민과 군사의 동원이 불가피하였던 현실에서 최대한 많은 수의 병력을 동원하여 전투를 신속히 종결짓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결전과 속전속결은 그러한 목적에서 수립된 전략이었고, 이는 후삼국 전쟁사상 전례가 없던 최대 규모의 병력이 동원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속전속결로 승리를 거두어야 했으므로 기동력과 전투력이 높은 마군 중심의 전술적 편성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전과 속전속결전략에 입각하여 왕건은 일선군으로의 우회기동전술을 구사하였다. 가급적 단기간내 결정적인 전투로 전쟁을 종식시켜야 했으므로 천안부에 선발대를 파견하여 후백제군의 분산을 유도하는 한편 일선군에는 정벌군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속전속결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천안부와 일선군 현지를 연결하는 병참지원체계를 구축하였다.
    왕건이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시간 내 일선군에 도착하여 결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병력의 분산 및 집중 전술과 현지에서의 병참 지원능력의 확보가 커다란 조력이 되었던 것이다. 결전과 속전속결 전략을 적용하여 왕건은 후백제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후삼국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는 결과를 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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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리천전투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였다. 936년 일선군에서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벌인 이 전투는 거의 일방적이다 싶을 ...

    일리천전투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였다. 936년 일선군에서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벌인 이 전투는 거의 일방적이다 싶을 정도로 고려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고려가 완승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후백제를 압도하던 고려군의 규모에서 비롯한다. 무려 87,500명의 병력이 동원되었고, 그 병력은 3군체제하 마군을 주력으로 보군이 질서정연하게 편성되었다. 종래 이 군사의 수치에 대해 부정하는 견해가 있었지만, 전략 전술적 차원에서 살펴 보건데 사실로 보여진다.
    왕건이 대규모의 정벌군을 편성한 것은 농사철에 농민과 군사의 동원이 불가피하였던 현실에서 최대한 많은 수의 병력을 동원하여 전투를 신속히 종결짓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결전과 속전속결은 그러한 목적에서 수립된 전략이었고, 이는 후삼국 전쟁사상 전례가 없던 최대 규모의 병력이 동원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속전속결로 승리를 거두어야 했으므로 기동력과 전투력이 높은 마군 중심의 전술적 편성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전과 속전속결전략에 입각하여 왕건은 일선군으로의 우회기동전술을 구사하였다. 가급적 단기간내 결정적인 전투로 전쟁을 종식시켜야 했으므로 천안부에 선발대를 파견하여 후백제군의 분산을 유도하는 한편 일선군에는 정벌군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속전속결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천안부와 일선군 현지를 연결하는 병참지원체계를 구축하였다.
    왕건이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시간 내 일선군에 도착하여 결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병력의 분산 및 집중 전술과 현지에서의 병참 지원능력의 확보가 커다란 조력이 되었던 것이다. 결전과 속전속결 전략을 적용하여 왕건은 후백제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후삼국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는 결과를 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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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Battle of Ilichun(一利川) was the ultimate confront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that ended decades of warfare between Koryo(高麗), Later Baekjae(後百濟) and Shilla(新羅). The battle took place in 936 at the Ilichun river in Ilsun county(一善郡) where two camps of Koryo and Baekjae engaged, and gave overwhelming victory to Wang Kun and his troops. The background for Koryo's military triumph could well be attributed to the sheer size of its army compared to that of Baekjae. 87,500 strong was mobilized and well-structured under the triple force system, with main emphasis on the cavalry rather than infantry. Some previous views were pessimistic to the estimates of Koryo force's size, but it seems to be accurate from the strategic and tactical perspectives.
    The reason for Wang Kun(王建) to organize a massive army for the conquest of Baekjae was to rapidly terminate the battle by gathering maximum military force possible, so as to avoid the loss of manpower in the farming season. decisive battle(決戰) and blitzkrieg(速戰速決) strategy was generated out of such purpose, which resulted in an unprecedented concentration of armed men during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In order to deliver victory through an intensive surprise attack, cavalry-oriented tactics were employed to enhance mobility and combat strength.
    Based on decisive battle and blitzkrieg strategies, Wang Kun decided to implement the tactic of roundabout movement(迂廻機動) to Ilsun county. In his attempt to cease warfare in the shortest time with a single decisive battle, Wang Kun dispatched advance force to Chonan district(天安府) to scatter Baekjae force while concentrating his main army at Ilsun county. He also established impedimenta system between Chonan and Ilsun to materialize such strategies.
    The main backgrounds for Wang Kun to arrive at Ilsun county in a short time and execute the final battle of the era, despite his campaign with a grand army, were his flexible tactics of dispersing and concentrating the troops and securing supply line locally. Through such strategies, Wang Kun was able to achieve resistless victory against Baekjae army, thereby accomplishing early eradication of overall wars of the Later Three Kingd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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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attle of Ilichun(一利川) was the ultimate confront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that ended decades of warfare between Koryo(高麗), Later Baekjae(後百濟) and Shilla(新羅). The battle took place in 936 at the Ilichun river in I...

    The Battle of Ilichun(一利川) was the ultimate confront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that ended decades of warfare between Koryo(高麗), Later Baekjae(後百濟) and Shilla(新羅). The battle took place in 936 at the Ilichun river in Ilsun county(一善郡) where two camps of Koryo and Baekjae engaged, and gave overwhelming victory to Wang Kun and his troops. The background for Koryo's military triumph could well be attributed to the sheer size of its army compared to that of Baekjae. 87,500 strong was mobilized and well-structured under the triple force system, with main emphasis on the cavalry rather than infantry. Some previous views were pessimistic to the estimates of Koryo force's size, but it seems to be accurate from the strategic and tactical perspectives.
    The reason for Wang Kun(王建) to organize a massive army for the conquest of Baekjae was to rapidly terminate the battle by gathering maximum military force possible, so as to avoid the loss of manpower in the farming season. decisive battle(決戰) and blitzkrieg(速戰速決) strategy was generated out of such purpose, which resulted in an unprecedented concentration of armed men during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In order to deliver victory through an intensive surprise attack, cavalry-oriented tactics were employed to enhance mobility and combat strength.
    Based on decisive battle and blitzkrieg strategies, Wang Kun decided to implement the tactic of roundabout movement(迂廻機動) to Ilsun county. In his attempt to cease warfare in the shortest time with a single decisive battle, Wang Kun dispatched advance force to Chonan district(天安府) to scatter Baekjae force while concentrating his main army at Ilsun county. He also established impedimenta system between Chonan and Ilsun to materialize such strategies.
    The main backgrounds for Wang Kun to arrive at Ilsun county in a short time and execute the final battle of the era, despite his campaign with a grand army, were his flexible tactics of dispersing and concentrating the troops and securing supply line locally. Through such strategies, Wang Kun was able to achieve resistless victory against Baekjae army, thereby accomplishing early eradication of overall wars of the Later Three Kingd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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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대후백제 정벌군 편성과 규모
    • Ⅲ. 일리천전투와 왕건의 전략
    • Ⅳ. 일선군 우회기동의 전술적 의미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대후백제 정벌군 편성과 규모
    • Ⅲ. 일리천전투와 왕건의 전략
    • Ⅳ. 일선군 우회기동의 전술적 의미
    • Ⅴ.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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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金甲童, "羅末麗初 豪族과 社會變動 硏究" 高麗大民族文化硏究所 1990

    2 문안식, "후백제전쟁사연구" 혜안 2008

    3 신성재, "태봉의 수군전략과 수군운용" 부산경남사학회 (75) : 205-231, 2010

    4 임용한, "전쟁과 역사" 혜안 2001

    5 한스 델뷔르크, "병법사" 한국학술정보(주) 2009

    6 金甲童, "나말려초 天安府의 성립과 그 동향" 韓國史硏究會 117 : 2002

    7 柳永哲, "고창전투와 後三國의 정세변화" 한국중세사학회 7 : 1999

    8 김갑동, "고려의 후삼국통일과 후백제" 서경문화사 2010

    9 김갑동,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 유금필"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69) : 33-67, 2008

    10 김아네스, "고려 초기의 都護府와 都督府" 역사학회 173 : 63-93, 2002

    1 金甲童, "羅末麗初 豪族과 社會變動 硏究" 高麗大民族文化硏究所 1990

    2 문안식, "후백제전쟁사연구" 혜안 2008

    3 신성재, "태봉의 수군전략과 수군운용" 부산경남사학회 (75) : 205-231, 2010

    4 임용한, "전쟁과 역사" 혜안 2001

    5 한스 델뷔르크, "병법사" 한국학술정보(주) 2009

    6 金甲童, "나말려초 天安府의 성립과 그 동향" 韓國史硏究會 117 : 2002

    7 柳永哲, "고창전투와 後三國의 정세변화" 한국중세사학회 7 : 1999

    8 김갑동, "고려의 후삼국통일과 후백제" 서경문화사 2010

    9 김갑동,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 유금필"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69) : 33-67, 2008

    10 김아네스, "고려 초기의 都護府와 都督府" 역사학회 173 : 63-93, 2002

    11 柳永哲, "高麗의 後三國 統一過程 硏究" 경인문화사 2004

    12 柳永哲, "高麗와 後百濟의 爭覇過程 硏究" 영남대 1997

    13 洪承基, "高麗政治史硏究" 一潮閣 2001

    14 朴漢卨, "高麗太祖의 後三國統一政策" 檀國大學校史學會 14 : 1980

    15 金甲童, "高麗太祖와 後百濟 神劒의 전투, in 滄海朴秉國敎授停年紀念史學論叢" 1994

    16 池內宏, "高麗太祖の經略, in 滿鮮史硏究 中世篇2" 吉川弘文館 1937

    17 洪元基, "高麗前期軍制硏究" 혜안 2001

    18 鄭景鉉, "高麗前期 二軍六衛制硏究" 서울大 1992

    19 李基白, "高麗兵制史硏究" 一潮閣 1968

    20 李基白, "高麗京軍考, in 李丙燾博士華甲紀念論叢" 一潮閣 1956

    21 洪承基, "高麗 초기 中央軍의 組織과 役割, in 高麗軍制史" 陸軍本部 1983

    22 鄭景鉉, "高麗 太祖의 一利川 戰役" 韓國史硏究會 68 : 1988

    23 김명진, "高麗 太祖 王建의 統一戰爭 硏究" 경북대 2009

    24 崔圭成, "高麗 太祖 王建 硏究" 주류성 2005

    25 崔柄憲, "道詵의 生涯와 羅末麗初의 風水地理說" 韓國史硏究會 11 : 1975

    26 文暻鉉, "王建太祖의 民族再統一의 硏究" 慶北大學校史學會 1 : 1979

    27 최형국, "朝鮮時代騎兵의 戰術的운용과 馬上武藝의 변화 -壬辰倭亂期를 中心으로" 역사실학회 38 : 5-53, 2009

    28 李基東, "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郞徒" 一潮閣 1984

    29 서영교, "張保皐의 騎兵과 西南海岸의 牧場" 진단학회 (94) : 55-76, 2002

    30 김명진, "太祖王建의 天安府 設置와 그 運營" 한국중세사학회 (22) : 37-76, 2007

    31 김명진, "太祖王建의 一利川戰鬪와 諸蕃勁騎" 한국중세사학회 25 (25): 195-248, 2008

    32 柳永哲, "一利川 戰鬪와 後百濟의 敗亡" 大丘史學會 63 : 2001

    33 윤용혁, "936년 고려의 통일전쟁과 개태사" 一志社 114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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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7-07 학회명변경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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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69 1.69 1.8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64 1.57 3.463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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