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논문은 15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조선사회에서 兩班家의 지방정착이 지 역사회 구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또 그것이 조선의 정치·제도사안에서 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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茨城 : 筑波大學, 1989
Thesis (doctoral) -- Tsukuba Daigaku , [歷史·人類學硏究科] , 1989
1989
일본어
일본
309 p. : ill. ; 18 X 25 cm.
Includes bibliographical references (p. 30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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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논문은 15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조선사회에서 兩班家의 지방정착이 지 역사회 구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또 그것이 조선의 정치·제도사안에서 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본논문은 과거 중앙중심의 역사에서 지방중심의 역사로 시각을 전환시켜 농촌이라는 현실생활의 장에서 양반의 모습을 복원해 봄으로써, 전근대 조선사회가 발전·쇠퇴해가는 과정 속에서 그들에 의한 향촌 운영의 역사적 위치가 어떤 것이었나를 살펴본 것이 다. 분석 방법으로는 양반 일가가 가지고 있는 15세기에서 17세기 까지의 분 재물서 및 소송문서를 사회·경제학적 분석을 비롯하여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가족사적·여성사적 분석방법을 동원하여 다양하게 접근하였다. 구체적으로는 경상도 월성군의 손백돈가·예안현의 김 효원가·영해부의 이애가·전라도 해남현의 윤선도가를 분석대상으로 삼았으 며, 조선사회에 있어서 양반가의 재지화를 3가지 관점에서 검토해 보았다. 첫째는 재지화의 주체를 사회구성의 기초인 `가족'에 바탕을 두어 그것이 갖는 사회·경제적 위미를 검토하였다. 둘째는 양반 일가의 재지화 현상이 거주지 주변에 있는 土地·노비의 집적과 집적적 소농경영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추적하였다. 그리고 셋째는 양반가 재지화의 결과, 지역사회가 어떻게 재편되었는가를 분석하였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잠정적으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16·17세기 에는 양반가의 지방정착을 통해 그들의 재산(토지·노비)축적과 관리 및 수전 중심 작물체계의 확립과도 관련하여 부계남성위주의 사회로 편성해 갔다. 둘째는 16·17세기 조선의 향촌사회에서 자율적인 향촌운영은 양반가의 지방정착에 의해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세째는 양반가가 `향회'를 통해 국가의 수취체계의 지방정착에 따른 촌락의 발달이 배경이 되었다. 네째 조선정부의 양반가를 매개로한 촌락지배는 양반가의 농업경영에 따른 촌락 의 발달 및 촌락 구성원으로서 노비호의 성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조선의 16·17세기는 `중기'로 구별해서 보아야 하며, 남은 문제는 앞으로의 연구과제로 삼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