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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참배문제가 한국장로교회에 끼친 영향연구 - 권징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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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연구요약문

    종교개혁자 칼빈은 교회의 표지(교회의 교회됨)를 말씀과 성례로 보고 권징(치리)을 교회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개혁교회의 지도자들은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구분한다. 칼빈의 개혁주의 전통(종교개혁이후의 신앙전통)을 가졌던 구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내한한 장로교회의 선교사들은 한국선교 초기부터 권징을 강하게 시행을 하였고 한국장로교회의 당회록(교회의 당회회의록-당회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정치. 의결기구이다)은 권징록이라 할 정도로 성도들의 삶에 대하여 강한 치리를 시행을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강력한 권징이 힘을 잃은 두 사건이 있었는데 한 가지가 1938년도의 신사참배(일본역대 천황과 군신들을 모신 사당)이고 다른 한 가지가 1950년대 이후의 교단분열(예를 들면,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의 분열 등이다)이었다. 신사참배로 말미암아 권징의 시행자가 권징의 대상자가 되어버리는 초유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한국장로교회는 더 이상 상회(총회)가 하회(노회와 당회)를 권징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회개를 통한 권징의 회복이었지만 해방이후에 한국기독교는 그 기회를 상실하였다. 결국 한국장로교회는 1950년대 이후에 교단분열로 이어지며 상처뿐인 영광을 안게 되었다. 그 후로도 한국장로교회는 안타깝게도 권징을 성장의 불필요한 요소로 여기기 시작을 하였다. 한국장로교회의 성장위주의 정책 속에서 권징은 교회 안에서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갔고, 그로 말미암아 한국장로교회는 몸집은 커졌지만 세상을 이끌어 가지 못하는 교회로 전락하여 세상을 걱정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걱정하는 교회가 되어갔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권징의 회복뿐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목회자도 말씀도 풍성한 시대에 있다. 과거보다 풍성함에도 교회에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것은 교회가 권징을 버렸기 때문이다. 일제는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권징을 버린 교회가 힘을 쓸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권징을 포기하게 만든 사건이 신사참배였다. 권징을 회복하여 일제강점기의 오류를 더 이상 범하지 아니하고 사회를 선도하는 훌륭한 기독교로 거듭나는 것이 오늘날 한국장로교회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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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요약문 종교개혁자 칼빈은 교회의 표지(교회의 교회됨)를 말씀과 성례로 보고 권징(치리)을 교회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개혁교회의 지도자들은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구분한...

    연구요약문

    종교개혁자 칼빈은 교회의 표지(교회의 교회됨)를 말씀과 성례로 보고 권징(치리)을 교회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개혁교회의 지도자들은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구분한다. 칼빈의 개혁주의 전통(종교개혁이후의 신앙전통)을 가졌던 구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내한한 장로교회의 선교사들은 한국선교 초기부터 권징을 강하게 시행을 하였고 한국장로교회의 당회록(교회의 당회회의록-당회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정치. 의결기구이다)은 권징록이라 할 정도로 성도들의 삶에 대하여 강한 치리를 시행을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강력한 권징이 힘을 잃은 두 사건이 있었는데 한 가지가 1938년도의 신사참배(일본역대 천황과 군신들을 모신 사당)이고 다른 한 가지가 1950년대 이후의 교단분열(예를 들면,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의 분열 등이다)이었다. 신사참배로 말미암아 권징의 시행자가 권징의 대상자가 되어버리는 초유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한국장로교회는 더 이상 상회(총회)가 하회(노회와 당회)를 권징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회개를 통한 권징의 회복이었지만 해방이후에 한국기독교는 그 기회를 상실하였다. 결국 한국장로교회는 1950년대 이후에 교단분열로 이어지며 상처뿐인 영광을 안게 되었다. 그 후로도 한국장로교회는 안타깝게도 권징을 성장의 불필요한 요소로 여기기 시작을 하였다. 한국장로교회의 성장위주의 정책 속에서 권징은 교회 안에서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갔고, 그로 말미암아 한국장로교회는 몸집은 커졌지만 세상을 이끌어 가지 못하는 교회로 전락하여 세상을 걱정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걱정하는 교회가 되어갔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권징의 회복뿐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목회자도 말씀도 풍성한 시대에 있다. 과거보다 풍성함에도 교회에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것은 교회가 권징을 버렸기 때문이다. 일제는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권징을 버린 교회가 힘을 쓸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권징을 포기하게 만든 사건이 신사참배였다. 권징을 회복하여 일제강점기의 오류를 더 이상 범하지 아니하고 사회를 선도하는 훌륭한 기독교로 거듭나는 것이 오늘날 한국장로교회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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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Abstract

    Calvin, the religious reformer considered marks of church (being church of church) as words and sacraments; and discipline as a means to protect church. Leaders of reformed church divide discipline as a mark of church. Missionaries of the Presbyterian Church who had the reformed tradition of Calvin and visited Korea at the late period of Joseon Dynasty and Japanese colonial era conducted discipline severely since the beginning of mission works in Korea and it was performed powerful discipline about lives of saints as the proceedings of church conference of Korea Presbyterian Church (the church conference is the political and legislative organization of pastor and elders) was called as records of discipline.

    However, there were two cases to lose its strength of powerful discipline: one was the shrine worship (shrine sacred to Japanese emperors and vassals of Japan) in 1938 and the other is schism of religious body (for example, schism of the General Assembly of Presbyterian Church and the Presbyterian Church etc) since 1950s. Due to shrine worship and the unheard-of event that the implementer of discipline became the subject of disciplin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was placed in a situation that upper conference (general assembly) could not discipline under con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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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Calvin, the religious reformer considered marks of church (being church of church) as words and sacraments; and discipline as a means to protect church. Leaders of reformed church divide discipline as a mark of church. Missionaries of the Pr...

    Abstract

    Calvin, the religious reformer considered marks of church (being church of church) as words and sacraments; and discipline as a means to protect church. Leaders of reformed church divide discipline as a mark of church. Missionaries of the Presbyterian Church who had the reformed tradition of Calvin and visited Korea at the late period of Joseon Dynasty and Japanese colonial era conducted discipline severely since the beginning of mission works in Korea and it was performed powerful discipline about lives of saints as the proceedings of church conference of Korea Presbyterian Church (the church conference is the political and legislative organization of pastor and elders) was called as records of discipline.

    However, there were two cases to lose its strength of powerful discipline: one was the shrine worship (shrine sacred to Japanese emperors and vassals of Japan) in 1938 and the other is schism of religious body (for example, schism of the General Assembly of Presbyterian Church and the Presbyterian Church etc) since 1950s. Due to shrine worship and the unheard-of event that the implementer of discipline became the subject of disciplin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was placed in a situation that upper conference (general assembly) could not discipline under con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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