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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즈워스, 런던, 실재 - 성차와 "인류를 둘로 나누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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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기본적으로 "워즈워스가 런던을 좋아했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워즈워스와 런던에 대한 기존의 전형화된 해석은 "전투적인" 제1세대 여성주의 비평은 물론 제1세대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하는 제2세대 여성주의 비평이 모두 알튀세르(Louis Althuser)가 이르는 “이데올로기에로의 추락”(the fall to ideology)의 함정에 빠져 시인의 사적 공간을 집단적인 이념성으로 대체했기 때문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본고는 공동체적인 법의 영역으로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개인적인 심리공간이 항상 법에 대한 저항의 공간으로 남는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라캉의 “실재”(the real)의 개념을 빌어온다. 특히 본고는 “실재”가 종종 오해되듯이 법의 ‘바깥’이 아니라 주체의 유일한 알리바이인 법 ‘안’에 내재하는, 즉 법자체가 언어적인 가공물이라는 점에서 중심의 부재의 형태로 내재하나 법이 결코 통합할 수 없는 요소라는 점에서 마치 법의 밖에 있는 것처럼 현상하는 저항적 요소임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실재”는 욕망의 상징계(즉 법의 차원)가 계속 작동하도록 추인하는 “내재적/구성적” 결여의 차원인 것이다.
      본고는 “실재”가 작동하는 방식을 성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서곡』 제 7권에서 논란이 되는 “런던 창녀” 및 “런던 거지” 구절을 분석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해되듯이 이 구절에서 시인이 창녀 및 거지를 도회적인 “난잡함”을 상징하는 기호로 타자화하는 대신 그런 식의 사회적 상징화에 대해 자신이 다루는 상징 언어에 대한 질책 내지 자기반성의 국면으로 이어짐을 주장한다. 말하자면 도시에서 시인은 비루한 대상들을 소외시킴으로써 순수한 남성성을 보존하고자하는 아버지의 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녀와 거지의 존재를 통해 그 법의 부조리성을 목격함으로써 그 법의 결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마조히즘(masochism)적 남성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조히즘은 아버지의 법에 대한 수동성을 통해 라캉이 말하는바, “제로에서 세계를 창조하고자하는 의지”내지 욕망을 표현하는 심리구조이다. 그리하여 시인이 런던에서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기존 비평이 주장하는 ‘시인의 잃어버린 남성성’이 아니라 “고통에의 의지”(the will to suffering)이다. 궁극적으로 본고는 제1세대 여성주의 비평이 제시하는 전형화된 성별 개념의 재성별화(re-gendering)가 아니라 그 개념의 탈권력화(de-phallucizing)를 통해 기존 성이데올로기의 해체와 재구성을 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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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기본적으로 "워즈워스가 런던을 좋아했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워즈워스와 런던에 대한 기존의 전형화된 해석은 "전투적인" 제1세대 여성주의 비평은 물론 제1세대의 이분...

      본고는 기본적으로 "워즈워스가 런던을 좋아했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워즈워스와 런던에 대한 기존의 전형화된 해석은 "전투적인" 제1세대 여성주의 비평은 물론 제1세대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하는 제2세대 여성주의 비평이 모두 알튀세르(Louis Althuser)가 이르는 “이데올로기에로의 추락”(the fall to ideology)의 함정에 빠져 시인의 사적 공간을 집단적인 이념성으로 대체했기 때문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본고는 공동체적인 법의 영역으로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개인적인 심리공간이 항상 법에 대한 저항의 공간으로 남는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라캉의 “실재”(the real)의 개념을 빌어온다. 특히 본고는 “실재”가 종종 오해되듯이 법의 ‘바깥’이 아니라 주체의 유일한 알리바이인 법 ‘안’에 내재하는, 즉 법자체가 언어적인 가공물이라는 점에서 중심의 부재의 형태로 내재하나 법이 결코 통합할 수 없는 요소라는 점에서 마치 법의 밖에 있는 것처럼 현상하는 저항적 요소임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실재”는 욕망의 상징계(즉 법의 차원)가 계속 작동하도록 추인하는 “내재적/구성적” 결여의 차원인 것이다.
      본고는 “실재”가 작동하는 방식을 성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서곡』 제 7권에서 논란이 되는 “런던 창녀” 및 “런던 거지” 구절을 분석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해되듯이 이 구절에서 시인이 창녀 및 거지를 도회적인 “난잡함”을 상징하는 기호로 타자화하는 대신 그런 식의 사회적 상징화에 대해 자신이 다루는 상징 언어에 대한 질책 내지 자기반성의 국면으로 이어짐을 주장한다. 말하자면 도시에서 시인은 비루한 대상들을 소외시킴으로써 순수한 남성성을 보존하고자하는 아버지의 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녀와 거지의 존재를 통해 그 법의 부조리성을 목격함으로써 그 법의 결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마조히즘(masochism)적 남성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조히즘은 아버지의 법에 대한 수동성을 통해 라캉이 말하는바, “제로에서 세계를 창조하고자하는 의지”내지 욕망을 표현하는 심리구조이다. 그리하여 시인이 런던에서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기존 비평이 주장하는 ‘시인의 잃어버린 남성성’이 아니라 “고통에의 의지”(the will to suffering)이다. 궁극적으로 본고는 제1세대 여성주의 비평이 제시하는 전형화된 성별 개념의 재성별화(re-gendering)가 아니라 그 개념의 탈권력화(de-phallucizing)를 통해 기존 성이데올로기의 해체와 재구성을 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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