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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우수등재

    조선 공론정치의 이상과 현실(Ⅰ) = 당쟁발생기 율곡 이이의 공론성치론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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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7612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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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조선전기 사림의 정치적 이상인 공론정치를 붕당정치라는 구체적인 정치 현실 속에서 검토하려는 것이다. 특히 당쟁발생기인 선조대에 이이의 공론정치론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굴절되고 좌절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조선 전기 사림이 정치적 약자로서 정의를 주장할 때 공론정치론은 현실 권력과 조화를 이룬 것이었다. 그 반면 사림이 집권한 선조대에는 공론정치의 이상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현실적으로는 동서 붕당이 발생하여 ‘당론’이 ‘공론’을 압도했다. 당론은 건강한 정치적 논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독단적이고 유아론적인 시비론이 주류를 이루었다. 사림의 도덕적 근본주의에 대해 이이는 그것이 정치를 낮은 차원의 ‘사적 윤리주의’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정치적 문제의 다원성과 민생에 대한 관심을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이는 사림간의 상호존중과 당쟁의 조정을 제안했으나, 그는 오히려 기회주의자 혹은 공론의 적으로 비판받았다. 사림의 공론정치에 좌절한 이이는 왕과 “호걸의 자질과 성현의 학문의 갖춘 이”가 정치를 주도하지 않으면 국가의 위기를 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조선은 공론의 정치적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자학의 도덕적 근본주의로 인해 정신주의척이고 유아론적인 정치로 흐를 위험이 풍부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정치체제상 정치적 논쟁을 ‘시간’의 경과속에서 여과시키고 발효시킬 자율적인 사회적 공론장이 대단히 취약했으며, 정치적 ‘결정’과 ‘논의’의 장이 구분되지 않아 극단적인 분열의 정치를 초래한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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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조선전기 사림의 정치적 이상인 공론정치를 붕당정치라는 구체적인 정치 현실 속에서 검토하려는 것이다. 특히 당쟁발생기인 선조대에 이이의 공론정치론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굴...

    본고는 조선전기 사림의 정치적 이상인 공론정치를 붕당정치라는 구체적인 정치 현실 속에서 검토하려는 것이다. 특히 당쟁발생기인 선조대에 이이의 공론정치론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굴절되고 좌절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조선 전기 사림이 정치적 약자로서 정의를 주장할 때 공론정치론은 현실 권력과 조화를 이룬 것이었다. 그 반면 사림이 집권한 선조대에는 공론정치의 이상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현실적으로는 동서 붕당이 발생하여 ‘당론’이 ‘공론’을 압도했다. 당론은 건강한 정치적 논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독단적이고 유아론적인 시비론이 주류를 이루었다. 사림의 도덕적 근본주의에 대해 이이는 그것이 정치를 낮은 차원의 ‘사적 윤리주의’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정치적 문제의 다원성과 민생에 대한 관심을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이는 사림간의 상호존중과 당쟁의 조정을 제안했으나, 그는 오히려 기회주의자 혹은 공론의 적으로 비판받았다. 사림의 공론정치에 좌절한 이이는 왕과 “호걸의 자질과 성현의 학문의 갖춘 이”가 정치를 주도하지 않으면 국가의 위기를 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조선은 공론의 정치적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자학의 도덕적 근본주의로 인해 정신주의척이고 유아론적인 정치로 흐를 위험이 풍부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정치체제상 정치적 논쟁을 ‘시간’의 경과속에서 여과시키고 발효시킬 자율적인 사회적 공론장이 대단히 취약했으며, 정치적 ‘결정’과 ‘논의’의 장이 구분되지 않아 극단적인 분열의 정치를 초래한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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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examines the politics of Kongron(public opinion), which is the political ideal of Sarim(the new-Confucian intellectual society) in the early Chosun dynasty. Specifically, it treats how Yi’s hope for the Kongron politics was misinterpreted and frustrated in the first Bungdang(political faction) politics. The politics of Kongron had been harmonized with real politics when Sarim was marginal politically. Under the reign of King Sunjo(1567-1608), Sarim seized power for the first time and anticipated the realization of their dream. But, Bungdang had broken out and Tangron(opinion of Bungdang) overwhelmed Kongron. It didn't recognize the different opinions. Yi pointed out that Sarim’s moral fundamentalism could replaced politics by the shallow private moralism. But, he was criticized as an enemy of Kongron. In conclusion, public sphere in Chosun politics was too weak to filtrate public opinions. And it seems that there broke out the politics of extreme splits because the political function of ‘decision’ and ‘discussion’ was conglomerated only in the Royal co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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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examines the politics of Kongron(public opinion), which is the political ideal of Sarim(the new-Confucian intellectual society) in the early Chosun dynasty. Specifically, it treats how Yi’s hope for the Kongron politics was misinterpreted...

    This paper examines the politics of Kongron(public opinion), which is the political ideal of Sarim(the new-Confucian intellectual society) in the early Chosun dynasty. Specifically, it treats how Yi’s hope for the Kongron politics was misinterpreted and frustrated in the first Bungdang(political faction) politics. The politics of Kongron had been harmonized with real politics when Sarim was marginal politically. Under the reign of King Sunjo(1567-1608), Sarim seized power for the first time and anticipated the realization of their dream. But, Bungdang had broken out and Tangron(opinion of Bungdang) overwhelmed Kongron. It didn't recognize the different opinions. Yi pointed out that Sarim’s moral fundamentalism could replaced politics by the shallow private moralism. But, he was criticized as an enemy of Kongron. In conclusion, public sphere in Chosun politics was too weak to filtrate public opinions. And it seems that there broke out the politics of extreme splits because the political function of ‘decision’ and ‘discussion’ was conglomerated only in the Royal co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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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논문요약
    • Ⅰ. 서론: 동양의 ‘말’과 정치
    • Ⅱ. 조선 사림의 공론정치론: 천리와 공론
    • Ⅲ. 동서(東西) ‘붕당정치’의 시작과 공론정치의 위기
    • Ⅳ. 주자학과 정치의 불화: ‘사적윤리’의 정치화에 대한 이이의 비판
    • 논문요약
    • Ⅰ. 서론: 동양의 ‘말’과 정치
    • Ⅱ. 조선 사림의 공론정치론: 천리와 공론
    • Ⅲ. 동서(東西) ‘붕당정치’의 시작과 공론정치의 위기
    • Ⅳ. 주자학과 정치의 불화: ‘사적윤리’의 정치화에 대한 이이의 비판
    • Ⅴ. 사림의 자기부정과 그 대안: 〈군자-소인〉론에서 〈군자-군자〉론으로
    • Ⅵ. 사림의 공론정치론의 붕괴: 〈군자-군자〉론에서 〈소인-소인〉론으로
    • Ⅶ. 결론: 조선 공론정치의 난점 - 정신주의, 유아론, 혁명주의
    • 참고문헌
    • 영문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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