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자’ 또는 ‘풀뿌리 식민자’로 평가되는 재조일본인(在朝日本人) 오이케 츄스케(大池忠助)는 1856년 쓰시마(對馬島)에서 태어나 20세가 되던 해인 1875년 부산으로 건너와 대일무역에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G3738404
-
2013년
Korean
오이케 츄스케(大池忠助) ; representative ; colonialism ; Japanese in chosen ; Colonizer ; oike chuske ; network of acquaintances ; busan ; 식민자 ; 풀뿌리 식민자 ; 재조일본인(在朝日本人) ; 자본축적 ; 인적네트워크 ; 부산 ; 대의사(代議士)
한국연구재단(NRF)
0
상세조회0
다운로드‘식민자’ 또는 ‘풀뿌리 식민자’로 평가되는 재조일본인(在朝日本人) 오이케 츄스케(大池忠助)는 1856년 쓰시마(對馬島)에서 태어나 20세가 되던 해인 1875년 부산으로 건너와 대일무역에 ...
‘식민자’ 또는 ‘풀뿌리 식민자’로 평가되는 재조일본인(在朝日本人) 오이케 츄스케(大池忠助)는 1856년 쓰시마(對馬島)에서 태어나 20세가 되던 해인 1875년 부산으로 건너와 대일무역에 종사하면서 친형의 도움으로 부산에서 기반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무역, 고리대부, 토지구매, 군수물자조달 등을 통해 자본을 축적했다. 나아가 오이케는 강고한 인적네트워크도 형성함으로써 이를 통해 자신의 기반과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갔다. 그가 맺은 인적네트워크는 제국주의 일본의 핵심적인 인사, 일본 본국의 재벌 및 경제인, 조선 또는 부산 거주 일본인과 조선인 등 네 부류에 걸쳐 있었다.
이러한 인적·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오이케는 경제활동과 공직활동을 통해 ‘부산의 오이케’에서 ‘조선의 오이케’로 나아갔다. 우선 그는 오이케상점(大池商店), 오이케여관(大池旅館), 오이케정미소(大池精米所) 등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동시에 부산 및 조선의 각종 회사와 조합의 설립과 경영에 뛰어들어 1929년 사망 때까지 부산 및 조선재계의 원로로서 활동하였다. 더불어 개항이후 일본인사회는 물론 일제시기 지역사회의 ‘공직’라고 할 수 있는 상업회의소, 부협의회, 학교조합의 중심인물로서 활약하였다. 오이케의 ‘공직’ 활동은 부산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일본 본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즉, 쓰시마의 대의사(代議士)로 당선되어 일본의 제국의회에 진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오이케는 ‘부산의 오이케’를 넘어 ‘조선의 오이케’로 표상되며 조선의 대표적인 성공한 식민자로 위치지워졌다.
하지만 식민지에서의 성장과 제국주의 내의 위상은 식민지라고 하는 공간, 특히 부산이라는 공간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여기서 본국 일본인과 식민지 일본인 간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며 그 독특한 위치도 드러난다. 식민자이면서 식민지 지역민이라고 하는 모순적 위치는 식민지기 내내 현실에서 서로 부딪쳤다. 이 때문에 제국주의의 모순이 내부에서도 발생했고 그 모순이 제국의 파멸과도 직결될 위험을 내포했다고 할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Ooike Thusuke, a Japanese resident in Chosen considered as a "colonizer" or "grassroots settler," was born in Tsushima in 1856 and moved to Busan in 1875 at the age of 20. In Busan, he engaged in trade between Japan and Chosen and started to build a f...
Ooike Thusuke, a Japanese resident in Chosen considered as a "colonizer" or "grassroots settler," was born in Tsushima in 1856 and moved to Busan in 1875 at the age of 20. In Busan, he engaged in trade between Japan and Chosen and started to build a foundation with the help of his elder brother. He accumulated capital through private trade, high interest loan, land purchase, and procurement of war supplies. He further formed a powerful human network, further solidifying his foundation and position. His human network encompassed the core figures of Imperial Japan, conglomerates and economic men of Japan, and Japanese and Chosen people living in Chosen or Busan.
Based on such a human and material foundation, he evolved from "Ooike of Busan" into "Ooike of Chosen" through economic and civil service activities. His economic activities were centered around Ooike Shop, Ooike Inn, and Ooike Rice Mill. He also participated in the foundation and management of companies and corporations of all kinds in Busan and Chosen and served as a veteran in the economic scene of Busan and Chosen until his death in 1929. In addition, he was one of the central members of Chamber of Commerce, Pu-Council, and School Corporation, which were "public offices" in the community during the Japanese rule as w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