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개항기 한국사회의 그리스도교 인식"을 민(民) 의 "외세"(外勢)에 대한 반응을 중심으로 살펴 보고자 하는 데에 있다. 본 연구의 관심은 이 분야에 대한 기존 연구에 대한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G3677912
2000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의 목적은 "개항기 한국사회의 그리스도교 인식"을 민(民) 의 "외세"(外勢)에 대한 반응을 중심으로 살펴 보고자 하는 데에 있다. 본 연구의 관심은 이 분야에 대한 기존 연구에 대한 ...
본 연구의 목적은 "개항기 한국사회의 그리스도교 인식"을 민(民) 의 "외세"(外勢)에 대한 반응을 중심으로 살펴 보고자 하는 데에 있다. 본 연구의 관심은 이 분야에 대한 기존 연구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로부터 비롯된다. 기존 연구는 "그리스도교와 개화(開化)의 상관성"에 대한 탐구와 함께 "그리스도교와 외세"의 상관성에 대한 탐구로 이루어져 왔으나, 대체로 전자에 대한 관심이 주종을 이루어 왔다. 그리고 전자의 관심에 입각한 기존 연구는 주로 개화파 인사들의 그리스도교 이해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기존 연구는 이른바 엘리트 계층에 초점을 맞추어 온 셈이다. 기존 연구의 이러한 경향은 민중 내지는 민(民)의 그리스도교 이해의 문제에 대해 이렇다할 만한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는 무엇보다 민중 내지는 민의 서양종교(그리스도교) 이해의 성격을 민의 반응 양상을 중심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개항기라고 하는 역사적 시점은 전통과 근대의 충돌, 문명과 문명의 충돌이 벌어지는 시기였다. 세계관과 세계관의 충돌이 빚어지는 혼돈 속에서 엘리트 계층과 민중 계층이 지닐 수 있는 정서가 온전하게 일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당시 세계관 충돌의 정점에 놓여 있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개화파를 위시한 엘리트 계층과 민중 계층의 그리스도교 이해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민중들은 무엇보다도 서양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실세를 지닌 "힘"(Power)으로 체감하였다. 그것은 문명 이전에 현실적으로 몸으로 느껴지는 힘이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를 외세로 체감한 민중들은 때로는 그 힘에 의탁하였고, 때로는 그 힘에 저항하였다. 민중들의 의탁과 저항의 양상과 논리를 살펴보는 것은 개항기 한국사회의 그리스도교 이해의 성격을 밝히는 데에 매우 중요한 과제를 이룬다.
기존 연구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한계는 개신교 전통 중심의 연구가 주종을 이루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신교(프로테스탄트)가 한국사회에서 포교 활동을 벌이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또 하나의 그리스도교 전통인 천주교(가톨릭)가 100여년 가까이 포교 활동을 벌여오고 있었다. 한국사회는 개신교 수용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교에 대한 나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서양 오랑캐의 종교" 내지는 "삿된 종교"라는 이미지였다. 개신교의 한국 포교뇩오肩??이미지에 대한 수정의 계기를 제공한 것이었다. 본 연구는 개항기 한국사회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를 민의 서양 세력에 대한 반응이란 시각에서 살펴보는 한편,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교의 두 주류에 대한 변별성이 어느 정도까지 설명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