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는 경기체가가 본격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시기인 동시에 소멸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 신재 주세붕은 경기체가를 창작했다. 서민의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시조를 창작했고 선...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45028309
2002
-
700
KCI등재
학술저널
273-296(24쪽)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16세기는 경기체가가 본격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시기인 동시에 소멸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 신재 주세붕은 경기체가를 창작했다. 서민의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시조를 창작했고 선...
16세기는 경기체가가 본격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시기인 동시에 소멸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 신재 주세붕은 경기체가를 창작했다. 서민의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시조를 창작했고 선비의 풍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 경기체가를 지었던 것이다. 경기체가란 갈래를 선택한 이유는 경기체가의 기본 속성인 찬양, 집단창, 자긍심이 선비들의 취향에 부합되기에 그렇다. 그런데 그 형태는 기존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즉, 전대절·후소절의 2분화가 아닌 후소절만으로 하나의 장을 이루고, 재창이나 `위~`가 다른 방식이며 4음보가 주를 이루는 형태이다. 또한 한자어에 우리말 조사가 삽입되거나 우리말 어휘가 많은 특징이 있다. 이러한 변이형을 창작한 배경에는 작가의식에 따른 향유방식과 우리말과 가락에 대한 자각, 그리고 다른 갈래와의 관련성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신재의 경기체가는 시조와의 긴밀한 교섭관계를 말해주는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신재의 경기체가는 일반의 경기체가 `엽`에 해당되는데, 이 `엽`이란 본곡에 대한 변주곡이란 표지로 이해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신재의 경기체가는 `엽`이란 가락이 어느 시기에 독립된 가락으로 불려질 때, 그 가락에 얹어 부른 것이다. 시조 역시 `엽`이란 가락에 얹어 부른 가곡이다. 그러므로 신재의 경기체가와 시조는 같은 방식으로 노래된 주요한 근거가 된다. 이는 경기체가와 시조가 서로의 배타적인 관계로 흘러온 곳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에서 공생하였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신재의 경기체가는 시가사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어 가지고}와 관련된 문법화 현상에 대하여(2) - {어 가지고}와 {어서}를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