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dissertation investigates U.S. policies towards Communist countries in Asia in the late 1970s, focusing on Vietnam and North Korea with the “China factor” as background for U.S. grand strategy. It focuses on the American and Communist si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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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9
2019
영어
327.17 판사항(22)
서울
중국팩터가 작동했는가? : 1970년대 후반 베트남, 북한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
vi, 300 p. : 삽화, 표 ; 26 cm
참고문헌 수록
I804:11032-000000156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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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dissertation investigates U.S. policies towards Communist countries in Asia in the late 1970s, focusing on Vietnam and North Korea with the “China factor” as background for U.S. grand strategy. It focuses on the American and Communist sides...
This dissertation investigates U.S. policies towards Communist countries in Asia in the late 1970s, focusing on Vietnam and North Korea with the “China factor” as background for U.S. grand strategy. It focuses on the American and Communist sides’ attempts and failure to achieve recognition and normalization.
This study first describes the changing diplomatic strategies of two U.S. administrations of late-Ford and Carter regarding relations with Vietnam and North Korea. It then sheds light on various mechanisms that led each side to either reject or encourage an improvement of bilateral contacts, among which Sino-American normalization and the “China factor” at work during the later half of the Carter administration played a critical role. The research aims at going beyond the one-way approach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great powers by using first-hand materials from Vietnam and other former Socialist countries to illuminate how these actors perceived and reacted to such policies.
The fall of Saigon and the subsequent unification of Vietnam in 1975 fostered the U.S. to go beyond their previous preoccupation with military alliances and U.S. commitments. Now that the three Communist regimes of China, North Korea and Vietnam had emerged and come to influence the whole region, the U.S. found it crucial to place a greater emphasis on economic and diplomatic relationships with adversary nations as instruments in maintaining regional stability. In this context, however, the Ford administration conducted a hostile policy towards Vietnam and North Korea, while hesitated to put forward Sino-American normalization.
As soon as he became President, Carter was quick to initiate and implement plans in approaching three Asian Communist regimes. In the case of Vietnam, Carter sent a special delegation to Hanoi to open path for normalization negotiations. Follows Leonard Woodcock’s visit, three rounds of negotiations in Paris ended without results due to the aid issue – U.S. obligation in paying war reparations. In North Korea, Carter suggested diplomatic contacts with North Korea and called for the resumption of inter-Korean dialogue or the establishment of three-way talks among the U.S., North Korea and South Korea. For China, the stalemate around Taiwan and the Soviet Union made normalization negotiations unproductive at the beginning. However, with a greater influence of the National Security Council over the Carter administration’s foreign policy decisions, talks achieved a turning point follows National Security Advisor Zbigniew Brzezinski’s visit to China in May 1978.
Thereafter U.S. diplomatic directions regarding Vietnam and North Korea were changed to fit to the Chinese’s ears. Sino-American diplomatic normalization, a big success of the Carter presidency, turned out to be an obstacle for Carter’s initiatives in not only Vietnam but also North Korea. Once giving in to the hardliners in his Cabinet to top Peking on his deck, Carter lost much of his original sense of initiative and failed to reconcile with both Hanoi and Pyongyang. Washington’s decision to place Peking as the top priority from mid-1978 to early 1979, thus, directly ended U.S. diplomatic efforts towards Hanoi and indirectly affected its on-going diplomatic attempts regarding Pyongyang.
This research concludes that apart from a set of important reasons that was partly discovered in the existed literature, including a combination of staffs with contentious ideas within the Carter administration, and the sudden change in the international context starting from late 1978, it was the U.S. inability to apprehend the historical experiences and ongoing dynamics among Vietnam-China-Korea that led to the ultimate failure of engagement policy with both Vietnam and North Korea. This process happened simultaneously with a diplomatic competition among three Asian Communist states in winning American attention and in the long-term, obtaining the improvement of relations with the U.S.
국문 초록 (Abstract)
이 연구에서는 1970년대 말 베트남, 북한, 중국 등 아시아의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카터 행정부의 정책을 미국의 대전략의 배경으로서 “중국 팩터(China factor)”이 작동했는지 여부를 중심으...
이 연구에서는 1970년대 말 베트남, 북한, 중국 등 아시아의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카터 행정부의 정책을 미국의 대전략의 배경으로서 “중국 팩터(China factor)”이 작동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특히 승인과 외교 정상화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과 이들 공산주의 국가가 어떤 시도와 실패를 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선 베트남과 북한과의 관계와 관련해 포드(Ford)와 카터(Carter) 행정부의 변화하는 외교 전략을 기술하였다. 다음으로 양국 관계의 개선에 대한 거부 또는 추진으로 귀결되었던 다양한 메커니즘을 조명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카터 행정부 후반부의 미-중 정상화와 “중국 팩터”의 역할에 주목했다. 이 연구는 강대국의 관점에 입각한 접근을 넘어서, 베트남과 공산주의 국가들의 1차 사료를 활용하여 정책에 대한 다양한 주체들의 인식과 대응을 조명하고자 했다.
월남의 패배에 이어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미국은 군사적 동맹과 미국의 책무에 대한 집착을 점차 넘어설 필요성을 느꼈다. 중국, 북한, 베트남의 3개 공산 정권이 지역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 상황에서, 지역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은 적대적 관계에 있는 국가들과의 경제적, 외교적 관계에 좀 더 중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러나 포드 행정부는 베트남과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을 펼치는 한편, 미-중 정상화의 추진에도 소극적이었다.
카터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아시아의 3개 공산 정권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계획을 신속하게 수립하고 추진했다. 베트남과의 관계에서, 미국 정부는 하노이에 특사단을 파견해 정상화 협상의 길을 열었다. 레너드 우드콕(Leonard Woodcock)의 방문에 이어 파리에서 세 차례의 협상이 이루어졌지만 원조 문제, 즉 미국의 전쟁 배상 문제로 인해 성과 없이 끝났다. 북한의 경우, 카터는 북한과의 외교 접촉을 시사하면서 남-북대화 재개 및 남북미 3자회담의 개최를 제안했다. 중국과의 관계는 대만과 소련을 둘러싼 교착상태로 인해 초기에는 정상화 협상이 비생산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카터 행정부의 외교정책 결정에 대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1978년 5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을 방문했고, 이후 회담은 전환점을 맞았다.
그 후 베트남과 북한에 관한 미국의 외교 정책의 방향은 중국의 시선을 고려하면서 조정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카터 행정부의 커다란 업적 중 하나인 미-중 외교정상화는 베트남과 북한에 대한 카터의 이니셔티브에 걸림돌이 되었다. 카터 대통령은 대 중국 정책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정부 내 강경파들과 타협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베트남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당초의 이니셔티브를 상실하게 되었다. 즉 1978년 중반에서 1979년 후반에 거쳐 중국과의 화해가 미국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됨에 따라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노력은 중단되었고, 북한과의 관계에서 진행 중이던 외교적 노력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카터 행정부가 베트남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결국 실패하게 된 이유는 카터 행정부 내의 의견 충돌이나 1978년 후반에 시작된 국제 정세의 급변 등 기존 연구에서 규명된 중요한 요인들 뿐 아니라 베트남-중국-북한 사이의 역사적, 역동적 관계에 대한 몰이해가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보았다. 이 과정은 미국의 주목을 받고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아시아의 3개 공산 정권의 외교적 경쟁이 이루어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목차 (Table of Contents)
1 신욱희, "『데탕트와 박정희』",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서울: 논형, 2011
2 홍석률, "『분당의 히스테리』", 파주: 창비, 2012
3 고재식, "“월남전쟁 이후의 전략(카터와 포드),”", 『신학연구』 27, 325- 334, 1986
4 박원곤, "“5.18 광주 민주화 항쟁과 미국의 대응,”", 『한국정치학회보』 45(5), 125-145, 2011
5 오정환, "『천년전쟁: 무릎꿇지 않는 베트남-중국』", 서울: 종문화사, 2017
6 박태균, "『베트남전쟁: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서울: 한겨레 출판, 2015
7 김형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지도력에 관한 소고,”", 『중앙사론』 18, 177-216, 2003
8 박인숙, "“카터행정부와 ‘봉쇄군사주의’의 승리,”", 『미국사연구』 27, 145-186, 2008
9 도미엔, "『베트남전쟁기 한반도와 베트남 관계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9
10 김진환, "“카터와 김일성만 찬성했던 주한미군 철수,”", 『민족』 21, 98- 103, 2010
1 신욱희, "『데탕트와 박정희』",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서울: 논형, 2011
2 홍석률, "『분당의 히스테리』", 파주: 창비, 2012
3 고재식, "“월남전쟁 이후의 전략(카터와 포드),”", 『신학연구』 27, 325- 334, 1986
4 박원곤, "“5.18 광주 민주화 항쟁과 미국의 대응,”", 『한국정치학회보』 45(5), 125-145, 2011
5 오정환, "『천년전쟁: 무릎꿇지 않는 베트남-중국』", 서울: 종문화사, 2017
6 박태균, "『베트남전쟁: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서울: 한겨레 출판, 2015
7 김형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지도력에 관한 소고,”", 『중앙사론』 18, 177-216, 2003
8 박인숙, "“카터행정부와 ‘봉쇄군사주의’의 승리,”", 『미국사연구』 27, 145-186, 2008
9 도미엔, "『베트남전쟁기 한반도와 베트남 관계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9
10 김진환, "“카터와 김일성만 찬성했던 주한미군 철수,”", 『민족』 21, 98- 103, 2010
11 이완범, "“카터의 남-북-미 3 자회담 제의, 1977~1979 년,”", 『한국민족운동사연구』 90, 417-526, 2017
12 김봉중, "“전환기의 미국외교와 카터 인권외교의 등장,”", 『미국사연구』 17, 213-237, 2003
13 마상윤, 박원곤, "“데탕트기의 한미갈등 – 닉슨, 카터와 박정희,”", 『역사비평』 113-139, 2009
14 유훈, "『카터 행정부의 세계전략과 주한미군 철수정책』",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2012
15 유인선, "『베트남과 그 이웃 중국: 양국관계의 어제와 오늘』", 파주: 창비, 2012
16 이완범, "『카터 시대의 남북한: 동맹의 위기와 민족의 갈등』",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7
17 홍석률, "“카터 행정부기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3 자회담,”", 『한국과 국제정치』 32(2), 33-71, 2016
18 김학준, "『북한 50 년사: 우리가 떠안아야 할 반쪽의 우리역사』", 서울: 동아출판사, 1995
19 옥태환, "“한반도 문제를 위요한 미행정부와 의회의 협력과 갈등,”", 『통일연구원 연구총서』 1- 113, 1998
20 박원곤, "『카터행정부의 대한정책 1977~1980 : 도덕외교의 적용과 타협』", 박사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8
21 박원곤, "“미국의 대한정책 1974~1975 년-포드 행정부의 동맹정책 전환,”", 신욱희. 『데탕트와 박정희』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서울: 논형. 69- 99, 2011
22 도미엔, "1975 년 베트남전 종전과 북한정부의 대응: 베트남자료를 중심으", ” 『이화사학연구』 48, 93-133, 2014
23 신종대, "“서울의 환호, 평양의 좌절과 대처: 서울올림픽과 남북관계, ”", 『동서연구』 3 (25), 71-110, 2013
24 박원곤, "“카터 행정부의 대한정책 – 10.26 을 전후한 도덕외교의 적용, ”", 『한국정치학회보』 43(2), 215-234, 2009
25 박원곤, "“1979 년 12.12 쿠데타와 카터 미 행정부의 대응 : 도덕외교의 타협,”", 『국제정치논총』 50(4), 81-102, 2010
26 엄정식, "“1979 년 카터 대통령의 남북미 3 자회담 추진과 박정희 정부의 인식,”", 『한국정치학회 보』 47(1), 243-259, 2013
27 박원곤, "“카터 행정부의 도덕주의 외교와 한국정책: 1979 년 카터 대통령 방한의 재해석”", 『미국학』 30, 23-52, 2007
28 엄정식, "『카터 행정부 시기 대한무기이전 정책의 변용 : 백곰 미사일의 개발과 F-5E/F 공동생산의 합의』", 박사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2
29 전호훤, "“미국의 대한(對韓) 군원정책 (1976-1980) 연구 – 카터행정부의 특징적인 정책내용을 중심으로,”", 『군사』 (66), 225-255, 2008
30 엄정식, "“미국 무기이전 정책의 한국 적용 – 카터 행정부 시기 주한미지상군 철수에 따른 장비이전 (1977~1978),”", 『군사』 (82), 275-303, 2012
31 조관행,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결정에 대한 연구 – 정책검토위원회와 국가안보회의의 논의를 중심의로,”", 『군사』 (94), 281-322, 2015
32 조관행,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지상군 철수결정 시 북한 군사력 평가에 관한 연구 – 국방부 및 군부의 평가 변화를 중심으로,”", 『군사』 (81), 261-295, 2011
33 조관행,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철수에 대한 미의회의 입장 변화에 관한 연구– 카터 행정부 출범이후 77 년 6 월 미상원의 본회의 전후룰 중심으로,”", 『군사』 (100), 303-330,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