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인 학문의 체계를 갖추게 된 일본 고고학은 초기부터 대만, 조선등의 식민지 고고학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시 일본 고고학에서 시작된 선사시대에대한 관심과...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7215703
2020
-
900
KCI등재
학술저널
461-482(22쪽)
0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인 학문의 체계를 갖추게 된 일본 고고학은 초기부터 대만, 조선등의 식민지 고고학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시 일본 고고학에서 시작된 선사시대에대한 관심과...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인 학문의 체계를 갖추게 된 일본 고고학은 초기부터 대만, 조선등의 식민지 고고학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시 일본 고고학에서 시작된 선사시대에대한 관심과 여러 학술적 논쟁들, 고분 발굴이 제한되어 있는 일본 고고학의 한계 등으로인해 대만과 조선은 일본 고고학에 있어 절호의 고고학 필드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일본 고고학은 동아시아에서 학문적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제국주의 고고학’과 식민지배의 정당성을확보하기 위한 ‘식민지 고고학’의 성격을 모두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고고학 조사는 대만과 식민지 조선에서 모습이 전혀 다르다. 조사의 결과는 식민지 고고학의 전형이지만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어 완전한 ‘타자’ 일수는없었던 식민지 조선, 역사적 관계가 전혀 없기에 결국은 일본의 관학 고고학에서 관심이 멀어지고 일반인의 조사가 중심을 이루게 된 대만 등, 당시 일본 고고학의 관심 및 일본 고고학이식민지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식민지 고고학의 모습이 결정된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의 제국주의 고고학의 전체 모습을 구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양성의 배경과 그 흐름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대만 고고학의 형성과정을 일본고고학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아 일본 제국주의 고고학, 식민지 고고학이 가지고 있던 다양성을 검토하였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Japan, a study of archaeology began as an independent discipline since the late 19th century, and from the beginning, took on imperialistic nature. From the formative years of archaeological study in Japan,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started in ...
In Japan, a study of archaeology began as an independent discipline since the late 19th century, and from the beginning, took on imperialistic nature. From the formative years of archaeological study in Japan,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started in the colonial Taiwan and Joseon, and these experiences had an immense influence on establishment of archaeological study in Japan. However, archaeological investigation of a colony showed widely different developments between Taiwan that had no historical link with Japan and Joseon that has forged a close historical tie with Japan since the ancient era. Since Taiwan became colonized by Japan in 1895,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by the Japanese began in Taiwan. It is noteworthy that the early investigations mostly focused on the stone ages in Taiwan and were conducted by ordinary people, not professional archaeologists. Also, the investigations did not delve deep enough to reach cultural interpretations, and remained at the level of merely introducing historic relics and sites. In the 1920s and afterwards, archaeological investigation in Taiwan began to drift away from the interest of Japanese imperialistic archaeology. However, the results of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conducted in Joseon greatly affected substance of archaeology in Japan, and even investigative methods, and the archaeological investigation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continued until Japan lost the war.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in Taiwan only aimed for efficiency of the colonial ruling, while it attempted to prove ‘historical view of colonialism’ in Joseon based on the historical ties, and these demonstrate diverse facets of imperial archaeology of Japan.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성주, "제국주의시대 고고학과 그 잔적" 한국대학박물관협회 (47) : 27-70, 1995
2 정인성, "일제강점기의 낙랑고고학" 한국상고사학회 71 (71): 149-170, 2011
3 이기성, "일제강점기‘금석병용기’에 대한 일고찰" 한국상고사학회 68 (68): 25-44, 2010
4 이기성, "일제강점기 ‘石器時代’의 조사와 인식" 한국고대학회 (33) : 5-30, 2010
5 이기성, "일제강점기 ‘古都’의 고적조사 - 초기 고적조사를 중심으로 -" 호서사학회 (79) : 1-39, 2016
6 이기성, "일본 제국주의 시기 고고학 조사의 다양성과 평가" 한국상고사학회 100 (100): 189-204, 2018
7 강인욱, "鳥居龍藏으로 본 일제강점기 한국 선사시대에 대한 이해" 2010
8 鳥居龍蔵, "鳥居龍蔵全集第十一巻" 朝日新聞社 1976
9 鳥居龍蔵, "鳥居龍蔵全集第十一巻" 朝日新聞社 1976
10 鳥居龍蔵, "鳥居龍蔵全集 第十一巻" 朝日新聞社 1976
1 이성주, "제국주의시대 고고학과 그 잔적" 한국대학박물관협회 (47) : 27-70, 1995
2 정인성, "일제강점기의 낙랑고고학" 한국상고사학회 71 (71): 149-170, 2011
3 이기성, "일제강점기‘금석병용기’에 대한 일고찰" 한국상고사학회 68 (68): 25-44, 2010
4 이기성, "일제강점기 ‘石器時代’의 조사와 인식" 한국고대학회 (33) : 5-30, 2010
5 이기성, "일제강점기 ‘古都’의 고적조사 - 초기 고적조사를 중심으로 -" 호서사학회 (79) : 1-39, 2016
6 이기성, "일본 제국주의 시기 고고학 조사의 다양성과 평가" 한국상고사학회 100 (100): 189-204, 2018
7 강인욱, "鳥居龍藏으로 본 일제강점기 한국 선사시대에 대한 이해" 2010
8 鳥居龍蔵, "鳥居龍蔵全集第十一巻" 朝日新聞社 1976
9 鳥居龍蔵, "鳥居龍蔵全集第十一巻" 朝日新聞社 1976
10 鳥居龍蔵, "鳥居龍蔵全集 第十一巻" 朝日新聞社 1976
11 松澤員子, "鳥居龍蔵の見たアジア" 1993
12 田中正太郎, "飛騨國ノ石皿" 6 (6): 1890
13 정인성, "關野貞의 낙랑유적 조사 ? 연구 재검토 - 일제강점기「古蹟調査」의 기억 1 -" 호남고고학회 24 : 139-156, 2006
14 伊能嘉矩, "論説及報告 臺灣通信(第十六回)" 12 (12): 1897
15 田中正太郎, "臺灣見聞録(緒言)" 12 (12): 1896
16 田中正太郎, "臺灣見聞録" 12 (12): 1896
17 宮原敦, "臺灣臺北圓山に於ける亘大なる砥石並に貝塚に就て" 34 (34): 1919
18 森丑之助, "臺灣に於ける石器時代遺跡に就て(上‧中‧下)" 1911
19 森丑之助, "臺灣に於ける石器時代遺跡に就て" 18 (18): 1902
20 佐藤傳藏, "臺北附近の石器時代遺跡" 16 (16): 1901
21 국립김해박물관, "石器時代 鳥居龍蔵調査 琉璃乾板" 2016
22 文部省, "百科全書 古物学"
23 今西龍, "朝鮮にて発見せる貝塚に就いて" 23 (23): 1907
24 鳥居龍蔵, "有史以前の日本" 1925
25 이기성, "早稲田大學에서 온 日本의 古代文化" 2010
26 勅使河原章, "日本考古学史 年表と解説" 1988
27 斎藤忠, "日本考古学史" 1974
28 勅使河原章, "日本考古学の歩み" 1995
29 東京帝国大学, "日本石器時代遺物發見地名表 第五版"
30 東京帝国大学, "日本石器時代人民遺物發見地名表 第四版"
31 東京帝国大学, "日本石器時代人民遺物發見地名表 第二版"
32 劉益昌, "日本学者の台湾考古学研究" 9 : 2013
33 坂誥秀一, "日本"植民地"等考古学覚書" 116 : 2002
34 鳥居龍蔵, "新高山地方に於ける過去及び現在の住民" 1 (1): 1900
35 石尾和仁, "島県立鳥居龍蔵記念博物館研究報告 1" 2013
36 濱田耕作, "宮崎縣西都原古墳調査報告書" 1917
37 宮崎県, "宮崎県西都原古墳調査報告書" 1917
38 宮崎県, "宮崎県史蹟調査報告書" 1918
39 宮崎県, "宮崎県兒湯郡西都原古墳調査報告" 1915
40 朝鮮總督府, "大正九年度古蹟調査報告第一冊 金海貝塚発掘調査報告" 1923
41 エドワルド‧エス‧モールス, "大森介墟古物編" 1 : 1879
42 台湾総督府内務局, "史蹟調査報告書第二輯" 1936
43 台湾総督府内務局, "史蹟調査報告書第一輯 北白川宮能久親王御遺跡" 1935
44 鹿野忠雄, "台灣石器時代遺物發見地名表(二)" 2 (2): 1929
45 鹿野忠雄, "台灣石器時代遺物發見地名表" 1 (1): 1929
46 金関丈夫, "台湾考古学研究簡史" 6 (6): 1950
47 国分直一, "台湾先史時代靴形石器考 靴形石器追考" 1972
48 小田静夫, "台湾先史時代遺跡の"発見"-台北市"円山貝塚"をめぐる調査史-" 30 : 2010
49 宮本延人, "台湾先史時代概説" 10 : 1939
50 八木裝三郎, "八木裝三郎君の朝鮮考古談" 1 (1): 1902
51 後藤守一, "先史時代の考古学" 1943
52 濱田耕作, "京都帝国大学文科大学考古学研究報告第二册" 1918
53 八木裝三郎, "中間土器(弥生式土器)の貝塚調査報告" 22 (22): 1907
54 鳥居龍蔵, "ある老学徒の手記 考古学とともに六十年光" 朝日新聞社 1953
55 移川子之蔵, "「パツ」を繞る太平洋文化交涉問題と台湾で発見された類似石器に就て" 1 : 1934
56 Chang, Kwang-Chih, "Prehistoric Archaeology of Taiwan" 13 : 1970
57 William Chambers, "Chambers's Information for the People" 1849
58 Trigger, B., "Alternatives Archaeologies:nationalist, colonialist, imperialist" 19 : 1978
59 Wu, David Yen-Ho, "A Short History of Archaeological Studies in Taiwan from 1895~1949" 12 : 1969
통일신라시대 불국사 건축과 중심불전의 주존불상에 관한 화엄교의적 고찰
문화유산 디지털지도체계 구축을 위한 제언 : 북한(평양)지역 및 청주시 대상의 시범형 구축 경험을 기초로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11-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6 | 0.6 | 0.7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3 | 0.59 | 1.723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