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국경은 여진족을 접하는 두만강 일대, 중국과의 경계인 압록강 일대, 일본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동래부 등을 지칭하였다. 국경 지역 중에 동래부의 가장 큰 특징은 일본인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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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Korean
왜관 ; 사량진왜변 ; 단일왜관 ; 부산포 ; 동래부 ; 개시 ; Waegwan ; Busan’s single Waegwan ; The Japanese riots in Saryangjin ; Dongnaebu ; Open market
KCI등재
학술저널
83-125(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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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경은 여진족을 접하는 두만강 일대, 중국과의 경계인 압록강 일대, 일본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동래부 등을 지칭하였다. 국경 지역 중에 동래부의 가장 큰 특징은 일본인 거...
조선시대 국경은 여진족을 접하는 두만강 일대, 중국과의 경계인 압록강 일대, 일본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동래부 등을 지칭하였다. 국경 지역 중에 동래부의 가장 큰 특징은 일본인 거주지가 관할 구역 내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왜관이라고 불리는 일본인 거주지가 1407년 조성되기 시작한 이래 1876년 근대 개항까지 존속되었다. 더욱이 왜관은 조선 남해안의 세 포구에 각각 있다가 1544년 사량진왜변을 계기로 부산포 한 곳에만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부산 단일 왜관 형성을 임진왜란 이후의 시기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16세기에 잦은 왜변으로 부산포왜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으리라는 가정이었다. 그러나 왜관의 역할은 계속되고, 왜관주변의 조선인 역시 일본인과의 교류를 지속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교류의 양태는 임진왜란 직후, 양국 國交가 공식적으로 재개되기 전에 開市가 승인되는 계기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제포왜관을 열어달라는 일본 측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는 부산포에만 왜관을 둠으로써 동래 사람들은 일본인과의 교류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특히 그 물자를 교환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市場을 통해 동래 사람들과 왜관의 일본인들은 일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borders of Joseon Dynasty consisted of the whole area of Dumangang neighboring the Jurchen people in Manchuria, the whole area of Amnokgang which borders on China, and Dongnaebu which was located across the sea and Japan. Among these areas of bord...
The borders of Joseon Dynasty consisted of the whole area of Dumangang neighboring the Jurchen people in Manchuria, the whole area of Amnokgang which borders on China, and Dongnaebu which was located across the sea and Japan. Among these areas of border lines, Dongnaebu was special in that the residence for the people of the neighboring country, Japan, in this case, was located within the jurisdiction. Japanese residence, called Waegwan, was first established in 1407 and continued to function until Joseon’s opening of ports to the modern world in 1876. Of course, there were times when Waegwan was shut down due to Japanese invasions and riots. Waegwan existed in three southern ports, but the Japanese riots in Saryangjin caused two of them to shut down leaving one in Busanpo. Accordingly, Japanese people who lived in the other two ports moved to Busanpo Waegwan and the Joseon people who engaged in trading crowded around Busanpo as well.
Existing studies have emphasized the formation of Busan’s single Waegwan to the era after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in 1592. This position is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Busanpo Waegwan could not have functioned properly because of frequent Japanese riots during the 16th century. However, The role of Waegwan continued to be important, which enabled Joseon people near Waegwan continue to advance exchanges with the Japanese people. this pattern of exchange between Joseon and Japan seems to have provided the opportunity to approve an open market prior to the official resumption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o two countries after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in 1592. Besides, despite Japan’s persistent request for opening Jaepo Waegwan, the Joseon officials only allowed one Waegwan in Busanpo, which allowed the people of Dongnae to continue their exchanges with the Japanese people. In particular, the people of Dongnae and the Japanese residing in Waegwan were able to maintain daily relationship through a market where commodities were exchanged and information shared.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효종실록"
2 "중종실록"
3 무라이 쇼스케, "중세 왜인의 세계" 소화 1998
4 장순순, "조선후기 왜관의 설치와 이관교섭" 5 : 1996
5 양흥숙, "조선후기 동래 지역과 지역민 동향 : 왜관 교류를 중심으로" 부산대 2009
6 정성일, "조선후기 대일무역에 참가한 상고도중의 규모와 활동" 8 : 1998
7 정성일, "조선후기 대일무역" 신서원 2000
8 김동철, "조선 후기 倭館開市貿易과 東萊商人" 21 : 1998
9 하우봉, "조선 전기 부산과 대마도의 관계" 부산경남사학회 (74) : 153-187, 2010
10 김기섭, "일본 고중세 문헌 속의 한일관계사료집성" 혜안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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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김기섭, "일본 고중세 문헌 속의 한일관계사료집성" 혜안 2005
11 "인조실록"
12 "승정원일기"
13 "세종실록"
14 "성종실록"
15 "선조실록"
16 "비변사등록"
17 "명종실록"
18 "광해군일기"
19 차철욱, "개항기 부산항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관계 형성" 한국학연구소 (26) : 7-43, 2012
20 "邊例集要"
21 田代和生, "近世日朝通交貿易史の硏究" 創文社 1981
22 小田幾五郞, "草梁話集"
23 "繡啓(『各司謄錄』49,경상도보유편 Ⅰ)"
24 金堉, "潛谷遺稿"
25 "東萊府誌"
26 "東萊事例"
27 權以鎭, "有懷堂集"
28 "春官志"
29 "增正交隣志"
30 "國朝寶鑑"
31 김의환, "千寬宇先生還曆紀念 韓國史學論叢" 1985
32 국사편찬위원회, "分類紀事大綱Ⅰ"
33 "典客司日記"
34 "典客司別謄錄"
35 "倭人求請謄錄"
36 김동철, "17~19세기 부산 왜관의 開市와 朝市" 한일관계사학회 (41) : 223-262, 2012
37 윤용출, "17세기 중엽 두모포 왜관의 이전 교섭" 13 : 1999
38 양흥숙, "17세기 두모포왜관의 경관과 변화" 부경역사연구소 (15) : 165-196, 2004
39 김동철, "15세기 부산포왜관에서 한일 양국민의 교류와 생활" 부경역사연구소 (22) : 27-56, 2008
학술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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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2005-05-30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한일관계사학회 -> 한일관계사연구 | ![]()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2003-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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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5 | 1.5 | 1.3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17 | 1.09 | 1.872 | 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