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원 남창에 소장된 가위는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사례와 크기, 형태, 기능면에서 거의 동일하며 신라제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후 중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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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정창원 남창에 소장된 가위는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사례와 크기, 형태, 기능면에서 거의 동일하며 신라제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후 중국에서...
정창원 남창에 소장된 가위는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사례와 크기, 형태, 기능면에서 거의 동일하며 신라제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후 중국에서 이와 유사한가위가 발견되어도 여전히 신라제품이라고 강하게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본문은 필자가 제기한 세 가지 질문, 즉 정창원 가위의 제작지, 전래과정, 상징성에 대한 답을 추적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정창원 가위의 제작지에 대해서는 가위 자체의 기능과 정창원 가위만의 특수한 기능이라는 두 가지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을 진행하였다. 우선 가위 자체의 기능은 기존의 연구방법과는 달리 가위전체로 연구대상을 넓혔으며, 『일본서기』 등 문헌기록들도 비교자료로 활용하였다. 그 결과, 8세기대까지 일본의 가위는 백제에서 정식으로 파견된 재봉사가 들고 간 가위와 한반도 도래인의 가위 등 한반도 가위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정창원 가위만의 기능, 다시 말해 초 심지를 자른 기능에 초점을 맞춘 결과, 7세기 중반까지 일본에서는 양봉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밀납초 생산이 불가능하였으며 더나아가 8세기 중반에이르러서도 일본은 여전히 신라로부터 촛대, 밀납 등 밀납초와 등잔을 구매한 사실을 주목하였다. 결국, 8세기대 신라로부터 밀납초, 촛대를 구매한 일본은 이들과 세트를 이룬 심지 제거용 가위 역시 신라로부터 수입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정창원 가위는 신라제품인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다음으로는 신라 가위가 언제, 어떤 경로로 동대사로 들어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전래과정을 고찰하였다. 필자는 752년 전무후무한 대규모 신라사절단이 일본을 방문한 이유 중 하나로 제기된 동대사 노사나대불의개안식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기존 학설과는 달리 신라사절단은 대불개안식당일이 아닌 두 달이 지난 후 동대사를 방문하였던 사실을 발견하였으며, 신라사절단이 개안식에 참석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방문한 이유를 추적하는데 주력하였다.
추적 결과 752년 신라사절단이 방문한 동대사는 완공된 사찰이 아니라 각종 건물들의 공사가 절정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필자는 건물공사가 절정에 이른 동대사는 각종 자재, 용품들을 대량으로 필요로 하였을 것이며, 신라는 물품을 공급하기 위해신라물건을 가지고 갔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정창원의 가위 역시 당시 조동대사사가 구매한 신라물품 속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마지막 장에서는 가위가 정창원 남창에 보관된 이유와 상징하는 의미를 추적하였다. 필자는 기존 학계에서 남창에 보관된 물품들은 북창의 성무천황의 유품과는 의미가 달리 성무천황과 관련이 없다는 견해에 강한 의문을 던지면서 이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고대 동아시아에서 가위는 여성, 더나아가 음양사상의 陰사상을 내포한 사실을알게 되었다. 그리고 음양사상은 북창에 소장된 성무천황의 유품에서도 강하게 확인되었으며 더나아가 음양사상은 도교사상과 결부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도교사상은 고대 동아시아 무덤에서 사후세계관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필자는 이러한 개념과 발맞추어 정창원 가위는 촛불과 세트를 이루는 물건이 ...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mong the various Silla treasures stored in the Shosoin正倉院, a particular item attracts more attention than all the others, they are scissors. This relic is remarkably similar to the scissors excavated at the Wolji月池 Site in Gyeongju in form,...
Among the various Silla treasures stored in the Shosoin正倉院, a particular item attracts more attention than all the others, they are scissors. This relic is remarkably similar to the scissors excavated at the Wolji月池 Site in Gyeongju in form, size and function and is directly connected with Silla. However, I ask a question that could someone who believes that it is continue to maintain his or her opinion even after the discovery of a similar artifact in China? The main discussion of this paper will be focused on the following three questions that were presented by me. First, are the scissors a Silla artifact? Second, if it is, when and how was it collected by Todaiji? Finally, how did the scissors come to be stored in the Shosoin? Ⅰ. Are the scissors a Silla product? In this chapter, I traced the place of producing the Shosoin scissors. One may now conclude on the form and function of the Shosoin scissors, the ancient textual sources related with the scissors like the Nihon Shoki日本 書紀 and the “List of Procurements from Silla買新羅物解”, and the archaeological discovery of scissors across East Asia that the Shosoin wick trimmer was made in Silla before it was exported to Japan. Ⅱ. When and by what route did the scissors reach Todaiji? Based on the “List of Procurements from Silla買新羅物解”, Shoku Nihongi續日本記 and documents that are now stored in the Shosoins, one notable fact is that it was not on the day that the eye-opening ceremony took place that the Silla envoys visited Todaiji東大寺, but rather on the twenty-second day of the sixth month, some two months after the ceremony was held. And the records in the Shosoin documents suggest that the Silla envoys of 752 had planned to visit Todaiji even before they departed from Korea and prepared the gifts that is to say three Buddhist scriptures I have found that when the Silla envoys visited Todaiji, many of its main facilitieswere still in the process of construction. I believe that this offers a plausible explanation for Silla to organize such a large mission, although they knew that they would not be able to participate in the ceremony of opening the eyes of the Great Buddha. In conclusion, it is highly possible that the candlewick trimmer stored in the Shosoin was obtained together with other Silla artifacts from the Silla envoys who visited Todaiji in 752. Why were the scissrosers stored in the Shosoin? This question may be answered by studying the function of scissors in general and the implement used for the particular purpose of cutting and trimming the wicks of candles. The idea that scissors are connected with women and, going further, the principle of yin might have been accepted by the Japanese in the eighth century. And the idea of yin and yang has generally been connected with Daoism. It is highly probable that, looking at the candlewick trimmer from the perspective discussed so far, all the personal items treasured by Emperor Shomu, including the trimmer, were placed in the imperial storehouse at the end of his funeral at Todaiji. One can safely conclude, then, that the candle, candlestick and wick trimmer used at the funerary rite for Emperor Shomu were closely connected with the belief in the afterlife maintained in Korea and China, as well as in Japan, and with the tradition of expressing the wishes of the living for the deceased’s safe journey to and peaceful rest in the next world. The ritual objects, particularly the candle and wick trimmer, used at the rites held to honor Emperor Shomu must have been closely connected with the emperor’s daily life after his death, suggesting that the wick trimmer was stored in the storeroom of the Shosoin simply because it was no longer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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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철기-원삼국시대 구슬 해상교역과 환황해권 정치 경관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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