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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1965년 ‘평화선’의 발단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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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945년 민간인의 해방과 본국 귀환의 움직임, 1948년 한국정부의 일본어선 나포 개시, 1952년 1월 ‘평화선’ 선포, 1965년 6월 한일 어업협정 체결을 주된 내용으로 하여, 해방후 20년간에 걸친 해양주권 국가건설 과정을 외교교섭 측면과 민간인 동향 측면에서 기술하고자 한다. 서론과 제1장에서 제6장까지의 본론, 그리고 결론 순으로 단행본을 엮을 예정이다.
    서론에서는 넓은 시야에서 해양 주권을 둘러싼 식민지 종주국과 신생 국가 사이의 정책 차이로 보아야 한다는 논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대체로 ‘평화선’ 문제를 이승만 대통령의 개인 리더십 측면에서 보고자 하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구조적인 접근을 보다 중요시 하고자 한다. ‘평화선’ 정책은 국가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정치적 지도자라면 대체로 내놓았을 정책이라는 점이다. 다만 이때 독도를 ‘평화선’ 내부에 끌어들이는 문제와 함께, 외국인수용소에 외국인(일본인) 어민을 1년 이상 억류한 일이나 그렇다고 하여 이들이 중노동에 처한 일이 없이 대체로 ‘평온’한 수용소 생활을 보내게 했던 일은 구조적 문제로 보기 어렵다. 종래의 관행을 유지하고자 하는 일본의 수산업자에 대해 신생 한국 정부가 주권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를 밝힘과 동시에, 국가 논리와 인간 생존 논리가 상호 충돌하면서 비극을 빚어낸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논하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식민지 해방과 국가 독립에 관한 일본인 어민과 한국인 어민과의 인식 차이를 설명하고 이러한 민간 인식의 차이가 국가 정책 측면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논하고자 한다. 과거 조선총독부 체제 하에서 관리되던 어족자원 보호에 대한 입장이 식민지 해방 이후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언급한다.
    제2장에서는 부산수용소의 발단과 배경을 논하고자 한다. 해방직후 한반도 거주 일본인의 체계적인 본국 귀환과 민간인 권익 보호를 위해 탄생한 일본인세화회는 미군 점령기 내내 일본인의 보호를 위해 활동한다. 미군에 대한 협조 이면에는 맥아더라인 안에서 일본인 어민을 비롯한 어족자원에 대한 보호 움직임도 강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제3장에서는 한국정부의 ‘평화선’ 선포에 이르는 정책결정 과정과 함께, 일본어선 나포에 이르는 과정을 밝히고자 한다. ‘평화선’ 선포 이후 일본어선의 나포 상황과 일본어민의 억류 통계를 분명히 하고, 이들을 외교적인 카드로 하여 한일회담의 청구권 교섭에서 유리한 입장을 견지하고자 하는 한일 양국의 외교를 분석한다.
    제4장에서는 부산수용소에 억류된 일본인 어민 문제에 대해 한국과 일본에서 어민 관련 단체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우선 일본인 어선 나포를 강력하게 주장하여 여론을 이끌어내는 한국의 움직임과 한국인에 대한 배척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일본의 움직임을 밝히고자 한다.
    제5장에서는 제4차 한일회담 재개의 계기가 된 1957년 상호석방 각서 교환이 실질적으로 외교관계와 억류 피해자 문제에 대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논하고자 한다. 이 장의 내용에 대해서는 본 연구자의 논문이 최근에 나왔는데, 상호각서의 실행과정과 효과에 관한 연구를 보완하여 저술하고자 한다.
    제6장에서는 1958년부터 1965년에 이르기까지 어업협정의 변화과정을 조사하여 결과적으로 ‘평화선’이 철폐되고 어업협정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어업협정 막판의 우여곡절 과정을 제6차 회담 자료를 통해 어업· ‘평화선’ 전문가 교섭을 통해서, 그리고 제7차 회담 자료를 분석하여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13년간 이상에 걸친 ‘평화선’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를 논하고자 한다. 여기서 한국의 ‘평화선’이 어족자원이 보호라는 명분 아래 일본인에 대한 국민적 혐오를 조장하고,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억류 일본인 어민을 현실을 간과하고 한국인에 대한 혐오를 극대화 하는 부조리가 발생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1950년대에 일본인 억류피해자 단체와 일본정부가 주장해 온 일본인 어민의 한국 억류 현실과 함께, 일본의 시민단체와 한국정부가 문제시 했던 재일한인의 일본 억류 현실이 존재했음을 언급하고자 하며, 청구권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외교적 공방 속에 비인도적 측면의 민간인 억류 실태가 가려져 있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끝으로 이 연구서는 국문과 영문의 요약문과 참고문헌을 정리하여 제시함으로써 ‘평화선’ 연구에 관한 인프라를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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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민간인의 해방과 본국 귀환의 움직임, 1948년 한국정부의 일본어선 나포 개시, 1952년 1월 ‘평화선’ 선포, 1965년 6월 한일 어업협정 체결을 주된 내용으로 하여, 해방후 20년간에 걸친 해...

    1945년 민간인의 해방과 본국 귀환의 움직임, 1948년 한국정부의 일본어선 나포 개시, 1952년 1월 ‘평화선’ 선포, 1965년 6월 한일 어업협정 체결을 주된 내용으로 하여, 해방후 20년간에 걸친 해양주권 국가건설 과정을 외교교섭 측면과 민간인 동향 측면에서 기술하고자 한다. 서론과 제1장에서 제6장까지의 본론, 그리고 결론 순으로 단행본을 엮을 예정이다.
    서론에서는 넓은 시야에서 해양 주권을 둘러싼 식민지 종주국과 신생 국가 사이의 정책 차이로 보아야 한다는 논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대체로 ‘평화선’ 문제를 이승만 대통령의 개인 리더십 측면에서 보고자 하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구조적인 접근을 보다 중요시 하고자 한다. ‘평화선’ 정책은 국가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정치적 지도자라면 대체로 내놓았을 정책이라는 점이다. 다만 이때 독도를 ‘평화선’ 내부에 끌어들이는 문제와 함께, 외국인수용소에 외국인(일본인) 어민을 1년 이상 억류한 일이나 그렇다고 하여 이들이 중노동에 처한 일이 없이 대체로 ‘평온’한 수용소 생활을 보내게 했던 일은 구조적 문제로 보기 어렵다. 종래의 관행을 유지하고자 하는 일본의 수산업자에 대해 신생 한국 정부가 주권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를 밝힘과 동시에, 국가 논리와 인간 생존 논리가 상호 충돌하면서 비극을 빚어낸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논하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식민지 해방과 국가 독립에 관한 일본인 어민과 한국인 어민과의 인식 차이를 설명하고 이러한 민간 인식의 차이가 국가 정책 측면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논하고자 한다. 과거 조선총독부 체제 하에서 관리되던 어족자원 보호에 대한 입장이 식민지 해방 이후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언급한다.
    제2장에서는 부산수용소의 발단과 배경을 논하고자 한다. 해방직후 한반도 거주 일본인의 체계적인 본국 귀환과 민간인 권익 보호를 위해 탄생한 일본인세화회는 미군 점령기 내내 일본인의 보호를 위해 활동한다. 미군에 대한 협조 이면에는 맥아더라인 안에서 일본인 어민을 비롯한 어족자원에 대한 보호 움직임도 강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제3장에서는 한국정부의 ‘평화선’ 선포에 이르는 정책결정 과정과 함께, 일본어선 나포에 이르는 과정을 밝히고자 한다. ‘평화선’ 선포 이후 일본어선의 나포 상황과 일본어민의 억류 통계를 분명히 하고, 이들을 외교적인 카드로 하여 한일회담의 청구권 교섭에서 유리한 입장을 견지하고자 하는 한일 양국의 외교를 분석한다.
    제4장에서는 부산수용소에 억류된 일본인 어민 문제에 대해 한국과 일본에서 어민 관련 단체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우선 일본인 어선 나포를 강력하게 주장하여 여론을 이끌어내는 한국의 움직임과 한국인에 대한 배척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일본의 움직임을 밝히고자 한다.
    제5장에서는 제4차 한일회담 재개의 계기가 된 1957년 상호석방 각서 교환이 실질적으로 외교관계와 억류 피해자 문제에 대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논하고자 한다. 이 장의 내용에 대해서는 본 연구자의 논문이 최근에 나왔는데, 상호각서의 실행과정과 효과에 관한 연구를 보완하여 저술하고자 한다.
    제6장에서는 1958년부터 1965년에 이르기까지 어업협정의 변화과정을 조사하여 결과적으로 ‘평화선’이 철폐되고 어업협정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어업협정 막판의 우여곡절 과정을 제6차 회담 자료를 통해 어업· ‘평화선’ 전문가 교섭을 통해서, 그리고 제7차 회담 자료를 분석하여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13년간 이상에 걸친 ‘평화선’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를 논하고자 한다. 여기서 한국의 ‘평화선’이 어족자원이 보호라는 명분 아래 일본인에 대한 국민적 혐오를 조장하고,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억류 일본인 어민을 현실을 간과하고 한국인에 대한 혐오를 극대화 하는 부조리가 발생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1950년대에 일본인 억류피해자 단체와 일본정부가 주장해 온 일본인 어민의 한국 억류 현실과 함께, 일본의 시민단체와 한국정부가 문제시 했던 재일한인의 일본 억류 현실이 존재했음을 언급하고자 하며, 청구권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외교적 공방 속에 비인도적 측면의 민간인 억류 실태가 가려져 있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끝으로 이 연구서는 국문과 영문의 요약문과 참고문헌을 정리하여 제시함으로써 ‘평화선’ 연구에 관한 인프라를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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