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원불교 영산성지 내에 있는 정관평을 산에서 내려다본 보습이다. 당시 혹독한 일제시대에 원불교도들은 5만 평이나 되는 땅이 아닌 곳을 개간하여 새로운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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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원불교 영산성지 내에 있는 정관평을 산에서 내려다본 보습이다. 당시 혹독한 일제시대에 원불교도들은 5만 평이나 되는 땅이 아닌 곳을 개간하여 새로운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열...
이 사진은 원불교 영산성지 내에 있는 정관평을 산에서 내려다본 보습이다. 당시 혹독한 일제시대에 원불교도들은 5만 평이나 되는 땅이 아닌 곳을 개간하여 새로운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열망했다. 그러므로 이곳은 여전히 원불교도들의 성지이다.
전남 영광은 예로부터 조창이 있었고 쌀·소금·굴비 생산이 많아 ‘삼백고’,‘옥당골’로 불렸던 곳. 특산물과 ‘먹을 것’이 풍부했던 만큼 이 것들을 진상해 출세하려는 관리들이 다투�...
전남 영광은 예로부터 조창이 있었고 쌀·소금·굴비 생산이 많아 ‘삼백고’,‘옥당골’로 불렸던 곳. 특산물과 ‘먹을 것’이 풍부했던 만큼 이 것들을 진상해 출세하려는 관리들이 다투어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6·25전쟁중에는 민간인이 2만 1000명이나 사망했고 전국에서 부녀자와 어린이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넓은 지역이다. 이에 비해 지금의 영산 성지가 있는 길룡리 일대는 대대로 궁벽산촌이었고 지금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성지에서 동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선진포에서 법성포까지 배를 이용해 다닐 만큼 바닷물이 성지 인근까지 들어왔고 성지 앞은 개펄지대였다. 소태산 대종사가 대각후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바로 바닷물을 막아 이 개펄을 농토로 만든 간척사업인 방언공사다. 제자들과 함께 2차례에 걸친 공사 끝에 모두 5만평 200마지기의 논·밭을 일구었다고 한다. 이른바 정관평으로, 중국 당태종의 연호인 정관에서 따 평화 안락한 낙원세계 건설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대종사는 정관평 간척사업을 하면서 저축조합을 운영했는데 이 저축조합을 독립운동 자금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한 일경들에게 붙들려 수감되는 등 숱한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지금 이 정관평 논·밭 가운데 130마지기는 원불교 교무들이,70마지기는 주민들이 나누어 경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