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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척전>의 창작 배경과 열녀 담론 = Background of Choecheokjeon and the discourse on virtuous women in Choecheok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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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t is difficult to say that Choecheok in Gukdangbaeeo is the same person as Choe Cheok in Choecheokjeon. The postscript of Choecheokjeon is likely fictitious. Moreover, the relationship between Hongdo and Choecheokjeon can be defined as literature succession. Considering each character’s name in Hongdo and Choecheokjeon, the reasonability of narration, etc., it is reasonable to say that Jo Wihan wrote Choecheokjeon by rewriting Hongdo.
      In Jechoecheokjeon, Yi Minseong wrote, “a scholar in Sangsan at that time said he wrote Choecheokjeon by himself.” Jo Wihan came to Hanyang to attend the funeral of his eldest brother, Jo Gyehan. He then went to Sangsan with his younger brother Jo Chanhan, the governor of Sangsan. ‘A scholar in Sangsan’ described in Jechoecheokjeon confirms that Jo Wihan was in Sangsan at that time. Jo Wihan stayed in Sangsan between 1622 and 1623, thus meaning that Jo Wihan wrote Choecheokjeon between 1622~1623. However, the postscript of Choecheokjeon states that Jo Wihan wrote Choecheokjeon in Jupo, Namwon, in 1621. This record needs to be revised.
      The main reason why Jo Wihan wrote Choecheokjeon essentially by using Isaenggyujangjeon, Manboksajeopogi, and Hongdo is to describe the heroine Okyoung as a virtuous woman who came back alive from enemies. Meanwhile, the story of Okyoung is similar to the story of Jo Chanhan’s wife, Yussi, who helped her husband escape from the camp besieged by enemies during the Jeongyu War and killed herself. Although Jo Wihan wrote Choecheokjeon to express his sympathy to this couple, he failed to be free from the conservative idea that chastity must be maintained, even in inevitable and special situations lik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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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 is difficult to say that Choecheok in Gukdangbaeeo is the same person as Choe Cheok in Choecheokjeon. The postscript of Choecheokjeon is likely fictitious. Moreover, the relationship between Hongdo and Choecheokjeon can be defined as literature suc...

      It is difficult to say that Choecheok in Gukdangbaeeo is the same person as Choe Cheok in Choecheokjeon. The postscript of Choecheokjeon is likely fictitious. Moreover, the relationship between Hongdo and Choecheokjeon can be defined as literature succession. Considering each character’s name in Hongdo and Choecheokjeon, the reasonability of narration, etc., it is reasonable to say that Jo Wihan wrote Choecheokjeon by rewriting Hongdo.
      In Jechoecheokjeon, Yi Minseong wrote, “a scholar in Sangsan at that time said he wrote Choecheokjeon by himself.” Jo Wihan came to Hanyang to attend the funeral of his eldest brother, Jo Gyehan. He then went to Sangsan with his younger brother Jo Chanhan, the governor of Sangsan. ‘A scholar in Sangsan’ described in Jechoecheokjeon confirms that Jo Wihan was in Sangsan at that time. Jo Wihan stayed in Sangsan between 1622 and 1623, thus meaning that Jo Wihan wrote Choecheokjeon between 1622~1623. However, the postscript of Choecheokjeon states that Jo Wihan wrote Choecheokjeon in Jupo, Namwon, in 1621. This record needs to be revised.
      The main reason why Jo Wihan wrote Choecheokjeon essentially by using Isaenggyujangjeon, Manboksajeopogi, and Hongdo is to describe the heroine Okyoung as a virtuous woman who came back alive from enemies. Meanwhile, the story of Okyoung is similar to the story of Jo Chanhan’s wife, Yussi, who helped her husband escape from the camp besieged by enemies during the Jeongyu War and killed herself. Although Jo Wihan wrote Choecheokjeon to express his sympathy to this couple, he failed to be free from the conservative idea that chastity must be maintained, even in inevitable and special situations lik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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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菊堂排語』에 나오는 崔陟은 <최척전>의 최척과 동일인으로 보기 어려우며, <최척전>의 後識는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또 <紅桃>와 <최척전> 사이에는 문헌 전승에 의한 영향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한데, <홍도>와 <최척전> 간의 인명 표기, 서사의 합리성 등을 고려한다면, 조위한이 <홍도>를 변용하여 <최척전>을 창작했다고 보아야 한다.
      李民宬은 <題崔陟傳>에서 ‘당시 商山의 어떤 士人이 스스로 <최척전>을 지었다고 말했다’고 썼다. 趙緯韓은 1622년에 맏형 趙繼韓의 訃音을 듣고 上京했다가 商山 牧使였던 아우 趙纘韓과 함께 商山으로 갔다. 그렇다면 <제최척전>에서 말한 ‘상산의 사인’은 결국 ‘상산에 가 있었던 조위한’을 가리키는 것인데, 조위한이 상산에 있었던 시기는 1622~1623년이다. 이로써 볼 때, <제최척전>의 언급은 결국 조위한이 1622~1623년에 <최척전>을 지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바, 그간 <최척전> 後識에 의거, 조위한이 1621년에 南原의 周浦에서 <최척전>을 창작했다고 본 견해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조위한이 <李生窺墻傳>․<萬福寺摴蒱記>․<홍도>를 활용하여 <최척전>을 창작한 주된 이유는, 여주인공 玉英을 ‘賊의 수중에 떨어졌다가 살아 돌아온 烈女’로 형상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옥영의 이야기는, 丁酉再亂 때 남편 조찬한을 적의 포위망에서 벗어나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柳氏의 이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위한은 조찬한․유씨 부부에 대한 연민 때문에 <최척전>을 지었지만, 그 역시 전란이라는 특수하고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정절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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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菊堂排語』에 나오는 崔陟은 <최척전>의 최척과 동일인으로 보기 어려우며, <최척전>의 後識는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또 <紅桃>와 <최척전> 사이에는 문헌 전승에 의한 ...

      『菊堂排語』에 나오는 崔陟은 <최척전>의 최척과 동일인으로 보기 어려우며, <최척전>의 後識는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또 <紅桃>와 <최척전> 사이에는 문헌 전승에 의한 영향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한데, <홍도>와 <최척전> 간의 인명 표기, 서사의 합리성 등을 고려한다면, 조위한이 <홍도>를 변용하여 <최척전>을 창작했다고 보아야 한다.
      李民宬은 <題崔陟傳>에서 ‘당시 商山의 어떤 士人이 스스로 <최척전>을 지었다고 말했다’고 썼다. 趙緯韓은 1622년에 맏형 趙繼韓의 訃音을 듣고 上京했다가 商山 牧使였던 아우 趙纘韓과 함께 商山으로 갔다. 그렇다면 <제최척전>에서 말한 ‘상산의 사인’은 결국 ‘상산에 가 있었던 조위한’을 가리키는 것인데, 조위한이 상산에 있었던 시기는 1622~1623년이다. 이로써 볼 때, <제최척전>의 언급은 결국 조위한이 1622~1623년에 <최척전>을 지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바, 그간 <최척전> 後識에 의거, 조위한이 1621년에 南原의 周浦에서 <최척전>을 창작했다고 본 견해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조위한이 <李生窺墻傳>․<萬福寺摴蒱記>․<홍도>를 활용하여 <최척전>을 창작한 주된 이유는, 여주인공 玉英을 ‘賊의 수중에 떨어졌다가 살아 돌아온 烈女’로 형상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옥영의 이야기는, 丁酉再亂 때 남편 조찬한을 적의 포위망에서 벗어나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柳氏의 이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위한은 조찬한․유씨 부부에 대한 연민 때문에 <최척전>을 지었지만, 그 역시 전란이라는 특수하고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정절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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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李民寏, "李民寏" 민족문화추진회 1992

      2 장효현, "형성기 고전소설의 현실성과 낭만성 문제" 10 : 113-135, 1997

      3 박재연, "한문필사본 <金英哲傳>"

      4 엄태식, "한문필사본 <崔陟傳>"

      5 박희병, "한국한문소설 교합구해" 소명출판 115-451, 2005

      6 "한국고전종합DB"

      7 김기동, "한국고전소설연구" 교학연구사 1-258, 1983

      8 양승민, "최척전의 창작동인과 소통과정" 한국고소설학회 9 : 67-113, 2000

      9 김재수, "최척전의 소설화 과정" 광주교육대학 26 : 1-29, 1985

      10 김문희, "최척전의 가족 지향성 연구" 한국고전연구학회 6 : 178-18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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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엄태식, "한문필사본 <崔陟傳>"

      5 박희병, "한국한문소설 교합구해" 소명출판 115-451, 2005

      6 "한국고전종합DB"

      7 김기동, "한국고전소설연구" 교학연구사 1-258,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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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오춘택, "17세기의 소설비평"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연구회 35 : 1-255,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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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장경남, "17세기 열녀 담론과 소설적 대응" 민족문학사학회 47 (47): 108-137, 2011

      62 황윤실, "17세기 애정전기소설에 나타난 여성주체의 욕망발현 양상" 한양대학교 대학원 2000

      63 이상구, "17세기 애정전기소설" 월인 1-324, 1999

      64 정환국, "17세기 애정류 한문소설 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00

      65 최기숙, "17세기 고소설에 나타난 여성 인물의 유랑과 축출, 그리고 귀환의 서사" 한국고전문학회 (38) : 37-7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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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2-15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Korean Classical Woman Literature Studies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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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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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92 0.92 0.9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4 0.99 2.523 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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