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의 지시적 의미론 비판 연구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G3668367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대부분의 학자들은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 서로 화해될 수 없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견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첫번째, 많은 학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에 대한 이론적-과학적 탐구를 거부하는 반면 촘스키는 정확히 언어에 대한 과학적 이론을 수립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많은 학자들이 비트겐슈타인을 일종의 논리적 행동주의자로 이해하고 있는 반면에, 촘스키는 널리 알려진바와 같이 언어 연구에 대한 행동주의적 접근을 거부하고 이른바 '인지적 혁명'을 가져온바 있다. 세번째, 비트겐슈타인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크립키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적 의미가 본질적으로 공동체 성원들의 암묵적 합의에 기반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촘스키는 언어적 의미를 공동체의 합의로 규정하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외견상의 차이점을 고려해볼 때, 대부분의 학자들이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서로 화해될 수 없는 대립적 견해로 이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통해, 이러한 이해는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 언어철학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임이 드러난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에 대한 이론적이고 과학적 탐구를 거부하는 반면 촘스키는 바로 그러한 탐구를 옹호하고 있다는 견해는, 비트겐슈타인이 염두에 두고 있는 언어가 촘스키가 말하는 E-언어인 반면에 촘스키가 염두에 두고 있는 언어는 그가 말하는 I-언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적 행동주의자라는 해석과 그가 언어 의미와 관련하여 '공동체주의자'라는 해석은 모두 잘못된 것이며, 이러한 해석을 버릴 경우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는 어떠한 양립불가능성도 발견되지 않는다.

      더구나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결정적인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바로 현재 자연언어 의미론의 지배적 패러다임인 지시적 의미론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촘스키에 따르면, 자연언어 표현들 대부분이 지시하고 있는 존재자들은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적법하게 존재하는 존재자가 아니며, 따라서 지시론적 의미론의 핵심 개념인 지시 개념은 결코 과학적 개념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지시적 의미론은 과학적 이론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촘스키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에서 '이론'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과학적 이론 뿐이다. 그러므로 지시적 의미론은 자연언어의미론과 관련해서 진정한 이론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촘스키의 비판은 비트겐슈타인의 핵심적 생각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지시 개념은 그것이 일상적 의미에서 사용될 때는 물론 완전히 적법한 개념이지만, 우리가 이 일상적 개념을 언어-세계간 관계의 본질을 제시해주는 이론적 개념으로 승화시키는 순간 우리는 심각한 철학적 혼란에 빠진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은 촘스키와 마찬가지로 일상언어의 표현들이 지시하는 존재자들이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적법한 존재자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일상언어 표현이 지시하는 존재자들의 본질은 그것들이 공유하는 어떤 과학적 속성들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문법'(grammar)이라고 부르고 있는, 일상언어 사용에 있어서 우리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다양한 규준들(criteria)의 네트워크에 의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언어의 의미에 대한 자연과학적 탐구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탐구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촘스키의 생각과 본질적인 공통점을 가진다.
      번역하기

      대부분의 학자들은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 서로 화해될 수 없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견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 서로 화해될 수 없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견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첫번째, 많은 학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에 대한 이론적-과학적 탐구를 거부하는 반면 촘스키는 정확히 언어에 대한 과학적 이론을 수립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많은 학자들이 비트겐슈타인을 일종의 논리적 행동주의자로 이해하고 있는 반면에, 촘스키는 널리 알려진바와 같이 언어 연구에 대한 행동주의적 접근을 거부하고 이른바 '인지적 혁명'을 가져온바 있다. 세번째, 비트겐슈타인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크립키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적 의미가 본질적으로 공동체 성원들의 암묵적 합의에 기반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촘스키는 언어적 의미를 공동체의 합의로 규정하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외견상의 차이점을 고려해볼 때, 대부분의 학자들이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서로 화해될 수 없는 대립적 견해로 이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통해, 이러한 이해는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 언어철학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임이 드러난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에 대한 이론적이고 과학적 탐구를 거부하는 반면 촘스키는 바로 그러한 탐구를 옹호하고 있다는 견해는, 비트겐슈타인이 염두에 두고 있는 언어가 촘스키가 말하는 E-언어인 반면에 촘스키가 염두에 두고 있는 언어는 그가 말하는 I-언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적 행동주의자라는 해석과 그가 언어 의미와 관련하여 '공동체주의자'라는 해석은 모두 잘못된 것이며, 이러한 해석을 버릴 경우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는 어떠한 양립불가능성도 발견되지 않는다.

      더구나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결정적인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바로 현재 자연언어 의미론의 지배적 패러다임인 지시적 의미론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촘스키에 따르면, 자연언어 표현들 대부분이 지시하고 있는 존재자들은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적법하게 존재하는 존재자가 아니며, 따라서 지시론적 의미론의 핵심 개념인 지시 개념은 결코 과학적 개념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지시적 의미론은 과학적 이론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촘스키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에서 '이론'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과학적 이론 뿐이다. 그러므로 지시적 의미론은 자연언어의미론과 관련해서 진정한 이론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촘스키의 비판은 비트겐슈타인의 핵심적 생각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지시 개념은 그것이 일상적 의미에서 사용될 때는 물론 완전히 적법한 개념이지만, 우리가 이 일상적 개념을 언어-세계간 관계의 본질을 제시해주는 이론적 개념으로 승화시키는 순간 우리는 심각한 철학적 혼란에 빠진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은 촘스키와 마찬가지로 일상언어의 표현들이 지시하는 존재자들이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적법한 존재자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일상언어 표현이 지시하는 존재자들의 본질은 그것들이 공유하는 어떤 과학적 속성들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문법'(grammar)이라고 부르고 있는, 일상언어 사용에 있어서 우리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다양한 규준들(criteria)의 네트워크에 의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언어의 의미에 대한 자연과학적 탐구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탐구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촘스키의 생각과 본질적인 공통점을 가진다.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